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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Sep 23. 2024

SNS 단상

소셜미디어와 자아(自我)에 관하여


페북은 내게 순간의 단상을 붙잡고 싶어 끄적이는 메모장이요, 반성과 사색의 일기장이고, 추억을 남기는 사진첩이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사교의 장이다.


생각해 보면 싸이월드는 도토리 모아가며 파도타기 하면서 일촌을 늘리는 신변잡기 사진앨범 위주의 서비스였고, 블로그는 전문적인 정보의 갈무리나 마케팅, 홍보 목적이 컸었다. 이젠 쓰레드라고 희한하게 반말로 하라는 탈 중앙화 SNS까지 나왔고, 유튜브나 틱톡 같은 동영상 플랫폼들이 대세가 되어 틱톡이나 인스타 릴스, 유튜브 쇼츠와 같은 숏폼 콘텐츠의 시대가 열린지 오래다.



나 역시 X(트위터)나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등 계정은 여러 개 가지고 있지만, 페북은 위 여러 성격들을 다 활용할 수 있고 여전히 강력한 네트워크 파워를 점유하는 플랫폼이기에 앞으로도 아마 주로 사용할 것 같다.

사실 페이스북은 젊은이들의 이탈이 급격히 일어나 어느덧 40, 50대 사용자가 많은 꼰대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하고, 실제 내 지인들 다수도 페북을 그만 접고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중이라, 페이스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한번 머무르면 자리를 뜨지 못하는 내 성격상 뭐, 내게는 그렇다는 얘기다.


브런치는 애초의 목적이 전문적으로 글을 쓰고 나누는 사람들을 위해 글쓰기에 최적화된 블로그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신변잡기나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기존의 소셜미디어와는 접점이 크지않아 나에게 있어서는 그 결을 달리 하는 별도의 서비스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소셜미디어라는 것이 페북이든 뭐든 간에 온라인이라는 네트워크 확장에 대한 반대급부로 오프라인에서 가질 수 있는 만남과 교류에 대한 깊이와 진정성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일상을 100% 까고 24hr 라이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는 포장되어 보여지는 부분적인 모습들이 나를 온전히 대표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는 타인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고.


온라인상의 모습으로 타인에게 인식되는 나의 좌표가 그 어디쯤에 있든지, 자신에게 보여지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한 사람을 섣불리 규정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차피 SNS에서 보여지는 나의 모습은 진정한 나 자신(self)의 모습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회적 가면을 쓴 페르소나(Persona: second self, alter ego)의 외적 인격일 뿐이다.



내 속의 아니마(Anima)가 어머니, 헤타이라, 아마존, 영매 중 어떤 성향이 더 강한 자아를 이루고 있는지는 나 스스로도 확실치 않을 뿐더러, 그 페르소나 뒤에 숨어있는 ‘그림자’를 온라인을 통해서만 나를 접하는 사람은 알 수가 없을 터.  페르소나의 모습이 진정한 나의 본질과 얼마나 싱크가 되는지는 나 스스로도 알 수가 없거든.


단편적인 지각을 통해 인식하는 부분의 합으로 한 사람을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이 아닐까.


사람이 어디 그렇게 단순한 존재이던가. 복잡 미묘한 그 비합리성을 어찌 설명하려고. 내게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네트워크 바운더리의 한계는 있고, 그 임계치를 넘어가는 사람은 안 보면 그만인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감당하련다.


나이 먹을수록 조금씩은 나아져야겠지.

사연 누나가 '우리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 했거든.


그리고 기린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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