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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파도

by 한영옥

몇 일 전부터 아니 몇 주 전부터 스트레스가 쌓인다. 부딪히게 될 잔잔한 파도들이 일어날까봐 걱정된다. 표효하는 마음이 표출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몇번이나 마음을 다지고 다지지만 너무 잘 알기에 불안하다.

친정에서 하룻밤 자게 되면 부딪히게 될 내 마음 속의 파도들이 몰려오고 있다. 분명히 아침에 8시 ~9시 사이 아침밥을 먹으라는 소리가 계속 될 것이고 왜 이렇게 살이 쪘는지 살빼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존감은 바닥을 칠 것이다. 원치 않았던 것까지 더 싸주는 것에 실랑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 될때까지 계속 될 이야기들이 듣기도 전부터 듣기가 싫다.

최대한 늦게 친정집에 도착하고 싶다. 다행히도 저녁 6시에 수원화성 문화 해설 들으며 구경하는 체험을 신청해놔서 오늘은 가서 잠만 자면 되고 어버이날 챙길 것 챙기고 아침만 먹고 10시에 나오자는 결심이 섰다.

체험이 끝나니 늦은 9시 였다. 우린 친정에 도착하니 배가 고파서 아이와 나는 저녁을 차려 먹고 남편과 아빠는 술한잔 하였다. 엄마는 술자리의 안주를 차려 주었다. 나는 최대한 눈을 안마주치고 아이의 저녁밥을 차려 같이 먹었다. 아빠는 남편과 술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의 살을 운운하며 살이 너무 쪘다고 몇번을 얘기 한다. 드디어 시작이 되었다. 나한테는 불똥이 튀지는 않았지만 눈빛으로 말해주고 있다. 나의 아래 위를 살피는 엄마 아빠의 눈을 완전히 외면 했다.

저녁을 후다닥 먹고 치우고 방에 들어가니 나지막히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녁을 저렇게 먹고 바로 자니 살이 찌지 하면서 말이다. 군것질 거리가 가득한 친정집을 보면서 아빠에게 잔소리 한번 하고 싶다. 아빠는 군것질 거리를 좋아해서 항상 자신이 먹을 것을 마트에게 가서 떨어지지 않게 사둔다. 보아하니 컵라면, 쌀과자, 사이다, 토마토 주스, 햄까지 아빠가 좋아하는 것 투성이다. 엄마는 아직까진 뭐라고 하시지 않으시지만 조만간 슬슬 시작하실 것이다.

아이가 준비하여 만들고 쓴 애교 선물들을 전달하고 우리가 준비한 과일세트와 홍삼세트 드리고 우리의 전달식은 끝났다. 이에 질세라 엄마 아빠는 아이에게 용돈을 내밀며 애교의 답변을 주신다. 그나마 아이가 엄마 아빠와 나 사이의 소통을 도와주고 있다. 우린 너무 피곤한 나머지 스르륵 잠이 든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엄마가 아침을 차리는 소리가 들린다. 다가올 파도에 준비를 단단히 한다. 나는 지금 아침을 먹고 싶지 않다. 내가 먹고 싶을 때 먹겠다. 그리고 내가 먹고 싶을 때 내가 차려 먹겠다. 엄마의 파도가 밀려온다. 일어나서 아침 먹으라고 한다. 난 분명히 내 생각을 전달한다. 엄마는 그 뒤로 몇번 더 시도해 본다. 내 생각을 전달한 뒤부터는 무반응으로 한다. 그래야 파도가 지나간다. 그나마 오늘은 잔잔하게 서로를 배려하면서 지나간다. 내가 파도가 일어 쓰나미를 몇 번 분출해서 그런지 그 뒤로 부터는 나의 말을 들어준다. 충분히 자고 일어난 뒤에 먹는 아침밥은 나의 배속으로 잘 들어갔다. 이것 저것 챙겨주는 엄마를 보며 간섭 아닌 간섭으로 느껴진다.

에세이 클럽 4기 고진나 멤버이신 캐리소님의 글이 생각난다. '내 상처는 어떡할 건데' 라는 제목으로 딸에게 받은 엄마의 상처를 보다듬는 내용이었다. 내가 지금 위에서 나열한 나의 이야기 들이 나이 40에 부끄럽기도 하다. 키워주시고 길러주신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어버이 날에 내 상처 봐달라고 내 얘기 들어달라고 한다. 캐리소님의 이야기 처럼 우리 엄마, 아빠의 상처도 있을텐데 말이다.

살이 찌면 건강에 안좋으니 살빼라는 얘기와 아침밥 제때 챙겨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일 뿐인데 난 할 도리 한다고 가면서 부모의 마음은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에게는 좋은 부모가 되려고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원하는 것 사주고 아이가 좋아하니 뿌듯하다는 마음으로 순간 어리석은 부모, 자식이 되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온화한 미소, 예의바른 태도 이런 것들은 하지도 못하면서 생색낸다고 이것저것 준비한 나의 모습에 반성의 파도가 밀려온다. 점점 나이 들어가시는 외로운 부모님인데, 이 파도의 물결은 친정을 다녀와야 밀려온다. 엄마가 바리바리 싸준신 간장, 매실액, 깨소금, 김치, 상추 하나하나 펼치면서 당연한 듯이 받아오는 나의 태도에 미안함의 파도가 밀려온다.

우리가 가고 난 후에 엄마, 아빠는 우리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기만을 바라고 또 바랄 뿐 일 것이다. 내가 엄마, 아빠에게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회하는 마음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는 나의 속풀이나 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내 마음 깊은 곳의 씁쓸한 마음이 파도가 치며 밀려 나온다.

나도 더 나이 들어봐야 알겠지. 상처로만 생각했는데 엄마, 아빠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많은 나눔을 받고 풍족하게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은 부모가 되려면 나의 부모님의 감사함을 알고 부모님에게 바라지만 말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은 도울 수 있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낀 중간 위치에서 건강하고 성숙되게 마음을 가져본다.

서로 연결된 사이에서 부모와 자식에게 화내지 말고 나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길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파도의 소리도 들려온다. 건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야겠다. 어버이 날을 맞아 반성과 다짐의 파도가 밀물과 썰물을 이루며 자연스레 일어난다. 다시 잔잔한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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