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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교진 Apr 25. 2018

끝에서 시작되다

제15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개막 영화

4월 24일 제15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의 개막행사가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열렸다.

기존의 서울국제기독영화제가 올해는 사랑영화제로 이름이 바뀌었다. 주제는 “함께(With)”이다. 집행위원장 배혜화 교수는 예수님이 약자와 함께하는 사랑을 행하신 것처럼 가난한 자, 소외된 자와 함께하는 사랑의 메시지가 전달되길 바란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조직위원장 임성빈 총장은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선’의 비전으로 성장해 온 기독영화제가 사랑영화제로 개칭되면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 본질적인 사랑이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소통되길 바라는 뜻을 담아 개막 선언을 했다. 축하 공연으로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 리사 씨가 찬송가 516장을 영어 가사로 부르며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특히 노숙인들로 구성된 해맞이 찬양대와 함께 <나를 받으소서>를 부른 무대는 참석자 모두를 감동시켰다. 조금은 투박한 합창이어도 그들의 삶에 스며 있는 고통이 친구로서 존중되길 바라는 심정과 어우러져 개막 영화인 <끝에서 시작되다>의 메시지와 연결됐다. 기독영화인상은 <로마서 8:37>를 연출하고 제작한 신연식 감독에게 수여됐다. 신연식 감독은 영화 <동주>의 각본을 쓴 제작자이기도 하다. 홍보대사 미스코리아 이성혜 씨는 참사랑이 무엇인지 함께 알아가고 영화제에서 소개될 영화들로 메마르고 왜곡된 시대를 살아가는 삶들에 진정한 사랑이 채워지고 회복되기를 소망하는 인사말을 전했다.





사명감으로 헌신하며 짧은 시간 완벽한 영화제로 준비한 인력들의 섬세하고 열정적인 수고가 돋보인 가운데 개막작 <끝에서 시작되다>의 막이 올랐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뉴욕타임스 40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했다. 오해와 편견,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는 인생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만날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수작이다. 베풂을 매개로 한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어 개막작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




‘덴버’라는 흑인 남자는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며 목화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다 탈출해 범죄를 저지르고 30여 년간 소외된 노숙자로 생활한다. 반면 ‘론’은 엘리트 백인으로 아름다운 아내 ‘데보라’와 부유한 생활을 누리는 미술 작품 거래 중개인이다. 같은 시대에 살지만 정반대의 환경에 있는 두 사람은 론의 결혼 생활 위기 때문에 만나게 된다. 다른 여자를 만나 온 론은 아내의 용서를 받고 노숙인 배식 봉사를 반강제로 하다가 덴버의 폭력을 목격한다. 론의 눈에 비친 덴버는 가까이하기 어려운 무례한 난봉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데보라는 남편이 그를 품어주고 친구가 되도록 권고한다. 아내의 청에 못 이겨 경계심을 가지고 덴버에게 다가간 론은 그의 척박한 인생 스토리를 듣고는 조금씩 마음을 연다. 거라사 광인 같던 덴버는 데보라의 편견 없는 사랑에 감화돼 한 걸음씩 이들 부부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아름다운 섬김을 론에게 말해주며, 가족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지면서 덴버 자신도 차별과 소외의 어두운 인생을 치유받고, 론도 아내의 존재를 다시금 소중하게 깨닫는다. 어느덧 백인의 부유한 생활권에서 인간적인 삶으로, 폭력과 차별로 얼룩진 인생에서 소중한 존재로 변화되는 두 남자에게 따뜻한 우정을 선물하고 데보라는 시한부 삶을 마감한다. 그녀는 자신의 장례예배 애도사를 덴버에게 부탁했다. 덴버는 노숙자인 자신에게 먼저 손 내밀어 준 데보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면서 부자이든 가난하든 우리는 모두 노숙자이며 집으로 가는 여정이 있을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론은 아내와 덴버에게서 용서와 사랑의 힘을 느끼고 원수처럼 담을 쌓아둔 아버지를 찾아가 화해한다.





데보라 역의 르네 젤위거는 브리짓 존스 시리즈의 코믹한 이미지와는 한결 다른 따뜻한 크리스천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녀처럼 거라사 광인과 같은 이웃에게 먼저 다가갈 뿐만 아니라 내 집에 데려와 편견 없이 재우고 먹일 수 있을까? 영화는 부정직한 결혼생활의 끝, 어두운 인생의 끝에 있어도 아가페의 사랑을 받으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 변화의 전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서 시작된다. 실화이기 때문에 울림이 크다. 내가 지닌 인간적인 사랑의 범위를 넘어서는 크고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묵상하게 한다.





제15회 서울국제사랑영화제는 개막작 <끝에서 시작되다> 시작으로 폐막작 방성준 감독의 <그 언덕을 지나는 시간>, 키에슬로프스키 연작전 <십계>, 잉그마르 베르히만, 짐 자무쉬 등 장편 15편, 단편 5편 총 20편의 영화로 관객을 기다린다. 아가페, 미션, 스페셜 등의 선택 섹션과 영화인의 밤, 씨네포럼, 씨네토크의 다채로운 행사가 필름포럼에서 마련돼 있다.

소외된 이웃과 약자에게 손을 내밀어 소통하고 사랑을 나누는 영화를 통해 좌와 우, 부와 가난, 노인과 젊음으로 나뉜 세태가 조금씩 변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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