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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Oct 27. 2024

1992년 겨울, 집을 나서다


고 3으로 올라가는 해의 겨울이었다.


날씨가 몹시 추워졌던 어느 날,  간식거리를 좀 드리려고 부드러운 과자를 그릇에 담아 할머니 방에 들어간 난 방이 싸늘하게 추운 것을 보고 놀랐다.  얼른 주방으로 가 난방 밸브를 확인해 보았다.  할머니 방의 난방 밸브만 반 이상 잠겨져 있는 것을 본 나는 눈이 돌아가 버렸고 한밤 중에 자고 있던 어머니를 깨워 대판 싸우게 됐다.  여태까지 그렇게까지 하시지는 않았었는데.. 왜 점점 더 독해지실까. 그렇게나 용납이 안되는 걸까. 그 세월이, 지나간 과거가 어머니를 점점 더 증오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그만하면 되지 않았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할머니에게 어머니에게 함부로 한 과거의  잘못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따질 건 따지고 사과를 받던지, 차라리 따로 살던지 무슨 수를 내야지  한 집에 살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선을 넘는 일이라고 생각됐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사과를 안 하신 것은 아니나 할머니 역시 또 노인정에 가시거나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어머니 험담을 늘어놓기도 하셨던 것 같다. 암튼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사과를 받는다고 풀어지거나 그럴 상황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버렸고, 긴 시간 쌓여왔던 한 풀이를 멈출 수가 없으셨던 것 같다. 사람이 확증편향을 갖게 되듯이, 감정이란 것도 한쪽으로 쏠려서 어느 선을 넘으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미 약자가 되어버린 할머니는 어린 손자에게 기대며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며 약자의 모습만을 보였지만, 그러다 가끔 한 번씩은 할머니도 악에 받쳐서 어머니에게 쏟아부으실 때도 있었다.

 

차라리 날 혼자 살게 월세 방이라도 하나 얻어달라며 아버지에게 매달리는 할머니의 모습과 자식들에겐 그렇게 엄하게 구시면서 고부갈등에 있어선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는 무기력한 아버지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월세방 얻어드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노모를 내쫓았다는 동네 사람들과, 사회의 평판 때문에 그러시지 못하는 거라 짐작하니 아버지에게 더 실망감이 들뿐이었다.


어머니는 넌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셨다. 그 옛날 이 집에 시집와서 여태까지 할머니가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지 니가 뭘 아냐며, 자식 키워봐야 하나 소용없다고 울부짖으셨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숨긴 채 어머니와 싸우는 나에게 의미 없는 호통을 치실뿐이었다.  그러나 불쌍한 할머니가 안타까웠던 나의 뇌는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의 스위치를 원천 차단시켜 버린 듯했다.


그날의 사건 이후, 나는 한동안 집안 분위기를 피하려 애썼다. 평소라면 할머니의 방에 간식을 들고 가는 일도 종종 있었겠지만, 그날의 충격 이후로는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됐다.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는 밝은 얼굴로 대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어느 겨울밤, 학교에서의 늦은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어둠 속에서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니 거실에 불이 꺼져 있었고, 부모님의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고, 할머니의 방에서도 어렴풋이 흘러나오는 한숨소리가 섞여 들렸다. 정말 이 집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나는 방문을 조용히 열고 우리 가족의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 앨범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래된 사진 속에는 웃고 있는 젊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평화롭게 보였다. 사진을 넘기다 보니, 어떤 사진에서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는 듯한 모습도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그들이 지금처럼 서로 미워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깃들여 있었다. "엄마가 왜 저렇게 변했을까?"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집안의 푸른 초목들은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맞아 잎을 모두 떨구고 삭막해져 있었다.


그런 사건들이 쌓이고 쌓여, 난 점점 집에서 겉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에 빠져 방황을 하다 한참 입시를 준비해야 할 때인 고등학교 3학년에 가출을 하게 되었다.  대책 없이 집을 나와버린 것이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간도 참 컸다.


대학교 유흥가 거리 앞을 지나다니며 써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았고, 결국 근처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면접을 봤던 가게의 사장은 몇 살 차이나 보이지 않는 보이시한 젊은 여자였고 거기에서 일하고 있던 다름 점원들 2명도 모두 여자였다. 알고 보니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동문 선배였는데, 어떻게 카페 사장이 돼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는지 의아했었다.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지만 여사장의 아버지는 유흥업소, 소위 조폭들이 움직이는 밤의 세계에서 돈을 버신 분이었고, 딸이 공부에 소질이 없는 것을 알고는  먹고 살길을 만들어 준다며 그때 유행하던 산장식 카페를 대학가 거리에 차려준 것이었다.


그곳은 그렇게 어려움 없이 자기 가게가 생긴 여사장의 취향대로 아르바이트 역시 자신이 아는 동생, 학교 후배들을 주로 채용했고, 일면식 없는 외부 지원자를 받아도 여자들만 채용했지 남자를 뽑은 적은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쭈뼛쭈뼛 구인공고를 보고 들어선 어린 학생 같은 남자애가 불쌍해 보여 처음으로 남자인 나를 뽑아준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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