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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새눈 Oct 18. 2024

아빠 꿈

너무 자주는 말고, 너무 무서운 모습으로는 말고.




꿈 1)


해어져서 너덜거리는 백색의 도포 자락,

흐트러진 채 턱까지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충혈된 한 쌍의 눈이 기괴하게 번뜩이는 흙빛 얼굴,

뼈가 툭툭 불거진 손으로 움켜쥔 키보다 높이 치솟은 반달모양의 기다란 칼(월도).

내 앞에 우두커니 선 그의 서슬 퍼런 모습에 숨이 턱 막히고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같이 가기로 했으니 같이 가자고, 단호한 음성으로 말하며 날 선 월도를 휘둘렀다.

나는 같이 가기로 한 적이 없다고 가지 않을 거라고 대들었다.

그러자 내가 가지 않으면 엄마를 해하겠다며 옆에 있던 엄마를 잡아채 목에 칼을 들이댔다.

나는 엄마를 놔주고 나랑 얘기하자고 소리를 지르며 떨리는 손으로 옆에 있던 식칼을 집어 들었다.

풀려난 엄마를 멀리 보내고 나는 그와 단둘이 대치했다.

그는 반복해서 같이 가자고 말했고, 나는 그가 체념하기를 기대하며 계속해서 악을 썼다.

있는 힘껏 발악은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나를 공격하거나 완력으로 나를 데려가려 한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까봐 가슴이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서있는 것조차 힘에 부친다고 느낄 때쯤 갑자기 옆에서 얼핏 그림자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날쌔게 나타나 과도를 그의 입안으로 깊쑤셔 넣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는 칼을 손에 쥔 채 바닥에 무릎을 풀썩 꺾고 앉아 피를 꾸역꾸역 토하며 울부짖었다.

피가 토해져 나올 때 마다 벌어진 입에서 튀어나온 과도의 손잡이가 함께 움직는 모습이 섬뜩했다.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았다.

얼굴이 피범벅이 된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를 황망하게 바라보다가 꿈에서 깨었다.


**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아서, 연이어 같은 꿈을 꿀까 봐, 결국 다시 잠들지 못했다.




꿈 2)


무슨 이유에선지 죽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내 손바닥 위에는 이미 독약이 들어있다고 여겨지는, 입구가 잘록한 작은 갈색 유리병이 놓여있었다.

것을 마시면 이제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쓸쓸하고 단호한 마음으로 독을 입 안에 털어 넣고 침대로 가서 차분히 이불을 덮고 누웠다.

그런데 아침에 되자 눈이 떠졌다.
기운이 없었고 눈앞이 조금 희미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불 속에서 비참한 마음으로 실패감에 짓눌린 무거운 몸을 뒤척였다.
엄마가 나에게 뭐라고 궁시렁거렸지만 내 상태를 눈치채지는 못한 듯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불을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인기척에 내 쪽으로 시선을 던진 그가 내 근처에 놓인 약병을 발견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나는 야단맞을까 무서워서 무릎을 꿇고 비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는 놀랍게도 약병을 밀어서 깨버리고는 나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알러뷰 쏘 머취.


어리석은 선택을 했던 나를 탓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난 나를 꼭 안아준 그의 품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그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

잠에서 깼는데 양 눈가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눈물이 계속 흐르는 와중에 눈물의 이유를 명확히 이해할 수 없어 혼란한 마음이 들었다. 슬프다기보다는 멍멍한 상태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날 저녁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실제로 듣지 못한 말이라 꿈속에서도 알러뷰 쏘 머취,라는 억지스러운 대사로 표현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참.. 서글펐다.




꿈 3)


시골 장터 길을 걷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다가왔다.

눈을  마주친 찰나, 서로를 확실히 알아보았다. 그리고 스쳐 지나갔다.

주변풍경이 느리게 흘러갔다. 두 걸음쯤 갔다가 이끌리듯 뒤를 돌아보았다.

바로 앞에 그가 서 있었다. 그는 촉촉한 눈으로 내 한 손을 맞잡으며 잘 지냈느냐고 물었다.

손바닥이 따뜻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그의 얼굴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고 느낀 순간, 금방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의 눈가가 팽팽해져 있었고 머리숱이 많아진 데다 머리색도 짙어져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수한 셔츠와 면바지 차림의 젊고 건장한 그에게서 선량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의 기억과는 다소 이질적인 그 모습에 마음이 짠하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그의 팔 아래로 허벅지께에 머리가 닿는 조그마한 여자애가 그의 바짓자락을 잡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에게 웃어 보였다. 모습이 그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할 일이 있다며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를 뒤따라 걸었다.

그의 나머지 한 손에 끈으로 묶인 상자가 들려 있었다.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언덕길을 한참 걸었다. 텁텁한 먼지 냄새가 났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어느 작은 식당으로 쏙 들어간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인과 친근하게 몇 마디 말을 나누고 들고 있던 것을 건네주었다.

우리는 말없이 왔던 길을 다시 걸어 언덕을 내려갔다. 하늘에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

이번에 아빠는 비루해 보이지도, 슬퍼 보이지도, 화가 나 보이지도, 불행해 보이지도 않았다. 본인의 삶에 만족하며 안정적이고 성실하게 사는 듯 보였다. 건실한 모습을 이렇게 밖에 보지 못해 한스러웠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6년째가 되었다.

