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아직 책상을 빼지는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시 요구자료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60일 동안 비운 자리에 돌아왔다고 신고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키보드를 두들겼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앞두고 신지록신을 끊은지 일주일 차였는데 생각보다 컨디션은 괜찮았다. 항진증 상태라 그런지 얼굴이 조금씩 붓기 시작했다. 저요오드식이도 동반했는데 정제소금만 먹을 수 있기에 외식 자체가 불가능했다. 집에서 싸준 도시락으로 삼시 세 끼를 해결했다. 오며 가며 수술은 잘 받았냐고 여쭤봐 주시는 분들 덕분에 출근이 더 실감 났다.
복직한 지 일주일 차,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위해 삼성서울병원으로 다시 향했다. 레몬사탕, 껌, 비닐랩, 휴대전화 충전기, 그리고 500미리 물병을 가득 챙겼다. 입원 수속을 마치고 아내와 인사를 하고 병동으로 들어갔다. 방사성 물질을 먹으면서 잔존 요오드를 박멸하는 게 치료 목적으로, 내부 피폭이 되기 때문에 납차폐벽이 설치된 1인용 병실에 2박 3일간 머물러야 했다. 일용할 양식은 창문 건너편으로 도시락이 배달되고 정해진 시간에 나와서 혼자 식사를 해야 한다. 알약 형태 방사성 물질을 삼키고 나면 이리저리 병실을 거닐며 물을 계속 마셔야 한다. 식욕이 없다는 후기도 많은데 나오는 도시락은 꼬박꼬박 잘 먹었고, 침샘이 막히는 느낌도 없었다.
지금까지 변비를 걸려본 기억은 없는데 확실히 변을 보기 굉장히 힘들었다. 음식은 계속 들어가는데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한정적인 데다가 변의가 와도 배출이 안되니 고역이었다. 입원기간 반드시 변을 봐야 하기에 변비약도 같이 처방받았는데 효과가 적었다. 퇴원 전날 혼신의 힘을 다해 지우개(혹은 그 절반)를 보고 인터폰 넘어 간호사께 겨우 봤다고 말할 수 있었다. 병실 풍광은 생각보다 좋아서 의자를 잘 배치하면 새파란 하늘을 정면으로 볼 수 있다. 야경은 또 얼마나 좋은지 오른쪽 저편에 롯데월드타워가 병실을 굽어살피고 있었다. 자유롭지만 자유롭지 않은 시간들이 흘렀다.
방사성 물질을 먹은 영향으로 몸에서 소량의 방사능이 나오기 때문에 가급적 사람과 접촉은 피해야 했다. 집에 아이가 있어 임시 거처를 잡고 일주일을 머물렀다. 사무실에서 병실에서 다시 숙소로 유랑하며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는데, 외국 장기출장으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는 아쉬움을 짧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처가에 있는 아이를 보고 다녀왔습니다라고 하자 두두두 달려와서 꼭 안아줬다. 살내음과 토실한 볼의 촉감이었다. 이틀 뒤면 복직하는 아내와 어린이집 등 하원 시간 등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논의했다. 이제 온 가족이 -암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맞이했어야 할- 가보지 않은 길을 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