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2일 목요일
현관문 앞에 서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했다.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앞집의 감나무잎이 비에 젖어 반짝였다. 어제는 그렇게 덥더니 드디어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하는가 보다. 그새 더 진해진 초록빛이 싱그러웠다. 날이 참 예쁘네. 남편도 내 눈을 따라 감나무를 보았다. 아직 덜 익은 작은 감들이 나뭇잎 사이에 새초롬하게 매달려 있었다. 매년 주렁주렁 감을 키우던 나무인데 어쩐 일인지 작년에는 감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었다. 아마도 작년에 앞집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감나무도 슬퍼했던 걸까 우리는 이야기했었다. 감나무를 볼 때마다 긴 막대로 가지 사이를 건드리며 감을 따던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렇게 미리 감을 따도 어떤 감들은 철퍼덕 길 위에 떨어져 골목을 더럽히곤 했었다. 올해는 더 많은 감이 떨어지려나. 탁한 주홍빛의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고 으깨지고 말라가는 걸 보면서 가을을 나게 되려나. 그러다 겨울이 오면 눈이 많이 내리는 어떤 날에 또 앞집 아저씨가 생각날 것 같다. 이 골목에서 눈을 쓰는 집은 앞집과 우리 집뿐이다. 작년 겨울에는 아저씨가 없고 나는 종일 집에 있어서 눈이 내릴 때마다 밖으로 나가서 눈을 쓸고 곳곳에 제설제를 뿌렸다. 눈을 쓸었다는 낭만적인 말 안에는 엄청난 노동이 숨어있다. 눈을 쓸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절로 앞집 아저씨가 생각났었다. 살다 보면 말 한마디 나눠본 적도 없는,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아는 것이라고는 주소지뿐이었던 한 사람이 그리워지기도 한다는 걸 배웠던 계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