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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Oct 26. 2018

돌아가신 어머니가 백수인 아들에게 주신 뜻밖의 선물

그 시장 길에서 원단 냄새, 엄마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내가 소풍 가는 날이면 광장시장의 맛난 김밥을 사오셨다 (광장시장 먹거리 ⓒ한국관광공사)



어머니가 20년 넘게 일하신 종로 5가의 광장시장에 갔다. 제대로 쉬어 본 적 없이 고단하게 일하신 현장에 일부러 가본 게 아니다. 장례를 치른 뒤 금융 조회를 했더니 광장시장 마을금고의 어머니 계좌에 200여만 원 있어 상속받으러 갔다. 식물 상태로 투병하신 지난 20년 동안 그 계좌가 있는 줄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으니, 오랜 세월 어머니 계좌에 숨어 있던 돈이다.


어머니는 쓰러지시기 전까지 20여 년을 매일 밤 10시 광장시장에 출근하셨다. 통금이 있던 시절은 새벽 4시에 가게 문을 열러 가셨다. 무더위와 강추위도 상관없이 새벽을 통과하며 숙녀복 장사를 하셨고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어머니 뵈러 종로에 나갔다. 가게 안까지 가본 적은 드물다. 기억에 남는 것은 대학 3학년 봄이었다. 일을 마치신 어머니와 보령약국 앞에서 만나 을지로 롯데에 가서 내 첫 정장을 사주신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 사주신 구두는 뒤축을 갈아서 지금도 신고 있다.


그후로 광장시장에 간 것은 뇌출혈로 쓰러지신 그날부터다. 갑자기 엄마 가게 일을 도맡게 된 여동생이 밤 10시에 광장시장에 나가는 모습이 너무 마음 아프고 안쓰러웠다. 가게 문을 같이 열어주러 매일 밤 광장시장에 같이 갔다. 당시 대통령 선거 기간이었고 김영삼에서 김대중으로 대통령이 바뀌는 순간에 시장에서 울려 퍼진 함성이 기억난다. 광장시장 상인 중에는 DJ 정권을 갈망한 분이 많았다. 어머니가 소천하신 2017년 10월 14일은 문재인 대통령이니 병상에서 의식 없이 계신 세월에 다섯 분의 대통령을 경험했다.


내가 초중학교 시절 소풍 갈 때면 김밥을 싸주실 여력이 안 되어 광장시장의 김밥을 사 오셔서 소풍 가방에 넣어주셨다. 지금 충무김밥처럼 작고 긴 형태였는데 어머니 말로는 그 김밥 집은 광장시장에서만 장사를 오래 하셔서 돈을 많이 벌어 주인이 벤츠를 몰고 다닌다고 하셨다. 후에 마약김밥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김밥이 내가 초등, 중등 때 소풍에서 먹던 광장시장 김밥이다.


일하시느라 자기 몸도 챙기지 못한 어머니의 광장시장은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호떡집, 김밥집, 떡볶이집 상인들은 오래도록 장사하신 얼굴에 주름이 패어 있고, 안쪽 골목은 원단 가게들이 즐비하다. 지금은 어디쯤이 어머니 가게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그 안에서 일하신 마지막 날에서 20년이 흘렀으니까. 기억나는 것은 가게를 밝히는 전구가 일상용보다 지름이 좀 큰 것이었는데 전열기처럼 뜨거워 겨울에는 난방 효과가 있었다. 가게는 평수가 작았는데 그 전구는 매일 하나씩 새로 갈아주어야 할 만큼 빛이 강하고 뜨거웠다. 여름에는 얼마나 더우셨을까.


광장시장 마을금고 위치가 시장 안쪽에 있기에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가게 일로 엄마는 남매 교육비, 우리 집 생활비를 모두 건져 올리셨다. 쉬고 싶은 날도 피곤한 눈 비비며 이 시장에 나오셔서 가게 전구를 새로 갈아 끼며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인들 대상으로 하루 장사를 시작하셨다.


어머니 계좌를 인출하려면 복잡한 서류를 내야 했다. 어머니의 가족관계 증명서, 사망진단서, 제적등본, 기본증명서 그리고 아버지와 나, 여동생의 인감증명, 기본증명서, 신분증과 도장 등. 다 잘 챙겨 왔다. 한참을 기다려 240만 원 정도가 내 통장에 입금됐다. 그동안 어머니 병원비로 지불한 내역은 전세 한 채 값은 족히 되지만, 현재 백수인 내게 주신 뜻밖의 선물로 다가왔다.


마을금고에서 광장시장을 다시 빠져나오면서 종로5가역까지 걷는 그 시장 길에서 원단 냄새, 인간 냄새, 엄마 냄새가 섞여 코로 들어왔다. 이제 다시 여기 올 일이 있을까? 코가 시큰했다. 지금은 천국에서 이런 복잡하고 여가 없는 시장에서와 달리 편하게 계실 엄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뭔지 모를 허전함과 복잡함이 머리를 채우지만 조금은 쉬어 가면서 더 정리할 게 남았는지 살피며 산다.

잘 살고 싶다.

201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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