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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비 Jul 28. 2023

이혼하고 남은 건 낡은 가구뿐

사람일은 모르는 것..결혼할 땐 혹시 모를 헤어짐도 생각하자 

이혼을 하기로 하고, 서울에서

지방에 있는 부모님 집으로 가는 날. 

그래서 신혼집이었던 서울로 짐을 빼러 가는 날. 

시댁과 전남편만 있는 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두려운 마음이 생겼었다. 

뭔가, 너무 불편해서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았었다. 

마음을 달래고 달랜 후, 사촌 오빠와 함께 서울에 올라갔다. 

이삿짐 센터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내가 혼수를 다 해 온 터라, 

대부분 내가 해 온 혼수는 가져가기로 했고, 

혼수는 다 알다시피, 가구, 가전, 식기류 등이었다. 


새 제품으로 반짝반짝 빛났던 가전, 가구 제품은 

3년이라는 결혼 기간 동안 그만큼 낡아있었다. 



결혼할 때 시댁에서 전세집을 마련해줬었고, 

우리집에서는 혼수를 해갔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합의 이혼이었고, 

서로 원래 했던 걸 가져가자고 합의했으니 

이삿짐으로 싣고 와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신혼의 단꿈으로 가득찼던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착잡했던 게 사실이었지만 

엄마가 최고로 최고로 좋은 것들로만 해주셨으므로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지방 부모님 집으로 가져오는 게 최선이었다. 


부모님 집은 43평으로 작은 평수가 아니었지만, 

20평대, 30평대 살던 살림에 있던 가전, 가구가 전부 들어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거의 구겨 넣다시피 이사짐 센터가 

내가 쓰던 가전, 가구들을 부모님 집으로 들여놓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너무 좁아진 집을 보니, 정말 죄송했다. 




냉장고도 2개, 세탁기도 2개, 에어컨도, 책상도, 뭐도.. 다 2개씩 되어버린 

이상한 집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딱, 불효녀가 된 기분이었다. 

효녀라고 자부하던 나는 가족들에게 불편을 주는 불효녀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서울에서 있을만한 돈이 없었고, 

이혼 후 위자료로 2000만원을 받은 상황이라, 

집을 얻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이후로 몇 년간 이어진 우리 가족의 좁아터진 공동 생활은, 

몸도 마음도 불편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부모님이 최신식으로 좋은 것으로만 혼수를 해주셨는데도, 

수천만원이 넘는 돈을 혼수로 써주셨는데도, 

3년 동안 중고가 되고, 이혼해서 자기고 오니 정말 애물단지더라. 


팔기에는 너무 헐값을 받아야했고, 

갖고 있기에는 공간을 너무 차지했으며, 

전남편 측은 전세금을 그대로 빼가면 되는데, 

가구와 가전은 물건이라 점점 감가상각이 되는 거라는 걸. 

이혼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꼭 이렇게 말한다. 

남자가 꼭 집, 여자가 혼수.. 사회적 통념대로 꼭 이렇게 할 필요 없어. 
최대한 서로 모은 돈으로 집은 공동명의로 하면 좋고, 
가구, 가전도 같이 해. 



이십대 후반. 너무도 어린 그 나이에

집안에 빽빽하게 자리만 차지하고 이제는 불필요해진 짐 만큼이나 

무거운 마음을 지고, 

내 이혼 1년차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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