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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크슈타인 Oct 27. 2024

살을 섞은 진짜 첫, 사랑


몇 달이 지나갔을까, 그렇게 지내면서 사장 누나의 친한 후배, 경희란 아이가 카페에 자주 드나들었고, 얼마 있지 않아 함께 일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카페 개업 시부터 누나와 함께 일했던 원년 멤버였고, 사정이 있어 잠시 일을 그만뒀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그녀는 통통 튀며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해버리는 성격이었는데, 어찌 보면 오해의 소지도 많을 수 있겠지만, 이미 사장 누나와 막역해진 난 그녀에 대한 사전 정보를 많이 들었었고, 그녀 역시 언니가 신뢰하는 나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거둬들인 듯했다. 함께 일하며 금세 친해지게 되었고, 젊은 혈기에 휩싸였던 우리는 이내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연인 사이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녀는 부모 없이 갓 중학교에 들어간 동생을 데리고 살고 있는 소녀 가장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카페 알바 이후에는 따로 장안동 유흥가의 도우미로 2차까지  뛰고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후 난 그녀와 크게 다투었다.


안타까운 사정에 현실적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는 것을 나도 알지만, 이성이 이해하는 일을 내 감정은 용납하지 못했다. 경희에게 화를 내는 만큼, 내 마음속의 또 다른 자아는 그런 일을 하지 않도록 돈을 대주지도 못하면서 능력도 없는 놈이 화만 낸다고, 그렇게 비웃고 있었다.  

사장 누나의 중재로 서로 마음이 상한 채 냉전의 상태로 있으면서 관계를 끝내지는 못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던 차에 어느 날 도우미로 새벽 늦게까지 일하던 경희가 취한 손님들의 행패에 시달린 후 폭음을 해서 정신을 못 차리자, 연락을 받고 간 난 그녀를 둘러업고 모텔에 가서 재웠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그녀를 업고 엘리베이터도 없던 모텔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던 길에 잠시 정신이 들었는지 경희는 취기에 자신의 굴곡진 인생사와 힘든 점을 절절히 토로했다.  자신의 형편도 모르고 직업에 대해 불만이 가득 차 자신을 몰라주는 나에게 섭섭하고 슬픈 마음을 토로하였던 것이다.  그 절절한 독백은 내 마음을 진탕 시켰고, 그녀가 무얼 하고 있든 이해하고 사랑해 주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첫날밤을 보냈다.  


순간의 충동이자 울림이었을지 모르지만, 가볍게 사귀는 듯한 관계에서 이제는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과 몸을 나눈 이후 우리는 진짜 연인관계로 발전한 듯했다.  그녀는 나를 자신의 월세방 집으로 처음 데려갔다. 항상 집 근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의 초입까지 바래다줄 수 있었고, 그 이상의 진입은 허용하지 않던 그녀였다.  방안엔 그녀의 어린 중학생 동생, 준혁이 있었다. 준혁이는 누나가 남자 친구가 있던 적은 있어도 집으로 데려온 적은 없었는지 나를 보고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난 준혁의 수학 공부를 가르치며 이 녀석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잘 되기를 바랐다.


아이를 가르치다 보니 그런 건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는 있었지만, 더불어 학업에 손을 놓고 대충 학교 출석만 챙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슬며시 불안한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가게 매상이 오르지 않는 날이 지속될 때에는 관리비도 내야 하고 가게 월세에 직원들 급여도 해결해야 했기에 뭔가 방법을 찾아야만 했는데, 그건 아가씨들을 한두 명씩 가게 앞에 길가의 횡단보도 앞에 세워두고 길을 건너려는 척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척 서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곳은 대로변이긴 했지만 신호등이 많아 차가 속도를 세게 내지는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다 조금 이상해 보이는 차, 가령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처럼 이리저리 불안정하게 운전을 하는 듯 보이는 차가 있으면 가급적 파란 불이거나 신호가 바뀔만한 타이밍에 살짝 발 한쪽을 도로 쪽으로 슬며시 내밀어 차가 접촉하거나 밟고 지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밟고 지나갔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기술이 좋은 친구들은 실제론 밟히지도 않고 시늉만으로 운전자들을 잘도 혼비백산하게 만들곤 했다.


잘만 하면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젊은 아가씨가 화들짝 놀라 뒤로 자빠지며 나뒹구는 시늉을 하고 근처에 있던 바람잡이 조의 한두 명이 달려와 아가씨를 부축하며 법석을 부리면 운전자는 대역죄인 마냥 차에서 쭈뼛쭈뼛 나와 지레 겁을 먹고 병원에 가자고 하거나, 협상을 시도하기 마련이었다. 당시엔 블랙박스는커녕 내비게이션도 장착한 차가 거의 없을 때라 억울해도 달리 증명할 길이 없었다.


우리에겐 매뉴얼이 있었는데, 운전자가 협상을 시도해도 바로 응하지 않고 무조건 길 건너편에 있는 정형외과 병원으로 가야 했다. 이곳의 병원장은 가라오케 사장 형과 친한 사이로 이미 입을 맞춰둔 것이었고, 우리가 운전자를 데려가면 병원에선 적당한 진단을 내려줌과 동시에 운전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척하며 같이 겁을 주었다. 운이 좋아 좀 가진 사람이 걸렸을 때에는 꽤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가게에서 꾸며낸 어설픈 사고로 돈을 챙기는 일이 일상화되었지만, 난 내가 그 일에 관여하게 된 것이 점점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따뜻한 집이 그리워진 나는 가족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날 용서해 주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 이미 너무 많이 나아가 있었고 뒤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깊이 빠져 있었다.


경희와의 관계는 더 깊어졌지만, 그녀의 힘들었던 과거와 다른 아르바이트 생활까지 알게 되면서 난 그녀가 더 이상 위험한 일은 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아가씨 중 한 명이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에 진짜로 부딪히고 말았다. 단순한 시늉이 아닌 진짜 사고였다. 아마 그 차의 빠른 속도를 미처 느끼지 못한 채로 일어난 일 같았다.  피가 흘러내리고 다급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순간 모든 사람이 얼어붙었다. 내가 가게로 뛰어가는 사이, 주변 사람들은 경찰과 구급차를 불렀고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우리는 더 이상 이런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사고를 당한 아가씨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고, 운전자에게 보상도 받을 순 있었지만 골절로 인해 평생 장애의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게 된 터였다.


경희와 나는 모텔 방에서 차분히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런 삶을 지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 역시 이중생활에 대한 불안과 죄책감이 나날이 커져만 갔다. 우리는 함께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일단은 돈이 필요했다. 난 경희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널 지켜줄게. 그리고 장안동 도우미 일은 더 이상 절대로 하지 말아. 대신 카페 일 끝나고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자. 수입이 훨씬 적더라도 식당 일이든 뭐든 꾸준히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벌자.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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