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 지?’ 한 예능에서 이 말을 욕처럼 사용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내가 바로 T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MBTI에 관심이 없던 스무 해 전, 학교에서 받았던 MBTI 검사 결과는 나더러 ‘T’라고 했다. MBTI는 성격 유형을 16가지로 나눈 것으로 요새는 혈액형 보다 MBTI를 흔히 묻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T와 F’인데 이는 판단기능의 차이를 말한다. F는 공감능력이 뛰어나 공감을 통해 상대방을 위로하는 반면 T는 공감능력이 부족해 팩폭(팩트폭행)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T의 팩폭에는 악의도 없단다.
이것이 요새 온 세상에 사실 시 되는 T와 F의 차이다. 그런데 이건 좀 억울하다. 스무 해 전 검사도 그랬고 스스로 느끼기에도 현실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T’이다. 하지만 평소에 공감능력이 좋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오랜 친구인 K에게 내가 T라는 이야기를 하자 그녀는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T일 리 없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다만 생각건대 그녀도 T다.
지난 추석 온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동생이 남편에게 “매형 MBTI 해보셨어요?”라고 묻기에 냉큼 이 이야기를 했다.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 누나는 너무 T 지.”라고 말했다. 억울한 마음에 K의 이야기를 했더니 동생은 크게 웃으며 “누나 여기 있는 사람 전부다 T야.”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은 현실주의자 아빠도 ‘T’, 자기 딸이 객관적으로 예쁜 편은 아니라는 극현실주의자 엄마도 ‘완전 T’, 매우 소신 있는 남동생도 ‘T’, 주관이 강한 남편도 ‘T’였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의 명절은 ‘T들의 식탁’이었다. 이제는 K가 믿어 의심치 않던 나의 공감능력이 의심되기 시작했다. T와 F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질문으로 “우울해서 빵 샀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남편에게 했을 때 앞으로 봐도 뒤로 봐도 ‘T’인 그래서 연애할 때 속을 무던히도 썩였던 그가 “무슨 일 있어? 왜 우울해?”라고 물었다. “어 이상하네? T는 무슨 빵 샀냐고 묻는다던데.”라는 내 말에 그는 “그거야 다른 사람이 물을 때나 그렇지, 여보가 물으면 다르지!”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연애와 결혼기간을 합쳐 도합 20년에 가까운 기간을 그와 함께 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렇다 T에게도 예외는 있다. 그제야 K가 한 말의 이유를 알았다. 나는 그녀를 남편과 함께 한 시간보다 오래 알았다. 그 긴 기간 동안 우리는 친한 친구였고 그녀를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많이 안다. 그리고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 K에 대한 오랜 시간 동안의 데이터가 있다. 그녀가 “우울해서 빵 샀어.”라는 말을 하면 나 역시 남편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K는 빵순이가 아니다. 그녀가 굳이 우울해서 빵을 샀다고 말했다면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일 것이다. 반대로 빵을 좋아하는 친구 J가 같은 말을 했다면 “무슨 빵을 샀는지?” 물었을 것이다. 그게 J가 더 듣고 싶어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는 J가 맛있는 빵을 먹으면 행복해한다는 것을 안다.
아무래도 이 질문을 만든 사람은 T의 데이터 분석 능력을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질문이 유행하며 한동안 각종 커뮤니티에는 가족들을 성토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무슨 빵을 샀어?”라는 답변을 들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빵순이가 아닌지?
“우울해서 빵 샀어.”라는 질문에는 여러 함정이 있다. 말하는 이가 빵순이 거나 듣는 이가 빵순이 일 확률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빵순이라면 혹은 듣는 사람이 어제 성심당이라도 다녀왔다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빵’에 가게 된다.
나는 빵순이가 아니며 가끔 센치해진다. 그리고 가끔 우울하다. 이유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그리고 남편에게 이런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남편에게는 아내 감정을 이해할 데이터가 있다. 아마 T인 그는 이러한 데이터에 기반해 판단을 내렸으리라.
세상의 T들이여.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는 데이터가 있다. 우리는 현실적이며 가끔 타인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시간과 데이터가 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 데이터를 사용하기 위한 애정 한 스푼뿐이다. 이 세상 모든 걸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감능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소중한 만큼 말이다.
내가 절대 T일 리가 없다던 K에게 말하고 싶다.
“네가 한 말이 가끔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느끼게 해주고 있어. 나 앞으로도 ‘F인 것 같은 T’로 살아가려고 소중한 사람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고 공감하면서 말이야. 사랑해 내 소중한 냉정한 친구 녀석아~”
생각해 보니 K는 본인이 매우 냉정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가 나한테 얼마나 다정한지도 모르고 말이다. 웃긴 녀석이다.
이상 T를 위한 변명을 마친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 모든 T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부족한 공감능력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길 바랍니다. 사랑한다 말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꼭 표현하세요. 공감도 못하는데 표현도 못하면 안 됩니다. 우리끼리 살지 말고 F랑 같이 살아요.” 참고로 우리 집, ‘T들의 식탁’에는 공감은 부족하지만 ‘사랑’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