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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Oct 12. 2024

불면의 밤, 한강을 바라보며

韓江, Han Kang


불면의 밤은 언제나 길다.


어둠이 내려앉은 한강을 바라보며 내 안의 가슴 시린 감정들을 떠올려 본다. 인간 세상의 번잡함에는 관심이 없다고, 무심한 듯 흐르는 차가운 물줄기는 그래서 오히려 더 인간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 이 강물은 산속 깊은 곳에서 발원해 수천 번 수만 번 흐르고 또 흘러, 굽이굽이 넓은 바다를 찾아 나섰을 것이다.


내 눈이 응시하는 한 지점에 똑같아 보이는 물은 단 한순간도 결코 같은 물인 적이 없었듯이, 역사의 흐름에 같은 인물은 두 번 다시 태어나지 않는데도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인간의 광기와 고통은 대체 어느 바다로 흘러야 멈출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폭력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그 근원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세상에 내딛는 순간부터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몸에 새겨진 몽고반점처럼 인간은 내면의 고통이 각인된 채 태어나는 것일까.


시간은 덧없이 흐르고 강물이 끝없이 흘러가듯이 내 삶의 고통도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겠지.  혼자만의 시간, 눈을 감아도 멈추지 않는 생각들. 밤이 깊어지면 인간은 더 솔직해진다.


나의 내면에 있는,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진 그 근원적인 고통은 때때로 폭력적인 형태로 표출된다. 누구에게서든 인간의 본능적인 폭력성을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한 사람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을 때, 그 순간 터져 나오는 광기의 불꽃은 억눌러온 고통의 잔재들이다.


반면 극악한 인간의 폭력성은 집단의 힘과 위계질서 속에 때로는 무심함으로부터 새어 나오기도 한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란 개념은 '악'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무사유(thoughtlessness)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여 수많은 논쟁을 일으킨 바 있다.


도대체 어떻게 나치로부터 홀로코스트를 겪은 민족이, 똑같이 그런 학살을 자행할 수 있단 말인가. 1,000명의 죽음으로 4만 명의 죽음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수천 년간 의도적인 배척과 멸시를 당한 그 한(恨)이 쌓이고 쌓여, 우리 국가와 영토를 결사적으로 사수해야 한다는 그들의 집단 무의식이 작동하는 것일까. 우리의 자위를 위해서는 남들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그릇된 시오니즘의 발로일까.


이런 밤엔 잠은 나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 가고, 깊숙한 곳에 또아리를 튼 우울감이 마음속에서 꿈틀댄다. 삶에 대한 의문과 억눌린 감정들이 내 안의 심연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것이 나 혼자만의 것일까.


아마도 한강씨야말로 오랜 시간 동안 쌓여온 세상의 폭력성에 대한 깊은 분노, 인류가 서로에게 폭력을 가하고 해치면서 쌓여온 상처들을 오롯이 담아 안고, 마치 나무불꽃처럼 그 안의 뜨거움을 문학의 힘으로 조용히 분출하고 있었던 것일 게다.  한때 채식주의자였던 그녀는 인간의 잔인함을 불편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생각해 보게 만들면서 동시에 인간의 폭력성을 단호히 거부한다.  흰 순수한 빛처럼, 때로는 그런 사람들이 간혹 있어 우리 대신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들려고 노력해 주는가 보다.


이 모든 혼돈 속에서 나는 한강의 노래를 듣는다. 고요한 물소리가 작은 치유를 가져다주는 법. 아무리 깊은 고통과 한이 있어도, 자연은 언제나 스스로 그러하게 그 고통을 달랠 수 있는 작은 위안을 준다. 가만가만 부르는 그녀의 노래가 기어이 내 눈물상자를 열고야 말았다. 오늘 밤, 한강의 이름이 내 안의 폭력성을 잠재우고 억눌린 감정들을 감싸 안아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해 준다.


한강의 노래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다. 그 나긋나긋한 목소리 안에는 삶의 본질을,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게 해주는 단단한 힘이 있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고통과 광기는 삶의 일부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상처와 폭력성, 쌓여있는 한을 노래로 풀어 승화시킬 수 있다면 한강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우리 또한 고통을 떠나보낸 그 자리에 치유의 가능성을 남겨둘 수 있지 않을까.


이 불면의 밤이 끝나고 찾아오는 새벽의 어스름한 빛이 나에게 조금의 따뜻함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여전히 잔인하고, 인간은 여전히 폭력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겠지만, 그 안에서나마 작지만 따뜻한 치유의 힘이 숨어 있다고 나는 믿겠다.


삶은 그런 것이다.

고통과 치유, 폭력과 노래가 함께 공존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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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작가님의_노벨문학상_수상을_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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