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문학도다.
대학을 다니면서 이른바 문사철, 인문학을 전공했고 고대에서 현대까지 동서양의 사상과 역사를 공부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졸업 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유명 IT 기업 중 하나에 취업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학교에서 배웠던 세계와는 상당히 다른 논리와 가치관으로 실적을 평가하고 있었고, 나는 이에 적응하기 위해 초반에 꽤나 애를 먹었다.
무엇이 다르냐?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철수가 영희에게 꽃을 선물했을 때 '왜 철수는 영희에게 꽃을 건냈는가', '꽃의 의미는 무엇인가', '꽃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매개체가 되는가' 등 개개인의 의식과 기억, 시간과 공간의 의미에 보다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IT 기업에서는 '꽃을 통해 두 사람은 각각 어떤 효용을 얻을 수 있는가', '꽃보다 더 나은 효율성을 낼 수 있는 대체재는 없는가', '만약 있다면 꽃과 대체재 간의 효율성을 비교할 수 있는 지표는 무엇인가' 등 보다 목표지향적이고(대체로 경제적 이익을 위한 목표) 객관적이며 보편적으로 확대재생산 가능한 요소에 집중한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인류의 역사에서 문명의 발전을 주도했던 집단은 계속 바뀌어왔다. 한 때는 종교가, 또는 군대가, 아니면 국가가 그 역할을 맡아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그 주체는 누구일까. 나는 (특히 글로벌) IT 기업이라고 생각한다. IT 기업이 세상을 바꾸는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생활방식과 가치관, 사고를 퍼뜨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공존한다. 누구나 느끼다시피 IT 기업들의 혁신으로 우리의 생활은 놀랍도록 편리해졌으며, 실시간으로 전세계와 소통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반면 오랜 기간 익숙했던 삶의 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지점이 늘어나 일상생활 곳곳에서 잡음과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사회 구성원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화적 요소를 '올리브나무'로, 생활의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기술적 발전을 '렉서스'로 비유한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기술 발전과 세계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수천 년 간 쌓아온 무형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올리브나무는 중요하다. 올리브나무는 나무뿌리처럼 우리를 지탱하고, 닻처럼 우리를 정착시키며,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주고, 이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를 설정해주는 모든 걸 상징한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 앞에서 우리는 어지럼증을 느낀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 종잡을 수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올리브나무 아닐까. 그리고 올리브나무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시선으로 IT 기업들의 활동을 바라보아야 한다.
인문학도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IT 기업의 활동
나는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인문학도로서 IT 기업들의 활동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자 한다.
IT 기업의 활동이 미치는 영향이란 정말 광범위해서 인간관계, 소통, 상거래, 교통, 교육 등 생활의 거의 모든 면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 중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거나, 가까운 미래에 이슈가 될 수 있는 주제들을 가지고 하나씩 이야기를 해보았으면 한다.
인문학도로서, 동시에 IT 기업의 직원으로서 양쪽에 한 발씩 내딛은 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혼란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싶다. 비록 결론을 내거나 해답을 찾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는 과정 그 자체가 우리의 올리브나무를 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