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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Oct 25. 2018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하늘 소망의 관점과 은혜



어머니 안장한 곳을 비추는 하늘이다.
장례의 모든 절차를 마치고 가족들이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을 때 나는 묘지 비용을 지불하고 허가서류를 제출하느라 홀로 어머니의 흔적에 다시 왔다. 그림 같은 하늘빛이 우리 모자를 감싸주었다.
어머니의 남겨진 몸은 화장되어 땅에 있어도 영화로운 몸은 저 하늘보다 멋진 곳에서 환하게 웃고 계실 것을 생각하니 실로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이제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면 그 아름다움의 깊이에 더욱 감탄할 수 있을 것 같다.

의식 없는 중환자로만 견디신 20년의 투병을 끝내고 2017년 10월 14일부터 16일 치른 어머니 장례는 우리 모자의 슬픈 이별이 아니라 큰 소망의 축복이었다. 병 고침이 불가능한 20년을 완전한 고침으로 받아주신 축제였다. 아들인 나는 그 축복의 시간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경험하는 소중한 선물을 누렸다.

안장한 지 3일째 꽃을 사들고 어머니 자리에 다시 왔다. 병실의 상해가던 그 몸이 아닌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작은 장미 한 다발을 선물했다. 중환자에겐 금지품목인 꽃, 이제 어머니가 좋아하신 꽃을 드릴 수 있게 된 것도 기쁨이다. 아내와 함께 아버지와 동생과 식사를 했다. 아직은 어색한 자리였지만 아내가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잘해 주어 고마웠다.

20년의 투병 중 마지막 8년 4개월을 지낸 가은병원에 찾아뵈었다. 신기하게도 내가 인사드리고 싶은 원장 선생님 부부, 많은 신경을 써주면서 친절하셨던 중환자실 간호사님, 5층 병동 간호사님 그리고 가장 오래 간병하신 반장 간병사님, 마지막 날 어머니의 고통을 다 받아주신 박 간병사님 등 모두 근무하고 계셨다. 감사 떡을 돌리고 사례비도 전달해 드렸다. 간병사님이 안 받으시려는 걸 반강제로 드렸고, 원장 선생님은 병원에 어머니 이름으로 기증하시겠다고 하며 우린 이제 가족과 다름없다며 손잡아 주셨다. 어떻게 보면 다시 오기 힘든 장소일 수 있어도 난 한 분 한 분께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감사를 웃는 얼굴로 표할 수 있는 자체로 기쁘고 영광스러웠다.

어머니 병상은 비어 있었다. 주변 병상의 힘든 환자분들 표정이 내 가슴에 통증과 함께 들어온다. 보호자 한 분이 조용히 미소 짓고 인사하고 가셨다. 그분의 현실이 또 아프게 공감되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메르스가 오나 요통이 오나 몸살이 오나 상관없이 달려와 간호했던 병원에 아무 긴장도 없고 준비할 간호물품도 없이 달려온 그 처음이 신기했다. 병원 분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병원을 떠났다.

아내와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긴 낮잠을 잔 것 같지만 현실이다. 의료 가위, 핀셋, 열기 소독용 냄비 등 지난 십여 년간 잘 써온 의료도구들을 버렸다. 마치 가난한 시절 함께한 소중한 벗을 떠나보내는 느낌이었다. 떨리기까지 했다. 달그락거리며 매고 다닌 백팩은 세탁소에 맡겼다. 그 수많은 날들을 기억하는 의미로 등산이나 여행 시에 들고 다니기로 했다. 간호할 때 입은 옷, 가제 수건, 어머니 전용 수건은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새롭게 시작한다.
이전의 나이면서 다른 나의 시작이다. 그 시작이 조금 낯설지만 너무나 새로워 하루하루가 신비롭다. 가장 큰 선물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내일을 계획할 수 없는 상태로 버티면서 얻은 경험들을 모아서 난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계획을 세운다는 게, 얼마만인가. 답 없이 걸어온 세월들에 이어 사실 지금도 해결할 일 많지만 내가 주도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상이 새롭고 기쁘다.
여백이 생기니 아내도 더 예뻐 보이고 아이들도 더 사랑스럽다. 심지어 내 과거의 복잡한 사건들도 부드럽게 보인다. 아팠던 관계들은 떠오르지도 않는다.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은혜를 경험하니 내가 입었던 크고 작은 내상은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게 세탁되었다. 하늘 소망의 관점과 은혜는 이런 변화를 일으킨다.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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