평균적으로 거의 몇 달에 한 번꼴로 아빠 꿈을 꾼다. 특히 명절 즈음엔 좀 더 빈번히 꾸는 듯하다. 유난히 외로움을 많이 타던 아빠가 명절이면 외로워서 나를 찾아오는 건지, 아니면 내가 아빠를 외롭게 남겨둔 데 대해 미안함을 느껴 그즈음에 아빠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오랜 시간 함께 명절을 보내던 가족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슬픈 일이지만 아빠는 내 꿈속에서 대체로 무서운 모습이라 아빠 꿈을 꿀 때면 소리를 지르면서 잠에서 깰 때가 많다. 꿈속에서 아빠는 주로 화가 나있거나, 엄마와 싸우는 등 내가 무섭고 주눅이 들어 피하고 싶은 상황 속에 등장하여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들거나, 초라하고 궁색한 모습으로 등장하여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으로 내 꿈에 나타나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아직도 나에게 화가 나있는 건지, 나에게 할 말이 많은 건지,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고 싶은 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일방적인 접촉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 꿈들은 아마 나의 심리상태가 투영되었거나, 내가 갖고 있는 아빠에 대한 기억과 마음이 반영된 결과일 테지만, 나는 왠지 저승에서 아빠가 끈질기게 메시지를 보내오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일부러 고인을 나쁜 모습으로 만들어 꿈을 꾸는, 고인을 붙들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못나고 모진 딸이 되는 셈이니까 말이다. 때때로 그런 꿈을 꾸고 나면, 저승에서 아빠를 좀 더 늦게 만나기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겠다, 혹은 저승에서라도 아빠를 다시 만나기 싫어서 죽기 싫다, 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최근에 한 달 간격으로 꾼 세 개의 꿈은 그동안 꿨던 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첫 번째 꿈은 잠이 싹 달아날 정도로 무서웠지만, 생을 향한 나의 의지를 확인시켜주었다. 부끄럽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죽고 싶다거나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하는데, 왠지 아빠가 나의 그런 생각을 알아채고 호통을 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아빠를 따라가는 일이 죽음을 암시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기 싫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내가 이토록 살고 싶어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꿈 속이었지만 나는 정말로 죽기 싫었다.


두 번째 꿈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결핍이 꿈속에서 해소된 매우 의외의 경우였다. 대체로 아빠 꿈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또 다른 현실이었지만, 아주 드물게는 현실에 기반한 환상 같은 모습이기도 했는데, (설경이 아름다운 얼음산을 함께 오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온화하게 웃어 보이는 꿈 등) 이 꿈은 현실에 전혀 없던 장면이라 꿈을 꾸는 나 자신도 당혹스러웠다. 눈물은 났지만 뭐랄까 작은 민트맛 사탕을 먹은 듯이 마음 속에 개운하고 평온한 느낌만 남고 불필요한 무언가가 깨끗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세 번째 꿈은 내가 그렸던 이상적인 아빠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빠가 허영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로, 소박하고 근면하게 자신을 위한 삶을 일구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마음속 깊이 바랐었다. 꿈이었지만 그 모습을 볼 수 있어 정말로 기뻤다. 시간 간격이 좀 있었지만 세 꿈을 연달아 꾸고 보니 하나의 스토리처럼 이어진 듯했는데, 결말이 흐뭇해서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정말로 아빠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거라면, 이제야 아빠 마음이 편해졌다는 의미인 듯했다. 진심으로 그곳에서는 평안하셨으면 좋겠다.





나에게 있어 아빠나 가족의 얘기는 금기 같은 것이었다. 얘기하는 순간 약점이 잡히거나 동정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세한 얘기는 한 두명을 제외하고 거의 아무한테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부분이 내 약점이라는 것을 들키기도 했다. 숨긴다고 숨겨지지 않는 나의 역사를 어떻게 해서든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모든 시간들은 이미 나였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빠가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상징이었던 적은 없었다. 나는 아빠처럼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많이 사랑해 주셨다는 건 알지만 그 사랑이 너무 힘겨웠다. 아빠를 미워하면서 아빠를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고, 아빠를 더 많이 사랑할 수 없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세월을 보내며, 나의 탄생을 거스를 수 있었기를 바라는 비극적인 운명을 안타까워했다. 비극으로 겹겹이 쌓인 운명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얇게 한 꺼풀 벗겨진 듯 하다.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에  '아빠'가 주제인 동요를 듣고 너무 슬퍼서 울었던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는 그 노래의 제목은 아빠의 얼굴, 이었다. 가사처럼 내가 날개를 달고 무지개 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이리저리 나를 찾는 아빠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다 보면, 나를 걱정하는 아빠의 절박한 마음이 느껴지고 나를 찾아다니는 다급한 얼굴이 보이는 듯해서 그만 슬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천진한 마음으로 아빠를 깊이 사랑했던 때도 분명히 있긴 있었다.





이 글을 쓰면서 꿈에서나마 실제로 다시 볼 수 없을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빠 꿈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빠라는 존재는 아마 끝내 해소되지 못할 앙금인 채로 남아 있게 될 테지만, 앞으로도 종종 꿈속에서 만날 수 있으좋겠다. 


너무 자주는 말고, 너무 무서운 모습으로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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