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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무지 Jan 19. 2024

내 눈앞에서 사라져!!!

이렇게 끝내긴 아쉬워서

네가 나에게로 온 첫날,

너는 ‘꼬물이’ 그 자체였어.


참으로 작디작은 네 몸을

내가 함부로 만질 수도, 들 수도 없겠는 거야.


고작 2kg 정도 됐을까?

한 손으로 들어도 가벼웠어.


혹시라도 떨어트릴까 봐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했었지.


지금은 6kg이 훌쩍 넘잖아?

두 손으로 들어도 무거워서

1분 만에 너를 내려놓는데 말이지.


한 손으로 너를 들었다는 게

상상조차 되지 않는 기억이 되어버렸구나.


너는 진한 쌍꺼풀의 소유자라,

크면 클수록 잘생긴 수컷이 되리라 기대했어.


그런데 어릴 때는 털이 없어서 쌍꺼풀이 보였나 봐.

지금은 사라진 건지 안 보여.


혹시 나 몰래 쌍꺼풀 제거 수술 같은 걸 한 거니?

어머, 혹시 중성화 수술하러 갔다가 다른 강아지랑 바뀐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닐 거야. 내가 널 못 알아볼 리가 없으니까.


너는 처음 보는 사람을 가리지 않았어.

이 세상이 처음이라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누구든 의지할 엄마가 필요했던 걸까?


네가 나를 좋아해 주어 고맙고 행복했어.

겁에 질려 구석진 곳에 있을 법도 한데,

먼저 다가와 손도 핥아주고

내가 부르면 꼬리도 살랑이는 게

영락없는 애굣덩어리였지.


그래서 나는 네가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과 우리집이라는 환경에

적응했다고 생각했어.


집안 곳곳을 쏘다니며 수색도 하고

마킹도 완료했으니까

안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했지.


나는 너를 데려오기 전,

너를 위한 갖가지 물품들을 구비했었어.

그릇, 패드, 집, 사료, 방석, 담요 등등 말이야.


특히 네 집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너도 방해받지 않는 너만의 공간이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처음으로 함께 밤을 맞이했고,

나는 너와 함께 침대에서 자고 싶었지.

그런데 내가 너를 혹시라도 뭉개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그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너를 네 집에 넣고 각자 잠을 청했어.

물론 나는 곤히 잠을 자는 너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잠에 들었지.


그러다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은 거야.

네가 잠에서 깰까 봐 조심조심 다녀왔는데,


갑자기 네가 그 작은 몸으로 힘껏 짖더라고.

‘옆집에 들리기나 할까?‘

생각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


컴컴한 가운데 갑자기 어디서 소리가 나서

네가 놀랐나 보다 싶었고

나는 즉시 너에게 달려가 이야기했어.


“아지야! 괜찮아~

엄마잖아 엄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너는 반복재생을 틀어놓은 듯,

좀처럼 짖는 걸 멈추지 않았어.


내가 다가갈수록 더 짖는 속도가 빨라져서

우선 불을 켰지.


그 순간 내가 마주한 장면은

너가 네 집 앞에 나와서

오줌을 싸면서 몸을 떨고 있는 거였어.

자기 자신을 지키겠다고 짖고 있던 거였지.


그 어둠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형체가 돌아다니니

너는 저승사자를 본 것마냥 무서웠던 모양이야.

“내 눈앞에서 사라져!!” 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때 알았지.

하루종일 내 몸 위에서 내려올 줄을 모르던 네가

아직 이곳과 내가 익숙해진 게 아니었다는 걸.


사람도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너라고 아니었을까.

내가 네 생존본능을 알아채지 못하고 안일했던 거야.


놀란 너를 진정시키고 나와 함께 자기로 했어.

혼자 두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아서.


그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어찌나 몸이 뜨겁던지, 순간 네가 감기에 걸렸나 했어.

걱정되는 마음에 다음날 병원에 가서 바로 확인해 봤더니 이상 없다고 해서 다행이었지.


그날 이후로, 너는 항상 내 배 위에서 잠을 잤어.

네가 내 배 위에 있으면 핫팩을 올려놓은 거 같아서

나도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었지.


네게 안 좋은 추억이 되어버린 네 집은

두 번 다시 들어가지 않았고

나는 다른 강아지에게 네 집을 넘겨주게 되었지.


네 몸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커질 줄이야.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네 몸은

결국 내 배에서 잘 수 없게 만들었어.


처음에는 다리가 한쪽 내려가더니,

그다음에는 두 쪽이 내려가고,

그렇게 네 다리 모두

내 배 위에서 추락하게 되었어.


급기야 너는 배를 웅크리면서

내 배 위에 올라와 있었지만,

그마저도 얼마 못 갔지.


너는 이제 얼굴만 간신히 내 배 위에 올려놓고

나를 쳐다보곤 해.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서

나는 여러 단어를 던져보곤 하지.


“아지야 왜 쳐다봐?“

“간-식?”

“산-책?”


갸우뚱하는 너를 보며

나는 또 귀여움을 숨기지 못하고

간식을 챙겨서 산책을 나가.


너가 어떤 걸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둘 다 좋아하는 건 분명하니까 말이야.


만약 저것도 아니라면,

너는 그저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거더라.

“엄마, 아지가 너무 좋아해요!”


이 의미라는 걸 알아챈 후로는 나도 대답해 줘.

“아지야, 엄마도 아지를 오조오억배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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