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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Apr 20. 2018

20년 간호의 마지막 시기

화사한 봄, 아내와 병간호하다

정신력으로 버티기 힘든 고통을 이해하고 해석하고 견딘 시간은 아름답게 기억된다. 오늘 내가 살아갈 힘을 과거의 고통을 견딘 이야기에서 발견했다.


지금 내 나이는 어머님이 아프시기 시작한 시점에 다가서고 있다.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의미와 재미가 있는 시간으로 하루를 채워야 긴 시간을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아내와 어머니 병간호를 다녀왔다. 보통 혼자 간호 마치고 병원 로비에서 글을 쓰는데 어제 동행한 아내와 데이트하느라 지금 정리한다.
 
어머니 기력이 많이 떨어지셨다. 표정도 평온하지 않고 뼈만 앙상한 몸이 되셔서 아내가 병원에 같이 가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다.

12년 전에 함께 병간호한 10개월이 데이트가 되어 결혼했다. 2007년 아내가 임신하면서부터 병간호는 청춘기 때처럼 나 혼자 해왔다. 어머니가 병원에서 결핵 판정도 받으시고 심지어 옴도 걸린 적 있어 임신하고 아이 낳아 기르는 아내와 함께 간호하는 건 어려웠다. 다행히 나는 결핵에도 어떤 병원 균에도 감염되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 감당해 오는 게 편했다.

아침에 두 아들을 학교와 어린이집 보내고 소독한 간호용품들 챙겨 함께 집을 나서면서 결혼 전에 같이 병간호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어머니 섬기러 온 사람과 이렇게 결혼하여 두 아들 낳고 살다니.

작년 봄에 같이 왔을 때는 1층 중환자실이었는데 지금은 5층 중환자 병동이다. 간병인께 드릴 떡을 준비해 온 아내가 병실에 들어서자 갑자기 분위기가 환해졌다. 아무 말 없이 병간호에만 집중하는 나와 달리 아내는 간병인 두 분과 웃으며 이런저런 얘길 나누니 신선한 평화가 임한다.

2주 전에 처음 생긴 어머니 욕창은 피부 괴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적외선 치료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침대 시트를 펴드리고 기저귀 상태를 본 다음 얼굴부터 하나하나 청결하게 해드렸다. 병원에서 할 수 없거나 하지 못하는 케어를 해가는 동안 어머니 표정도 맑아지셨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한쪽 팔과 다리를 맡아 씻겨드리니 시간이 많이 절약됐다.

내가 일상에서 가장 큰 집중력, 깊은 전문적 능력을 발휘할 때가 어머니 간호하는 시간이다. 준비해 온 도구(가그린, 핀셋, 의료용 가위, 핀셋, 커튼볼, 거즈, 치실, 3M테이프...)들이 타이밍과 순서에 따라 어머니께 사용되면서 냄새도 없어지고 몸도 부드러워지신다..
 
그에 따라 내 속에 쌓인 세상살이의 찌꺼기들, 생각의 잡균들도 드레싱된다. 어머니 몸을 들어 기저귀를 갈아드릴 때 소요되는 힘과 근육들로 내 몸은 저절로 운동이 되고 2시간여 마라톤 뛰고 결승점에 들어온 것처럼 땀 범벅으로 거친 호흡이면서 마음은 정화된다.

그 정결한 마음으로 어머니 손잡고 기도할 때 아내가 옆에서 함께 기도해 주었다. 이런 고통에서 나는 조금씩 주님을 느끼며 자라왔다. 지금 내 나이에서 2년만 더하면 어머니가 뇌출혈로 식물상태가 되신 나이와 같아진다. 20년이 흐르면서 난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고 현재진행형의 고통이 현재완료가 되는 (언제일지 모를)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나는 우리 아이들이 내가 겪은 고통을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내가 자녀로서 이 험난한 세상을 살며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이 아닌 고통에 함께하시며 내가 성장하기를 바라신다. 그의 사랑법을 이해하는 여정이 내가 사는 이 인생이다.

화사한 봄 날씨에 병원을 나와서 부근의 맛집을 찾아 시원한 열무냉면 한그릇씩 먹고 귀가했다.
출근할 직장이 정해지지 않아 쉬면서도 3월 병원비 낼 수 있어 감사하고, 아내와 자주 시간을 함께 보내 감사하다. 특히 주님은 내게 어떤 분인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얻어 감사하다. 

2017.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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