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연 뜨개방, 우리 모두 은행, 차앤김 미용실

by 장서윤

출판사 보름산미술관에서 발간한 그림책 <감정동 사람들>의 에필로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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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the 2005, 나의 14살.


우리 아파트 상가는 동네에서 가장 크고, 학교와 가까워

하교 후 친구들을 만나는 만남의 장소로 통했다.


상가 1층에 위치한 차앤김 미용실은

창이 넓어 이유 없이 안에 있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때문에 학교 두발 단속에 걸려 어쩔 수 없이 가지 않는 이상

동네 아주머니들만 다니는, 우리에겐 절대 금지 구역이다.


'에이, 설마 걸리겠어' 하고 등교한 월요일 아침,

하필 학생 주임 선생님께 걸려 다음날 1교시 전까지 두발 검사를 받아야 했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차앤김에서 머리카락을 잘라야 한다는 얘기.


수업이 끝나고 집에 들러 사복으로 최대한 정체를 숨긴 채로

미용실에 입성했다.


여드름 잔뜩 난 이마에

물에 젖은 5:5 가르마 머리,

거무튀튀한 망토를 목이 쫄리게 두르고 있는 모습은

내가 봐도 끔찍하다.


제발 원장님이 파마 아줌마와 대화를 그만하고

빨리 내 머리를 끝내주셨으면 한다.


고개를 숙일 순 없고,

눈동자만 내려 신발 앞 코만 보고 있어서 그랬는지

아는 사람 한 명 안 마주치고 미용실을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




머리가 빨리 끝나면 상가 2층 우리 모두 은행에서 엄마를 만나기로 했다.

혹시나 해서 가보니 엄마가 번호표를 쥐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엄마한테 자른 머리를 확인받고

옆에 앉아 빳빳한 파일에 감춰진 잡지 하나를 골랐다.


엄마는 창구에 가고 긴 의자에 혼자 남아 자연스럽게 어른 포즈를 취했다.

각종 화장품 광고가 이어지고 일일 드라마 악역 전문 탤런트의 반전 일상을 읽고 있자니

엄마의 용무가 끝이 났다.


아직 차기작 얘기를 못 읽었는데,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코스

2층 비상계단 옆에 위치한 숭연 뜨개방.


내가 아는 한 엄마는 처음부터 뜨개질을 잘하는 사람이다.

유치원 때부터 뿔이 달린 털모자, 목도리, 카디건, 원피스까지 직접 떠주곤 했다.


유치원생이 중학생이 되면서 사라진 엄마의 취미가

나의 학교 수행평가로 다시 부활했다.


다음 주까지 완성해야 하는 안뜨기, 겉뜨기만 반복되는 무채색의 목도리와

마감일이 없는 현란한 무늬가 들어간 알록달록 니트가 같은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나도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누군가의 어른이 되면

처음부터 뜨개질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을까.




+ 시작도 전에 끝나버린 짝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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