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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Jun 25. 2018

병간호, 가치 있는 순간의 연속

믿음 외에는 희망이 없는 삶



대학 시절 기독교 동아리 IVF의 수련회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난 이 땅에 이뤄질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부르심대로 살기로 결단하고 가치 있는 일에 인생을 쏟아붓기로 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명문대 학위나 고시 패스, 성공한 대기업 임원이 되는 게 필요치 않고 부르신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많은 실수를 했고 고통을 겪었고 내가 얼마나 미천한지 확인하는 시간으로 생의 대부분을 보낸 것 같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옳은 가치에 대한 헌신 그리고 순수함은 이십 대 다르고 삼십 대 다르고 지금 사십 대가 다르다. 성공과 발전의 추구가 내 인생을 좀먹는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맘몬의 사회에서 가정을 지키는 책무를 하면 할수록 마음 깊은 뿌리에서는 돈 걱정에서 자유롭고픈 갈망이 있다. 성공을 무시하면서 흠모하고 개인적 안위를 배격하면서 희망한다.

1인 출판사를 1년 해보며 돈 걱정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것인지 목에 칼이 들어오는 듯한 숨 막힘을 경험했다. 당시 나는 판교 환풍기 추락 사고 뉴스를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서 그냥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이 주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웠고 절박했다. 중소기업 사장이 자살하는 마음이 이해가 됐고, 어떤 식으로든 한국 사회에서 창업하여 직원들 월급을 지급하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해졌다.

점점 현실의 여러 지점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가치 투자는 허덕임과 시간 낭비의 세월로 점철돼 갔다. 카라바조의 그림처럼 다윗의 얼굴로 해맑게 사회에 나와 골리앗의 얼굴로 실패해 갔다.

그런 이중적인 내 자아가 정화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20년째 계속해 온 어머니 간호할 때다. 출판 일로 버는 수입의 대부분을 병원비로 지불하면서 어머니 피부 한 곳 한 곳을 깨끗이 해드리고 호흡과 관절을 안정시키는 순간에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간에는 돈에 대한 걱정도 사라지고 안정에 대한 생각도 성경적 기준으로 돌아와 성숙을 갈망한다. 나는 미천하지만 존귀한 자이고 내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의 연속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이 땅의 환난 중에 고아와 과부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그 부르심도 회복한다. 내게 금과 은은 없지만 예수의 능력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을 향해 일어설 용기를 회복한다.

더운 주말 병원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들과 자전거 타며 아빠 얘기를 들려주련다. 외롭고 쓸쓸한 길에 외롭지 않고 쓸쓸하지 않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2016.06.25




혈관을 찾지 못해 시술 받은 부분을 보니 가슴 아프고 기도밖에 할 게 없다는 현실 앞에서 마음이 가난해진다. 믿음 외에는 희망이 없는 삶이 내게 힘을 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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