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교진 May 15. 2018

어머니를 하늘로 보낸 뒤 1

핸드폰 명의를 변경하다



내가 처음 휴대폰을 쓸 때가 경희의료원에서 어머니 간호하던 1998년 봄이었다. 걸면 걸린다고 광고한 걸리버폰이 내 첫 휴대폰이었다. 로버트 할리가 광고 모델이었고 현대전자라는 회사의 pcs폰으로 기억한다. 대학원 휴학한 시절이라 가장 싼 걸 찾다가 019 국번의 그 pcs폰을 선택했다.


어머니의 장애1급 판정 후에도 몇 년간 그 019폰은 내 명의로 쓰다가 집에서 병간호하던 시기의 어느 날 장애인 통신비 할인에 대한 정보를 듣고 뒤늦게 휴대폰과 인터넷의 명의를 어머니로 바꾸었다. 복지할인 혜택은 그나마 쏠쏠한 편이었다. 매월 인터넷과 전화비가 만 원 정도, 휴대폰 비용이 2만 원 가까이 할인이 되었다.


불편한 점은 본인 휴대폰으로 실명인증할 때다. 내 명의가 아니므로 공공아이핀으로 나를 증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고, 금융 앱 중에는 휴대폰 인증으로만 가능한 앱들이 많아져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가끔 전화를 못 받아 음성 녹음된 파일이 있는데 개인정보법에 의해 내가 열어볼 수 없다. 통신사에 사정해도 불가능했다.


2017년 가을 어머니께서 하늘로 가셨을 때 장애인 자동차 공동명의는 바꾸었어도 휴대폰은 그대로 두었다. 불편함 없다면 한동안 유지하고 싶었다. 물론 복지할인은 자동으로 취소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최규창 형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핸드폰 번호를 그대로 저장해 두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번호로 누군가 핸드폰을 개설하면 카톡에 낯선 프로필로 뜨는데 그때마다 아버지 생각하며 그대로 둔다고. 아버지가 쓰시던 번호를 삭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심정이 무언지 알 것 같다.


그런데 5월이 되니 통신사에서 23일까지 명의 이전을 하라는 안내 문자가 왔다. 7월에 직권해지될 수 있고, 보이스 피싱 등 금융피해 방지를 위해 가족 소유 폰이라면 실제 사용자로 바꾸어야 한다고..

지난주에 시간을 내어 가까운 대리점에 가서 어머니 관련 서류를 보여주고 명의 변경을 했다. 내 폰에 담긴 어머니 간호 후 찍은 손 사진 외에는 이제 어머니의 자취는 사라졌다. 폰의 명의가 바뀌었을 뿐인데 커다란 자취가 사라진 기분이다.


남겨두고 싶은 그분의 자취가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되어 갈수록 숨어 있던 상실감은 조금씩 커져만 간다.

5월 12일 어버이주일에 목민교회 오후 예배 강사로 초청돼 말씀을 전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울컥했다. 최근 몇 년간 강대상에서 눈물 흘린 적이 없었다. 소천하신 후 4번째 강단이었는데 어머니 하늘나라로 가신 뒤를 설명하다가 울음이 차올라 몇 초 침묵하며 말을 잇지 못하고 말았다.


긴 세월의 여러 가지 이야기는 가슴에 새겨져 있다.

문득 핸드폰이 조금 낯설다. 본인 확인이 편해졌어도 무언가 그리움이 더 차오른다. 날이 밝고 더워졌어도 마음에 바람이 분다.

2018.05.14

이전 28화 돌아가신 어머니가 백수인 아들에게 주신 뜻밖의 선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