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서쪽 대서양의 아소르스 제도를 포기하고 포르투갈 내륙 동서를 오가는 지그재그 동선을 감안하면서까지 동쪽으로 달려갈 만큼 이번 포르투갈 일정을 잡으며 가장 기대됐고 그만큼 궁금했던 곳.
포르투갈답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날씨가 도와주질 않는다. 카스텔루 브랑쿠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가 몬산투에 다가 갈수록 점점 거세진다.
형체 식별이 어려울 정도로 전방이 뿌옇다. 그래도 어떻게 잡은 일정인데.. 포기할 순 없다.
지방도로에서 빠져 돌담길을 따라 꼬불꼬불 10분 정도 거센 오르막길을 오르니 거대한 암벽과 바위를 벽과 지붕 삼은 집들의 군락이 시야에 들어온다.
몬산투는 화강암과 공존하는 마을이다. 암석과 붙어 있는 집이 많은 데다 벽의 색이 화강암과 비슷해 멀리서 보면 집인지 암석인지 주황색 지붕이 아니면 식별이 안될 정도다.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다 적당한 지점에 주차 후, 雨衣를 챙겨 입고 城 정상에 오르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산악마을 몬산투에서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도 피할 겸 골목의 Cafe Monsantino에 들어서니 동네 할아버지들 다 모인 듯하다. 어느 나라나 이제 시골에서 청년들은 보기 힘들다.
TV의 서부영화를 관람하며 결정적 장면에선 같이 환호하고 서로들 열심히 말을 주고 받으며 신나 한다. 서부영화 한 편 끝나니 이어서 또 다른 서부영화. 어릴 적 기억에 남아 있던 개리 쿠퍼를 포르투갈 산악마을에서 다시 보게 되다니. 이곳에서 서부영화가 인기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인적 교류가 드문 산악지대의 작은 마을 공동체라서인지이곳에서는 영어가 거의 안 된다. 그렇지만 말 안 통하고 손짓 발짓으로 의사소통하며 이해됐는지 조심스레 서로의 표정을 살피는 게 오히려 인간미 느껴지고 좋다. 영어 잘 한다고 알아듣거나 말거나 저 혼자 말하고 힐끗 쳐다보는 것보다 백번 낫다. 적어도 내가 일방적으로 기죽을 일은 없으니까.
영어가 안되는 곳에서는 단어 사용이 대단히 절제된다. 포르투갈 생활 열흘에 몇몇 단어는 이제 눈에 익었다. "카스텔루(Castello)" 라고 말하고 걸어가는 제스처를 취한 후 시계를 가리키니, 주인장 할아버지 손가락 다섯 개를 세 번 폈다 오무렸다 하신다. 城까지 얼마나 걸리냐는 물음에 15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중년 동양인의 센스가 미심쩍었는지 종이에 15를 쓰시고 옆에 min을 붙이는 워드파워를 시현하신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는 중에도 빗줄기가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인다.
정상에 대한 의지를 갖고 밖으로 나왔으나 결국 되돌아서야 했다.
신발까지 젖어 드는 빗줄기에 경사진 돌길이 미끄러워 위험을 감수할 수 없었다. 많이 아쉽지만 골목 골목을 담아내는 걸로 만족하자.
가끔 시멘트 벽이 보이기도 하지만 거의 모두가 돌 집이다.골목길도 돌로 깔았다. 저 많은 돌들은 어디서 채취해 어떻게 다듬었는지..
암석과 한몸인 집. 어쩜 이렇게 꼭 붙어 있는지 정말 신기하다.
비를 맞으며 잠시 둘러본 몬산투의 특징.
이끼는 습기가 많은 고지대 몬산투의 상징이다. 아울러, 습도가 높은 만큼 몬산투에서 목조건물은 찾아볼 수 없다. 위 사진들에서 보듯 모든 집이나 건물은 돌이 소재다. 석조건물은 습기 뿐 아니라, 강한 바람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다.
몬산투의 또 다른 특징은 지붕 서까래가 아주 짧다. 지붕과 벽이 거의 직각으로 맞닿아 있다.
방수 처리는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도 궁금하고, 실내에 천장은 있는지도 궁금하다.
돌출된 암석을 둘러싸고, 또 암석을 지붕 삼아 암석의 굴곡에 맞춰 집을 짓는 발상이 경이롭다. 암석에 붙여 집을 지으면 습기로 인해 내부가 눅눅해지고 곰팡이 등으로 피부질환 우려도 클 듯한데, 어떤 방식으로든 대비가 되니 저런 주거 형태가 유지되지 않겠나. 아래 왼쪽 사진은 마치 암석이 담을 타고 넘는 모습이다.
이 화강암 지대에 저런 면적의 납골묘원이 있다니.. 인간의 집단 지성이 놀랍다.
방열된 구식 대포가 몬산투가 스페인의 침공을 막는 포르투갈 동부 요충지였음을 상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