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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녕 Oct 05. 2022

#9. 어쩌면 N번 째 인생

:: 벗어나는 연습 ::

마포대교는 무너졌나?


2014년, 대학생이었던 나는 제일기획의 프로젝트, 생명의 다리인 마포대교의 글귀를 꼭 보고 싶었는데, 좋은 기회가 되어 공모전 수상겸 서울 나들이를 가게 되었다. 노량진에서 길거리 음식도 먹고 한강대교를 건너며 마포대교와 비슷한 글귀들을 보았는데 그땐 그게 뭐라고 마포대교를 못 가서 섭섭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한강대교도 아주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대교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아마 한강에 여러 대교가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을 어린 시절이었을 것이다. 서울살이 5년 차가 된 지금은 한강대교를 자전거 타고 넘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고집과 갇힌 사고에서 벗어날 , 예쁜 풍경을 마주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가끔은 계획되지 않은 길이 추억이 되고 아름다울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하로도 가는 길이 과연 어둡기만 할까


나는 지하로 내려가는  좋아하지 않아서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걷다 보면  복잡한 교차로를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럴  어쩔  없이 지하차도나 지하철 통로를 이용하기도 한다. 지하로 들어가면 예쁜 풍경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고집부리며 굳이 굳이 돌아가는 길을 택했지만 사실 지하통로는 내가  빠른 길을 걸어갈  있고 영원히 어두운 통로가 아니라 결국 밖을 나올  밝은 풍경을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빠른 길을 택하기 위해 잠깐의 어두움은 감수해야 하나 보다.



사소한 일에도 열심히 하는 태도


"쓸데없이 열심히 했네."


어렸을 때부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을 때, 자주 듣던 말이었다. 칭찬을 바라고 한 일들은 아니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만큼만 일들의 대가는 별 볼 일 없다는 듯 말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하나 언제 어디서 누군가가 지켜볼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가장 기본적인 습관과 태도에서 그 사람의 평소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사소해 보이는 가장 기본적인 일도 대충 하라는 법은 없었다.

'1분, 2분 정도의 지각쯤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약속시간의 10분, 30분, 1시간을 늦을 수도 있다는 것. 사무실의 책상이 늘 어질러져 있는 사람이 자신의 보금자리인 집을 깨끗하게 치우는 사람은 확률적으로 드물다는 것. 잠깐 아는 사람으로 스쳐 지나갈 때는 모르지만 오랫동안 지켜보았을 때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군대를 다녀온 것은 아니지만 집에 오면 각 잡듯이 오전에 흐트러 놓고 나갔던 물건들을 제자리에 정돈한 뒤 건조된 빨래를 개고 물기가 사라진 접시를 찻장에 넣는다. 30분 뒤 다시 쌓인 흰 빨래들을 모아 잠시 접어 둔 건조대를 펼쳐 빨래를 널 준비를 하고 찻장에 넣었던 그릇들을 꺼내어 저녁을 차려먹는 반복 적인 일을 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청소가 있는데 1인 가구로 살게 되면서 일주일에 한 번, 화장실 청소를 주기적으로 한다. 2주가 넘어가 버리면 혼자 사용하는 화장실인데도 불구하고 금세 더러워진다. 그러니 조금씩 자주 청소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깔끔한 공간을 유지할 수 있다. 


어렸을 땐 몰랐지 화장실을 깨끗하게 유지하려면 이렇게나 자주 청소를 해야 하는구나.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때 즈음 통화 너머로 엄마한테 화장실 청소 주기를 여쭈어보았다.
자그마치 20 몇 년 동안 네 식구가 사용하는 2개의 화장실을
혼자서 깨끗함을 유지시켰다는 사실을 듣고 30초간 시간이 멈춘 듯했다.


유독 내가 집, 나의 공간에 대해 유별나게 청소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들도 우리 집을 오면 깨끗하고 참 깔끔하게 잘 꾸며놨다.라고 말은 했는데, 듣기 좋으라는 소리를 해준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지 않는가? 깨끗한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어느 날, 반전세에 월세를 조금 납부하며 살던 원룸에서 화장실 전등이 나가 집주인분이 등을 갈아주러 온 적이 있었다. 등을 다 갈아주시고는 "집을 굉장히 깨끗이 유지하고 사시네요. 화장실만 봐도 어떻게 살고 계신지 보인다."라고 말씀하실 때 비소로 "어? 나 정말 깨끗하게 치우고 사는 사람이구나."라고 스스로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정말 피곤하고 몸이 힘든 날에는 어질러진 방 안에서 곤히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비몽사몽 치우곤 했다. 1인 가구 가장으로서 5년 차가 된 지금. 사소해 보이는 정리정돈, 집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행동이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건의 시작은 가장 기본적인 것, 가장 사소해 보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나는 어떤 사소한 습관을 통해 만들어진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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