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돌덩이처럼 무거운 두 가슴이 축 늘어진다. 몸은 마치 짐승처럼 피곤해져 모든 행동 하나하나에 대가를 요구하는 듯했다. 빼빼 마른 문숙 여사가 하얀 옷을 입고 유튜브 화면 속에서 말을 이어갔다.
"모든 행동에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있어요."
그녀의 음성은 낮고 고요했지만, 그 속에 담긴 무게는 한없이 깊었다. 광채 나는 그녀의 피부와 잔잔한 미소는 이미 인간 세상을 초월한 듯했다. 튀김을 아작 씹으며 입안에 스며드는 기름의 여운을 느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기름이 내게 남길 결과는 무엇일까? 그러고는 문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내 안에서 솟구쳤다. 어제는 ADHD 약을 제때 먹지 못했다. 그래서 하루가 고통스러웠다. 충동적으로 떡볶이를 시키고, 집 밖으로 나가 캔 맥주 네 개를 사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마치 목마른 사막의 짐승처럼. 그리고 쉬지 않고 먹었다. 몸이 무거워지고, 숨쉬기조차 어려워졌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오늘은 다행히 약을 먹을 수 있었는데, 약효가 돌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약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 내가 진짜 나일까? 이번 주는 유난히 힘들다. 생리하기 일주일 전. 호르몬은 폭풍우처럼 내 몸을 휘감고, 나는 그 폭풍에 휘말린 작은 배처럼 흔들린다.
오늘은 금요일. 남편과 섹스하는 날이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그 행위를 거부하고 있었다. 아마 남편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가 오늘 하지 않으면, 이 무심한 일주일은 지나가고 나는 생리를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남편의 생리적 욕구는 다른 곳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날 것이다. 그 화는 또 다른 폭풍을 일으키고, 우리는 또다시 싸우게 될 것이다. 이별을 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산을 오르거나 외식하고, 만화방에 갔을 때는 그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잠시 사라졌다. 살아있다는, 건강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햇살이 비추는 따뜻한 오후처럼. 대학원 실기 시험을 보러 갈 때도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이 있다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만족해도 되는 걸까?
중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하얀 분필이 날아와 머리를 때렸을 때, 나는 무력하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분필을 맞춘 선생님은 깔깔대며 웃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수업이 이해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다른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혼자 방황하는 기분이었다. 어느 모임에 나가 무슨 설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늘 이해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나를 답답해했다.
영화를 보다 남편에게 뭔가를 질문 할때도 그는 어이없어했다. 정신과 의사가 내게 ADHD 증상을 의심했던 것도, 내가 자주 '네?'라고 되물어서였다.
요즘 사람들은 모두 ADHD증상이 좀 있다고 한다. 뇌구조가 다른건데, 정상인이 내 답답함을 알리
없을텐데.
ADHD 약은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암페타민과 메틸페니데이트. 우리나라에서는 메틸페니데이트만 다룬다고 한다. 요즘 ADHD 진단과 약 처방이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미국에서는 에더럴 복용이 오래전부터 유행했다고 한다. 전쟁 때 군인들, 실리콘 밸리의 아이들, 가난한 동네의 십 대들. 그들은 불법으로 필로폰을 복용하고, 부유한 아이들은 의사의 처방으로의 약을 복용한다. 자본 경쟁 속에서 그들은 모두 같은 약을 먹는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은 집중력을 높인다. 하지만, 나는 헷갈린다. 이 사회가 집중하기 어려워서 집중력 결핍 환자가 느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초고도로 집중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것일까? 나는 누구인가? 남들보다 이해가 느리고, 참을성이 없어 저지르고 후회하고, 절제하지 못해 나 자신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나. 상처만 가득한 나. 사랑받고 싶다고 울부짖어도 아무도 안아주지 않는 가시 돋친 선인장. 생리할 때가 다가오면 가슴은 철근처럼 무겁고, 배는 땅바닥에 쳐져 기어 다니는 뚱뚱한 애벌레. 하지만, ADHD라는 진단을 받고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를 위로했다. 머릿속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나를 다독였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 감사했다.
약을 오용하는 사람들은 내 알 바 아니다.
그리고, 섹스.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