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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선언문 (2025)

융통, 불통

by 김민주

<불통선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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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과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나의 고집스러운 선언이며,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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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 하나의 긴 배관 안에 태어난다. 지름 2.1m의 커다란 배관으로, 우리는 그것의 안에서 그것만을 따라서 살아가게 된다. 다른 이의 배관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닿을 수 있는 때는 한정적이다. 우리가 닿기 위해서는 먼저 드릴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을 들고 배관의 벽에 구멍을 뚫어라. 그러면 그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거나 내다보고, 손을 내밀어 잡아보는 것, 그런 때에야 잠시 우리가 닿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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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긴 인생에 당신을 위한 구멍을 뚫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나의 고통스러운 선언이자,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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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만하고 야박하여 당신과 통하지 않을 것을 선포했다. 30년 넘게 당신을 알고 함께 지내면서 나는 당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기로 한다.

당신은 나의 단호하고 단단한 배관을 단박에 뚫었다. 나는 당신이 뚫어놓은 구멍을 향해 늘 손을 뻗었고, 당신은 그때마다 나의 손을 뿌리쳤다. 어린 나는 당신의 손을 놓치고 애꿎은 아기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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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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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내 손을 잡는 걸 싫어했다. 원체 살이 닿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내 손은 땀이 많아 싫다고 했다. 나는 촉촉한 손바닥을 괜히 맞잡아 쓸어보면서 내 손에 땀이 많구나, 그래서 엄마가 싫어하는구나, 중얼거렸다. 아직 아기였던 동생의 손을 잡고, 짧은 다리로 바쁘게 엄마를 뒤따라갔다. 엄마, 엄마, 같이 가. 그러면 엄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오라고 소리쳤다. 동생을 재촉한다. 동생은 내 손에 땀이 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손을 꼬옥 잡고 있다. 나는 엄마를 놓칠세라, 동생을 잃어버릴세라, 발과 손이 모두 바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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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런 불편한 선언문을 쓴다. 나는 고집스럽고, 오만하며, 야박하여 엄마가 뚫어 놓은 구멍으로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는다. 이 이상의 구멍을 뚫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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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는 홀로 긴 배관을 걷는다. 민주의 울음소리는 배관의 벽을 타고 메아리친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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