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난 너무 괴로웠다
2박 3일의 교회 수련회에서 김형국 목사님의 네 차례 말씀으로 큰 감동과 함께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하고 무거운 심정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여전히 실업자 가장으로서 고민이 많고 어머니 마지막 시간을 돌보며 고통스럽고 불안한 가운데 있다. 같은 숙소에서 같은 밥 먹고 같은 말씀에 은혜받고 웃고 울며 기도하고 찬양해도 현실은 아픈 어머니 간호해야 하고 병원비와 생활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여전하지만 문제를 풀어갈 겨자씨 믿음을 얻어 살아내야 한다.
수련회 마친 바로 다음 날 아내와 병원에 갔다. 이 무더운 날 욕창은 등과 머리에서 여전히 기세를 부리고 있고 지친 간병인은 종이 기저귀를 등과 머리에 깔아두셨다. 피부 진물이 시트에 스며들지 않도록 한 데 이해는 하지만 장기간 돌봐온 아들로서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다. 사실 어머니 몸에 20년이 되도록 욕창이 생기지 않게 케어해 온 내 삶에 이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까지 심적인 고통은 말로 표현 못한다.
베갯잇을 등에 깔아드리고 간호사님께 두피 감염이 되지 않는 소독된 천을 매일 공급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1층 중환자실에서는 가능했지만 5층 병동에서는 베개 관리를 잘 해드리는 선에서 설명해 주시기에 고집을 피우기보다 따르기로 했다.
5주 가까이 기저귀를 열어보지 않았다. 더 이상 내가 청결하게 해드리는 부분에 있어 앞으로 나아가기도 눈 감고 있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조금씩 더 맡기는 것이 어머니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용변을 보신 것이 내 눈에 띄었기에 폴리글러브를 끼고 베이비오일을 손가락에 발라 항문 입구에 가득한 변을 모두 조심스레 꺼내드렸다. 답답해하신 표정이 다소 풀리셨지만 내 마음은 개운하기보다 어렵기만 하다.
지금까지 깊이 신경 써 온 일이 잘한 일인지 회의가 들고 어머니 표정은 얼른 이 병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 무엇이 옳은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단, 할 수 있는 최선을 한다는 면에서 난 눈에 띄는 최선을 다하고 기도했다. 고통을 드리는 것인지 덜어드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 시간에 20년의 내 경험과 축적된 간호 방법들은 너무도 작아져 있다. 내 마음은 가난하고 절박하고 괴롭기만 하다. 죽음 앞에서 떠나보내는 심정과 고통이 심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심정이 복합적으로 덮쳐와 사막의 한가운데를 걷는 것만 같다.
병실은 조금 시원했지만 병원 밖은 덥다. 옷이 다 젖고 배탈이 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하고 불쾌한 느낌이었지만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김형국 목사님의 하나님 나라 강의에서 배운 것처럼 이 모든 현실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다스림 받을 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의미를 부여하고 찾아야 한다. 그동안 경험이 내 자부심이 되었다면 코만 깨질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 능력과 지혜 이상으로 부어주신 것만을 생각하기로 한다. 그래서 내 것이 아닌 그 스토리들 속에서 풍성한 사랑의 기억만을 건지며 견디는 것이 지금 내가 살아갈 힘이 된다는 것을.
더위를 견디며 주말에 와서야 간호 일기를 남긴다. 내 마음도 조금씩 차분해지기를 기도한다. 장기전을 잘 버텨왔다. 가까이 있는 죽음 앞에서도 장기전이 된다면 버텨 내야 한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수록 눈을 감고 기도하게 되는 이 현실이 복이 있다고 생각하자.
2017.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