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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Oct 27. 2024

드러내지 못한 화해


주말이 되어 본가에 왔다.  우리 집과 본가는 멀지 않은 곳에 있어 버스를 타도 30, 40분 정도면 충분하고 운전을 해서 오면 15분 정도면 되는 거리이다.


날이 더워 어머니는 옷을 헐렁하게 입고 계셨는데, 역시나 에어컨은 틀지 않고 계셨다. 이젠 가까운 거리도 택시 타시고, 이렇게 더울 때는 꼭 에어컨 틀고 계시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려도 한평생 알뜰하게 악착같이 살아온 당신의 몸에 밴 습관은 그걸 쉽게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목 아래로 보이는 어깨와 다리를 보니 지난번 뵀을 때보다 조금 더 마르신 듯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연로해지실수록 단백질과 지방 위주의 식사를  해서 자연감소되는 근육량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다.  카톡으로 보내드렸던 사진을 정리해서 앨범에서 편하게 보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고, 가지고 왔던 필름 사진을 꺼내드렸다.


이젠 연세를 많이 드셔서 80대 할머니가 된 우리 어머니.  어머니를 보니 어렸을 때의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렇게 힘들었던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 그리고 어머니를 미워했던 나…  이제 내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그때의 할머니 같은 모습이 되어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어머니는 사진들을 보며 옛 추억들을 얘기하시느라 여념이 없는데, 내 귀엔 점차 그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은 또 과거를 헤집고 있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로 자식 잘못 키웠다는 소리 듣지 않으려고 자식들을 엄하게 훈육하셨다고 한다. 늘 아버지께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하시던 말씀이다. 회초리도 참 많이도 맞았다고..  또한 혼돈의 세월 굶어 죽지 않으려 악착같이 사셨을 터이다. 오랜 세월 홀로 혹독한 세파에 시달리셔서 성정도 괴팍해지신 건지, 아니면 뒤늦게 얻은 며느리에게 보상심리가 발동하신 건지..  내가 알 길은 없지만 가끔씩 할머니와의 일로 다투며 들었던 어머니 말로는 할머니가 어머니께 못되게 구신 건 맞는 듯했다.  


어쨌든, 어린 내가 보기엔 이미 다 늙어 기운 빠지고 연약해진 할머니는 엄연한 약자였고, 그런 할머니에게 시어머니 대접을 제대로 안 하고 심술 맞게 구는 어머니는 우리 집안의 제일 강자였다.  늘그막에 서러워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은 나에겐 견디기 힘든 모습이었고, 그래서 늘 어머니와 다툼이 많았다.


그리고 머리가 좀 크고 나서부터는 할머니와 어머니 사이에서 적절한 중재와 조율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집에 들어오셔서 반갑게 할머니께 인사드리는 것도 어떤 때는 가식적으로 보였고, 두 분이 다투실 때 못 본 척 외면하고 집을 나서는 걸 볼 때면 그렇게 무력하고 무능해 보일 수 없었다. ‘가화만사성’,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고, 집안의 평화도 못 지키고 집안의 질서도 바로 세우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하시겠다는 건가,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것만 빼고는 나에게 훌륭하신 아버지셨지만, 그때는 그게 참 컸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늘 모르는 척, 할머니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형, 누나도 많이 미웠다.  


그때부터였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내가 엇나가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는 아직도 사진을 보고 미소 지으며 과거의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억누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물을 틀어 얼굴에 찬물을 뿌리며 과거의 기억과 지금의 현실에 뒤죽박죽 복잡한  감정을 조금이나마 진정시키려 한다. 욕실 거울 속에 반사된 내 얼굴을 보니, 나도 어느새 시간의 흐름을 피해 갈 수 없음을 실감한다. 어렸을 적 그렇게 반항했던 내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젠 나 역시 세월의 무게를 느끼는 중년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어머니와의 불화, 그리고 그때의 기억들이 쌓여 있다.


지금 어머니와는 잘 지내고는 있지만,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서로 한 번도 터놓고 그때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원망을 걷어내고 진심으로 속깊이 이해하는 그런 순간은 가지지 못했었다. 그건 분명 아쉬운 부분이긴 했다. 그렇게 몇 분을 보내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어머니는 여전히 사진을 손에 들고 계신다. "엄마,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에어컨 좀 틀어요." 나는 다시 한번 어머니께 권하다. "뭐,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살짝 틀어볼까." 어머니는 마지못해 에어컨 리모컨을 손에 드신다. 그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난 역시 아쉬움은 뒤로 한채 그때의 일은 접어두고 서로 다시 꺼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연로하신 어머니이고, 간간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그때의 기억도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부분도 많았다.  과거의 얘기를 해봐야 어머니 마음만 상하게 해드리거나, 혹은 가만히 들어드리며 참는 내 속만 답답할 것이 뻔했다.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메시지 알림이다. 회사 일이다. 숨을 깊게 내쉬며, 나는 메시지를 읽는다. 대표님의 중요한 입찰 건에 대한 물음이다. 나는 어머니께 "엄마, 잠깐만요. 중요한 전화 한 통 해야 해서."라고 말씀드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전화를 하고 나서도 한동안 자리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시간’이라는 묘약의 힘인가.  할머니로 인한 원망의 마음은 사그라들고 그저 이제는 나이 드신 어머니가 잘 지내시고 편안하시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거실로 돌아가며, 난 어머니께 다가가 앉았다. "엄마, 저녁 뭐 드실래요? 나가기 귀찮으시면 좋아하시는 족발보쌈에 막국수 시켜드릴까요?" 어머니는 흔쾌히 대답하신다. "좋지~ 너희 누나 언제 오는지 한번 물어봐라. 얼마나 시켜야 할지."


그래, 묻어둘 것은 묻어두고 이렇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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