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밑밥(?)을 먼저 깔자면, 저도 프리랜서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캣툴 사용법을 숙지하지는 않았습니다. 뭣도 모르고 번역 에이전시에 무작정 지원하고 훌륭한 PM님한테서 사용법을 배웠죠. 그래서 캣툴 사용법을 미리 배우고 지원하라는 말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캣툴 라이선스 보유 필수"라는 말이 채용 공고에 적히지 않았다면 적극 지원하시기를 권장합니다. 캣툴이 한두 푼 하는 제품도 아닐 뿐더러, 나한테 캣툴 라이선스가 없어도 회사가 제공해 줄 수도 있고, 아예 회사가 캣툴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막 툴을 사용하는 영상 번역 에이전시나 보안상의 이유로 캣툴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 공공기관처럼요.
그렇다고 해서 무방비로 지원하시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 허용 범위가 있으니까요. 오늘은 그 허용 범위를 저의 개인적인 관점에서 논해 보고자 합니다.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이 회사를 짜증나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솔직하지 않은 소통으로 일을 (줄이기는 커녕) 늘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캣툴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면 채용에서 탈락할 것 같습니까? 그러면 탈락하세요! 번역사가 캣툴 사용법의 숙지 여부를 알린 후에 나머지 일은 회사의 채용 담당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회사에 가르칠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면 채용할 것이고, 없으면 채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회사와 지원자가 서로 득실을 따져서 결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면 각자의 길을 가면 됩니다.
캣툴 사용법을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캣툴 사용법을 안다고 거짓말을 해서 회사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죄가 맞습니다. 예전에 어느 지원자는 유명 서비스를 번역해 봤다고 큰소리를 땅땅 쳤는데, 일을 맡기고 나서야 캣툴 사용법을 하나도 모른다고 고백했습니다. Ctrl + Enter로 세그먼트를 확정하면 진행률이 올라간다는 것도 몰라서 알려줘야 했죠. 그래서 그 사람한테 피드백을 주느라 업무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고, 토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서 캣툴 사용법을 포함한 온보딩 자료를 작성했습니다. 사람을 채용해서 일손을 덜어 보려다가 오히려 혹만 붙인 겁니다. 이 경험을 통해 지원자는 합격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기가 한 일이나 자기 능력을 과장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느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몇 번 뒤통수를 맞은 후에는 샘플 테스트에 캣툴 사용법 문제를 넣었습니다. 캣툴을 써 봤다, 캣툴 사용법을 학교에서 배웠다, 캣툴 사용을 통해 체계적인 번역을 경험했다는 둥 주장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막상 테스트를 진행하면 두루뭉술하게 답변하거나 잘 모르겠다며 양해를 구하는 지원자가 수두룩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원자는 거의 완벽에 가깝게 답변을 제출했습니다. 나이도 지원자 중에서 가장 어렸고, 캣툴을 사용해 보기는 커녕 돈 받고 번역해 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도 궁금증이 들어서 캣툴 사용법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지원자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원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면접 전에 공부했습니다."
이처럼 캣툴 라이선스를 구매하지 않아도 사용법을 익힐 수 있는 방법은 여럿 존재합니다. 캣툴 제조사의 유튜브 공식 채널에 가면 수십 개의 가이드 영상이 있고, 좀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개인이 올린 사용 요령 영상도 나옵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캣툴인 트라도스의 경우, 30일 무료 체험판을 일단 설치하세요. "도움말" 탭을 누르면 각종 가이드를 무료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아무 문서나 불러와서 직접 번역을 연습하면 더욱 좋겠죠.
채용을 진행해 보니 이력서만 훑어 봐도 견적이 뻔히 나오는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런 '뻔함'을 넘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샘플 테스트나 면접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배달 일을 하면 건당 3,000원 내지 4,000원 정도 받는 것 같던데요, 번역사는 실내에 앉아 50단어에서 100단어만 번역해도 그 돈이 나오지 않습니까? 번역 단가가 88년 이후로 올라간 적이 없다고 해도 번역 일은 여전히 여느 프리랜서 직종보다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기본적인 툴 사용법을 배우는 정도의 성의는 충분히 보일만 하다고 여깁니다.
번역사를 꿈꾸신다면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캣툴 사용법을 익히는 게 어떨까요?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지만 알면 긍정적이고 미세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캣툴 사용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