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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Jun 20. 2018

18년째 간호한 아들과 가장으로서의 어떤 날

익숙할 수 없는 고통의 자리라는 일깨움




타인과 같은 일상에 묻혀 있다가 한 번씩 정신 차리게 되는 순간이 있다. 갑자기 병원에서 연락 오는 오늘 같은 때다. 집에서 중환자인 어머니 병간호를 8년쯤 한 뒤 처음 요양병원으로 모신 2004년부터 2009년까지 나는 거의 1년에 한 번씩 어머니 병원을 옮겨야 했다. 그사이 취직하고 결혼했어도 매주 세 번은 병원에 들러 나만 할 수 있는 케어를 반나절쯤 해드려야 어머니는 다소 안정적으로 투병하실 수 있었다.


갑자기 병원 환경이 나빠지거나 비싼 항생제를 장기간 투여해 병원비가 폭증해서 감당이 안 되거나 병원 감염이 분명한 결핵균이 검출돼 쫓겨나다시피 퇴원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2009년부터 현재의 병원에서 서로 신뢰하며 안정적인 투병을 해오던 중이었는데 오늘 전화를 받았다. 중환자병동인 1층에서 일반병동인 6층으로 옮기겠다고, 보호자 동의를 구한다고 말이다. 일전에도 이 전화를 두어 번 받은 바 있다. 세심하게 치료하고 돌봐야 할 중환자인 어머니는 환경이 바뀔 때마다 예민해지는 데다 일반병동 공동 간병인의 퀄러티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라 꼭 힘든 일이 생긴다. 가능한 병실을 옮기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리고 계속 1층에서 지내왔는데.

이번에도 반대 의견을 표시했지만 1층 간호 데스크에서는 기계호흡장치를 하는 환자들만 남기고 올라가야 한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정말 어쩔 수 없이...
우리 모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환자들 생각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흔들리며 받아들이기까지의 침묵을 단축시켰다.

어머니 상태가 좋아서 일반병실로 가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늘 열이 오르고 머리 뒷부분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질환도 있다. 갈수록 조금씩 안 좋아지시는 데다 상대적으로 중환자실보다는 방치될 수 있는 일반병실로 가야만 하는 게 불안하고 서글프고 괴롭다.
늘 내 자리는 이렇게 기도가 필요하다. 일반병실은 치매 환자와 걸어 다니는 환자 분들이 섞인 공동 병동이라 그 속에서 꼼짝도 못 하시는 어머니께 불편함이 없기를, 새로 만나게 될 간병인 분이 중환자실처럼 돌봐주시도록 기도할 수밖에 없다.

내가 병원에 가는 월요일 오전까지만 중환자실에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대답에 여간 마음이 힘든 게 아니다. 오늘 집중해서 해야 할 일도 있고, 내가 두 아들의 아빠로 집중해야 할 일상과 18년째 병간호해 온 아들로서의 위치에서 더 무거운 하루.
편안하지 않은 하루하루가 일상으로 익숙해져 있을 때, 익숙할 수 없는 고통의 자리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이런 날, 마라톤을 한 것도 아닌데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난다.

20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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