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본 지 삼 개월이 지났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휴직을 마친 지 3개월이 지났다. 유연근무가 가능한 덕분에 아이 어린이집 등원을 맡았다. 오줌이 흥건한 기저귀를 갈고, 고양이 세수한 후 로션 바르고, 멜론이라도 간단히 먹이면 금세 9시가 다가온다. 카시트에 태우고 내리고 때로는 씩씩하게 어떤 날은 울며불며 - 주로 월요일이 그렇다 - 어린이집을 보내고 조금 급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루틴과 긴급한 업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보면 점심시간이고, 싸온 샐러드 팩을 꺼낸다.
되도록 30분 이상은 걸으려고 하는데 긴급한 요구자료나 국회 출장이 있으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요즘은 추워진 날씨와 미세먼지 콤보로 더 나가기가 어려웠다. 오후 업무시간을 시작하면 사무실 불을 켜고 한창 모니터와 씨름하다가 커피를 내린다. 좀 피곤하다 싶을 때는 에스프레소 투샷에 뜨거운 물을 섞는다. 이건 오늘까지 저건 이번 주까지 진도 체크를 하다가 복도 창문으로 나선다. 스트레칭이 한창 필요한 나이니까 약간의 멍을 섞어 최대한 멀리 시선을 올린다. 보통 하늘은 새파랗고 바다 위에 화물선 같은 것들이 점처럼 지나간다. 대한민국 서쪽 끝자락에 있는 동네라 막히는 게 없다.
요즘은 밥을 먹고 퇴근하면 아이를 씻기고 부르더 트럭, 타요 버스와 함께 클로버에서 흘러나오는 쥬니버 동요를 흥얼거린다. 목욕은 가급적 내가 시키는데 요즘은 눈이 맵다고 난리를 쳐서 참을 인을 세 번 새기다 결국 혼자 성을 냈다. 이래저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9시 가까울 때쯤 식탁 불만 켠 채 분위기를 잡는다. 휴대폰이라도 볼라치면 사진 보여달라고 난리인 아들 덕에 스스로 디지털 금욕 생활을 실천 중이다. 물론 잠을 재우고 나서 유튜브와 웹툰을 보는 맛에 금욕이 과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내도 나도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일상을 꿋꿋하게 채워가고 있다.
술을 끊었다. 정확히는 갑상선암 확인 후부터 먹지 않았는데 반년이 다 되어간다. 가끔 기분 좋은 일이 있거나 괜히 기분 내고 싶을 때 맥주나 와인이라도 한 모금 먹고 싶은 마음이 큰데 안 먹었다. 나라에서도 5년 동안 지켜보면서 병원비 등을 보조해주는데 왠지 술 마시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혹시 모를 질병에 술이라는 외부 변수를 줄이자는 생각도 있다. 아마 평생 술을 끊을 것 같기도 한데, 이미 맛을 알아버린 터라 장담은 어려울 것 같다.
이렇게 일상을 보내다 보면 가끔은 수술했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있다. 아 내가 아팠었지. 불과 세 달 전만 해도 목도 돌리기 어려웠는데 이렇게 인간의 회복력이 빠르다니. 수술 부위에 연고를 바를 때 가끔 상기된다. 물론 쉰소리가 나거나, 왼쪽 목 일부 감각이 없을 때, 체력에 부쳐 짜증이 날 때도 내가 암환자였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혹시 다른 질병 좀 더 정확히는 다른 부위에 암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도 아주 종종 한다. 운동과 이너 피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라는 자기반성과 함께 말이다.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 전투경찰로 복무하며 밴드 봉사활동을 했던 이야기, 퇴사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던 이야기 등 막연히 글을 써야겠다고만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있었다. 항상 끝까지 하는 게 약한 나였기에 이번에는 꼭 하나의 이야기로 묶고 싶었다. 신을 믿지 않아도 신에게 감사하고 이런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음에 행복하다.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건네며 오늘도 나는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