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 가구

by 장서윤

출판사 보름산미술관에서 발간한 그림책 <감정동 사람들>의 에필로그 글입니다.


7-2.jpg

스스로 유행을 좇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유행에 굉장히 민감한 나에게

인테리어는 또 하나의 소비 창고다.


바야흐로 중학교 1학년 때.

디즈니 세계관에 빠져 핑크 핑크 한 방을 갖고 싶었던 나는

당시 유행했던 캐노피가 달린 철제 침대와

몽글몽글한 구름이 떠다니는 파란 하늘이 프린트된 천장에 만족을 못하고

직접 핑크색 벽, 핑크색 책상, 핑크색 옷장을 제작하는 셀프 인테리어를 결심하였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동네 페인트 가게에서

빨간색 페인트와 하얀색 페인트를 구매하고

집에 와서 적당~히 색을 혼합하여

전문적인 장비 하나 없이 방문을 닫고 벽과 모든 가구들을 핑크색으로 범벅을 해놓았다.

(칠을 하다 핑크색이 부족해 다시 섞고 칠하고를 반복하며

농도도 안 맞는 핑크색을 신나게 발랐다.)


전셋집이 아니었으니 천만다행이었지…


방을 있는 대로 엉망으로 망쳐놓고

순진한 얼굴로

“엄마, 어때? 내가 다했다!”

자랑하던 나는 등짝 스매싱을 맞은 건 기억도 안 난다.

매일 밤, 잠들기 전 공주님 침대에 누워 핑크 세상에서 만족했던 기억만 남았다.


요즘은 미니멀 라이프에 빠져

침대도 버리고 화장대도 버려 얇은 토퍼를 깔고 생활하는 중이다.

방에는 벽에 붙은 큰 책장을 제외하곤 눈에 거슬리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무용을 해도 될 정도다.

아무것도 없는 방에 가만히 앉아 맥주 한 잔을 할 때면 절로 흐뭇해진다.


지금 같아선 앞으로 어떤 유행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통장이 미니멀해지고 싶지 않다면

2020년 그 어떤 강력한 유행이 다가온다 해도

침대와 화장대, 멋진 의자들이 가득한 진경 가구는 당분간 출입 금지다.



+12월 32일이라고 33일이라고

진경 가구.jpg


이전 05화부부 국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