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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15. 2024

이제 그만 나만 바라봐줄래?

코로나19는 계속 이어졌어.

이렇게 오래갈 줄 누가 알았을까?


그래서 비행이 본격적으로 재개되기 전까지는

나는 대체로 부모님 댁에서 지냈어.


이번 팬데믹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어.

그래서 국가에서도 가감 없이 지원을 해줬지.


영업시간을 제한했던 자영업자들은 물론이고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항공사들도 포함됐었어.


자영업자야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 항공사가 좀 많아야지?

이 좁은 땅에 항공사가 엄청 많잖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생 항공사까지 포함하면 나도 다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그런 만큼 항공사는 직원도 많았어.

그래서 처음에는 유급 휴직으로 금전적 지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니 그마저도 끊겨서 무급 휴직을 했어야 했지.


그런데 한 달 무급 휴직을 하면 그다음 달은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물론 이것도 무조건 정해진 루틴은 아니었어.

즉, 다음 달에 꼭 일을 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던 거지.


직원들은 늘 내일을 모르고 살았어.

코로나19에 대한 전망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는데

우리도 별 수 없었지.


그런데 나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미래를 두고 사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

계획을 세워서 무언가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회사에 아예 무급 신청서를 내버렸지.

‘장기간 무급을 하겠다.’라고 말이야.


그리고 나는 다른 회사에서 사무직도 경험해 보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새로운 업무를 해봤어.


그렇게 나는 부모님 댁에서 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아마 너는 이제 나와 부모님 댁에서 평생 함께 같이 사는 줄 알았겠지?


그런데 나는 무급 휴직 기간이 끝나고

다시 내 자취방으로 돌아가야만 했어.


스케줄을 봤는데, 한 달에 반만 일하는 거야.

그리고 다 국내선만 가는 거 있지?


그래서 너를 함께 데리고 자취방으로 갔어.

어차피 네가 혼자 있을 시간은 이제 얼마 되지 않을 테니까.


나 한창 몸 만들 때 활동량 늘리려고  

내 자취방에 살 때 우리 산책 정말 많이 했었잖아.


그때 살았던 집을 네가 너무 오랜만에 가서

너가 기억을 못 할 줄 알았는데

다시 가니 기억이 났는지,

너는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가장 먼저 네 집을 찾아 종종걸음으로 가더라.


아니면 네가 나와 만나서 처음으로 간 곳이 내 자취방이라 기억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네 고향 같은 느낌이 아닐까?


아무튼 문 앞에 짠- 하고 멈춰서는

내가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는 네 모습이 너무 귀여웠어.

한편으로는 어디서 이렇게 똑똑한 강아지가 나타났을까 싶어 뿌듯하기도 했지.


처음에는 이 좁은 집으로 다시 데려오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오랜만에 와서 네가 어색해하지 않을까,

혹은 불안해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내가 부모님 댁에서 짐을 쌀 때

너를 데려가지 않을까 봐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는 게 영 신경 쓰여서 결국 데려온 거거든.


근데 문 앞의 네 모습을 보니

잘한 선택을 했구나 안심이 되었어.


그리고 이번에는 저번처럼 네게 절대 화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도 했고

이전처럼 산책도 많이 시켜주겠다고 네게 약속했지.


다짐과 약속을 하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어.


‘너의 세상은 정말 나뿐인 걸까?‘

‘내가 없는 세상은 너에게 어떤 걸까?’


공감해 보려고 우리 부모님을 대입해 봤더니 단박에 이해가 가더라.


부모님이 나한테 모르는 언어로

‘엄마아빠 어디 갔다가 올 거야!

기다리지 말고 얌전하게 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거잖아.


언제 올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럼 나는 밖에서 무슨 소리만 나면

‘엄마아빠인가?’하고 문을 슬쩍 열었다가 닫기를 반복하겠지.

‘왔나보다!’라는 설렘을 느끼고서

‘아니네…’하고 없는 걸 확인하고 실망하고 말이야.


‘혹시 나를 버리고 간 게 아닐까?’ 온갖 상상을 하고

‘아니야 나를 꼭 데리러 올 거야!’ 라며 문을 향해 귀를 쫑긋 세우겠지.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한 걸

너는 그 오랜 세월 참 많이도 반복했겠구나 싶어서

나는 또 너 몰래 눈물을 훔쳐.


내가 가족에게 지는 빚은 부모님이 다 일거라 생각했는데, 네게도 참 많은 빚을 진다.


내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너,

내게 아낌없는 애교를 부리는 너를 볼 때면

가끔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낸 게 아닐까 생각해.


천사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았을 테니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거 아냐.


안 그래도 백설기처럼 하얀 네가 오늘따라 더 천사로 보인다.


‘아지님, 혹시 날개 없는 천사세요?’


그런데 정말 그런 거면 좋겠다.

네가 만약 목숨을 거두면 갈 곳은 천국이라는 뜻이고,

너의 세상은 내가 전부가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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