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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12. 2024

조용한 집에 매일 누가 문을 두드려요!

멍멍-!!


“엄마! 오늘도 누가 집에 왔나 봐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내가 엄마를 지킬 테다!”


“아지야! 택배잖아 택배! 제발 그만 짖어!

너무 시끄러워서 아파트가 다 날아가겠어~“


지루한 일상에

새롭고 재미난 일,

뭐가 있을까 네게 물어본 어느 날이었어.


“아지야, 공부하는 거 말고 다른 거 할 건 없을까?”


내 질문을 들은 네가 갸우뚱 거리는 모습을 보니,

꼭 네가 함께 고민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문득 생각했지.


“아지야, 너와의 추억을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는 게 어떨까?”


멍멍-!!


너는 나와 함께한다는 이야기에 기쁜 마음이 들었는지 몸을 빙그르르 돌며 웃는 얼굴을 보였어.


“좋아! 처음이니까 사진 찍으러 밖으로 나가보자! “


네게 ‘밖’은 즉 ‘산책’을 의미하는 거였으므로,

내가 밖에 나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내내

너는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지.


“그렇게 좋아??

누가 보면 내가 너 산책 안 시키는 줄 알겠어!!

그런데 오늘은 평범한 산책이 아니야!!

여길 갈 거야!! “


너는 그곳이 어디든 다 좋다며 환영했어.


내가 가려고 한 곳은 ‘애견 카페’였어.

네가 가서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리는 모습을 찍고 싶었거든.


내가 가려고 한 곳은 꽤나 멀리 떠나야 했어.

부모님 댁 근처에는 ‘애견 카페’가 없었거든.

나는 차도 없으니

선택지는 지하철 밖에 없었지.


아직은 유모차에 익숙해지지 않은 너는

산책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뜬금없는 유모차 등장에

뒷걸음질을 쳤어.


“아지야!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 거야!

그러려면 이거 타야 돼! “


차라리 나를 밟고 가라는 듯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서서는

절대 안 타겠다는 네 의지를

나는 무너트릴 수밖에 없었어.


“엄마가 태워줄게 ^^ 우리 아지가 직접 못 타서 그러는 거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다고

물론 이럴 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네가 산책 얘기를 들었을 때와

나왔을 때 표정이 180도 달라서

하마터면 네가 사람인 줄 알았어.

어쩜 그렇게 시무룩해하는지.


그래도 유모차에 타면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기억하고 있었나 봐.


체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도

대체 어딜 가는 거냐고 묻는 거 같기도 했지.


“아지야 금방 갈 거야~

지하철로 15분 밖에 안 가!

엄마가 이렇게 너를 데리고

먼 곳까지 데리고 가는데 영광인 줄 알아야지!

가서 간식도 먹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자!“


네 표정에 금방 화색이 돌았어.

어디에 반응한 걸까?


지하철 15분?

간식?

친구들?


뭐가 되었든 네 표정이 다시 밝아졌으니

그걸로 난 마음이 한층 놓였어.


띠리리리-

문이 열립니다.


“다 왔다! 가자!”


너는 내 말소리에 맞춰 벌떡 일어났어.

어차피 네가 걷는 것도 아닌데

‘가자’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반응했나 봐.

저녁이라서 사람이 꽤 있을 줄 알았는데

평일이어서인지 사람이 없었어.


그래도 상주하는 강아지들이랑

토끼, 거북이, 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지.

여기야 말로 진정한 ‘애견 카페’였어.


산책할 때 비둘기가 보이면

사냥개 마냥

비둘기한테 뛰어가던 네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앵무새는 무섭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마냥 귀엽기만 했다.


아지야, 엄마 알지?

한 번하면 제대로 하잖아.


엄마는 이날을 기준으로 네 계정을 만들어서

한 달 만에 1500명 팔로워라는 쾌거를 이뤘어.


누군가는 1500명 밖에 안되냐며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처음이었고 정말 단시간에 이룬 거였으니까 더 욕심부릴 것도 없었지.


그때는 릴스 시대도 아니어서

유입을 이끌어내기도 어려웠거든.

(그런데 릴스 시대라니…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늙어 보인다 나)


그래서 여기저기 협찬을 많이 받게 되었어.

서포터즈도 하고

내가 이벤트를 열기도 하면서

공구도 해봤어.

네 덕에 나도 그 짧은 기간에 참 다양한 경험을 해봤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선물이 매일매일 집에 도착했는데,


너는 택배 상자가 집 앞에 놓이면

네 거인 걸 알아차린 듯

항상 택배가 왔다고 내게 알렸지.


나는 내가 사주지 못하는 좋은 음식들을

네가 잔뜩 먹을 수 있어서 좋았어.


내가 사주지 못하는 장난감들도

네가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과연 너도 행복했을까?


괜히 내가 내 욕심을 채우고자

이러저러한 음식들과 장난감을 네게 내밀며

너를 힘들게 한 건 아닌가 싶더라고.


매번 먹는 너를 촬영하고

입기 싫어하는 옷을 입히고

털을 빗으며 몸가짐을 정리하고


나는 최대한 네가 싫어하는 건 안 하고 싶은데

네가 싫어하는 행동만 하지 않았나,


너를 모델 삼아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를 올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건 아닌가,


정말 너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이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던 게 맞았을까,


너는 그냥 나랑만 있어도 행복한 아이였는데

내가 너를 욕심쟁이로 투영해 버린 건 아니었을까,


그렇잖아.

부모님이 우릴 위해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마냥 행복한 건 아니었듯이,


내가 너를 위해 하는 게

너에게 행복한 건 아닐 수 있으니까.


나는 네가 행복했길 바라.

지금도 행복하길 바라고

앞으로도 행복하기만을 바라.


행복하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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