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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아이

by 김재용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오죽했으면 지인이 내게 "너는 사람한테 관심도 없으면서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며 다른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사회 변화를 꿈꾸는 이유가 뭐야?"라고 물을 정도다. 나는 주변 사람을 포함한 개인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회 전반적인 다른 사람의 안녕에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까지 노력한다.


특히 그의 시선에서는 사회 변화를 위해 내가 하는 노력이 이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고작 빵 하나 사면서 노동자를 죽이는 기업에서 제조하는 것인지를 확인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에어컨 없이 묵묵히 버티는 내 행동의 근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질문에 나는 혼란스러웠다. 오지랖과는 또 다르다. 단순한 오지랖이라면 주변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질문에 나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환경, 불평등, 차별, 사회지배구조 등에 노력해야 하는 저마다의 이유들은 넘쳐나지만, 나와 관계없어 보이는 것을 하나로 묶어줄 이유는 답할 수 없었다. 이미 신념처럼 굳어져서 체화된 생각의 연결 고리가 맹목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지 그는 물었다. 그는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내 행동을 지지하지만 목적을 잃은 행동은 경계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은 잠깐이었지만, "글쎄? 나도 깊이 고민해 봐야겠어."라고 일단 대답을 미뤘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음에도 이토록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진정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내가 평소에 쓰는 사회 변화 글쓰기도 사회 문제에 집중되어 있고, 하는 일도 직접 서비스보다 시스템 변화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한다. 확실히 개인보다는 사회에 관심이 많다.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닌 지점에서 질문을 이어갔다. 나는 일상에서 답을 찾아보았다. 전적으로 내 선택에 의해 데려온 강아지와 함께 살아가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기도 하고, 여러 해 살이라는 말에 데려온 미니 장미를 건강하게 자라도록 해가 들어오는 위치에 따라 매일 화분을 옮겨주고, 양념이 묻은 비닐을 속까지 열어 씻은 후에야 분리 배출한다. 내 삶에 대부분의 노력은 책임과 관련된 것이었다.


아이는 때때로 현재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어른은 다르다. 어른이 아이처럼 행동한다면 주변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잃을 테다. 나는 어른의 모습을 아버지를 보면서 배웠다. 내가 아이였을 때 아버지는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특히 아버지는 "너의 말이나 행동으로 네가 피해를 입게 될지언정,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며 내가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쳤다.


반면 '어른 아이'는 어른의 몸을 가진 아이다. 나는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 아이라고 느낀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가 있다. 내가 최근에 자꾸 현실과 적당히 타협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한 장의 사진을 위해서 수백 년 썩지 않는 현수막을 만들고, 변하려는 의지가 없는 상대방을 설득하기보다 인사이동으로 담당자가 변경되기를 무작정 기다리고, 직책이 올라가면서 나의 신념이나 전문성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전문성을 대가로 매월 돈을 받는다. 따라서 말과 행동에 온전히 책임지는 어른이 됐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듯하다. 전문성 있는 대답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택하는 책임 없음이 영락없는 어른 아이다. 누군가는 오히려 타협하거나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것을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동화되는 사람을 많이 봤다. 나중에는 책임은 온 데 간데없고 변화를 두려워하기에 이른다.


그의 질문으로 사람에게 지대한 관심이 없어도 사회복지사로 일할 수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일상에서 심각한 불편을 감내할 정도의 사회 문제에 관심은 필요하다. 이를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어른 아이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퇴사까지 결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이토록 애쓰는 이유는 관심이 아니라 책임이었고, 온전한 어른이 되기 위해 지불할 대가는 두렵지 않다. 책임을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어른 아이가, 어른이 되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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