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크슈타인 Oct 27. 2024

그녀의 폭주와 마지막 대입학력고사


일찌감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알아가던 난 월급을 탈 때마다 집 근처의 경로당에 계실 만한 시간에 할머니를 찾아뵙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보고 나면 다시 나가지 못하고 울며 불며 하시는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게 될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보고 싶고 가족이 있는 집안의 따뜻한 방이 그리우면서도 마치 마약에 중독이라도 된 듯이 난 현재의 생활을 떠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난 궁리 끝에 친분이 있던 근처 편의점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과자나 과일, 전기구이 통닭 등을 사들려 보내며 약간의 돈을 넣은 봉투를 함께 전달해 드리도록 부탁했다.


그 사이 학교로 찾아와도 매번 나를 놓치던 어머니는 가족회의를 소집해 아버지와 의논을 하고 같이 동네에서 자란 형을 통해 나를 찾도록 지시하신 듯했다.  형은 친구들을 풀어 나를 찾아 나선 것 같았고 그 낌새를 감지한 나는 서서히 갈 수 있는 아지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지나 어느덧 고 3의 가을로 접어들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고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나의 생활은 더욱 심각해졌다. 어머니는 형을 통해 나를 찾아오도록 하셨지만, 난 여전히 가족과의 멀어진 관계 속에서 힘겨운 일상을 버텨내고 있었다. 편의점 아저씨를 통해 할머니께 자주 연락을 드리긴 하였지만, 직접 찾아뵙고 위로해 드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 학교에서의 생활 또한 여전히 고민거리였다. 수업 시간엔 밤늦게까지 일하고 술까지 마시느라 체력이 달려 항상 기진맥진 피곤한 채로 졸기 일쑤였다.


포기해 버린 듯한 학업에 대해 스스로도 불안감을 가지고 있던 차에 나의 마음은 점점 초초해져 갔다. 학교에 나가고 있긴 하지만 머리만 믿고 버티던 학업 진도는 점점 맞춰가기 힘들어졌다.  선생님들과의 갈등과 싸움도 이젠 서로 서서히 적응되어 선생님들은 하나 둘 나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 한편에서는 어떻게든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수업 도중 졸음을 쫓기 위해 에너지 드링크를 들이켰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모의고사 성적은 차츰차츰 하락하기 시작했고, 고 2 겨울까지만 해도 서울대는 좀 어렵겠지만 여전히 연고대는 충분히 갈 수 있다고 하던 담임선생의 말씀은 고 3 가을 무렵에는 서울 안 4년제 대학은 문제없으니 지원할 만한 학교를 골라보자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이미 교련 선생님을 비롯한 두세 명의 선생님들은 나의 이중생활을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희는 나에게 더 이상은 도우미 일을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은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나를 속인 채로 다시 나간 것이었으니, 얼마 정도 약속을 지켰고 언제부터 다시 나간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을 안 것은 나와 약속을 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역시 돈이 왠수고, 돈이 문제였다.


“널 지켜줄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그녀에게 경제적으로 기여해 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결국 지켜주겠다던 내 말은 말 뿐이었다.  거기서 받는 수입을 식당 일을 하면서는 반의 반도 채울 수 없었다.  난 화를 내려다가 차마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치졸해지고 싶지는 않았다.    


경희는 진상 손님들을 자주 상대하느라 마음이 점차 피폐해져 가며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마 한두 명 경희를 힘들게 하는 진상들이 있던 것 같다. 가학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인지, 변태적인 행위를 강요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럴 때마다 경희는 많이 힘들어했고, 나에게는 절대로 아무런 말도 더 하지 않았다. 그저 위로해 주고 안아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약은 처음엔 수면제라고 했다. 그래, 수면제였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알코올을 벗어나 그 외 다른 뭔가에까지 의존하려는 것을 초기에 확실히 막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점차 다른 약물에도 손을 대는 듯하여 무서운 기분이 든 내가 강하게 막아서자, 자세히 몰랐던 중독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갈등이 쌓이며 싸움이 잦아졌고, 싸움이 끝난 뒤에는 말없이 있거나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내가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게 불안했는지, 그리고 약기운에 없던 용기까지 얻은 것인지 손목을 카터칼로 그어 자해를 하기 시작했다.


절대 그러지 않겠다던 말을 뒤로 하고 두 번째, 세 번째 자해가 반복되자 덜컥 겁이 난 난 형님의 조언과 소개를 받고 병원에 찾아가 의사의 자문을 구했다.  의사의 말로는 자해하는 것은 원래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도를 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습관성으로 반복적인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최초엔 아니었겠지만 자해가 반복이 되면서부터는 스스로의 괴로움에 대한 극단의 시도를 넘어, 원하는 사람을 떠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협박의 수단, 상대방을 가둬놓으려는 의도가 담긴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는 말을 해줬다.


무서웠다.


경희의 정신이 맑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아무도 없는 카페에서 대화를 하며 동생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정신 차리고 열심히 살아서 준혁이 좋은 대학 가는 거 봐야 하지 않냐고, 나중에 키워준 값으로 준혁이 덕도 보면서 살려면 이젠 제발 정신 차리라고. 내 학업도 개판이 되어가는 마당에 마음 한편은 늘 불안했지만, 눈앞의 큰 일에 경희를 어떻게든 고쳐놔야 할 것 같았다.  내 말은 들은 경희는 멈칫하더니 이내 무너져 내렸고, 우린 그 밤을 서로 부둥켜안고 내내 울며 새었다.


불안함과 후회스러운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10대 후반에 나를 감싸고 분출되는 질풍노도의 호르몬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다시 정상적인 삶으로, 가족들 품으로 되돌아갈 용기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한발 한발 천천히 계속해서 알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어 가고만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난 학력고사 하루 전날까지 가라오케 일을 마치고 몸을 뉘었다. 쪽잠을 잔 후 다음 날 허겁지겁 시간을 맞춰 시험을 봤고, 다행히 지원했던 대학의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물론 애초 내가 생각하고 있던 학교는 전혀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그 정도로 엇나가고 가출까지 했던 나였지만, 그래도 학교 출석은 하면서 대입 시험도 본 게 기특하기도 했다.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부모님이 들으면 기함을 할 소리겠지만 말이다.  학력고사는 꼭 대학교를 다녀야겠다는 의지가 굳건히 있고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난  그 나이 때 해야 하는 것은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무조건 해야 하는 건 줄로만 알고 있었고,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가출까지 하며 여자와 지내고 있던 놈이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순진한 건지 바보인 건지 나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막상 대학에 합격하고 나니 한번 가보고는 싶어 졌다.  궁금하기도 하고 설레이기도 하고. 청춘 드라마에서 보던 꽃이 흐드러진 예쁜 봄날의 학교 캠퍼스를 거닐고도 싶었다.


하지만 내가 1년 가까이 몸담고 있던 사회생활의 관계 속에선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안 그래도 사장 누나를 비롯해 한두 명만 나의 대학교 합격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동안 성실히 일하는 모습에 대한 신뢰와 함께 일상과 우여곡절을 모두 함께 겪으면서 정도 많이 든 내가 대학교에 가면 서서히 자신들과 멀어질 거라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서운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가족과, 고등학교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대학교 사이.. 그 어디에도 확실히 안착하지 못하는 내 위치는 위태롭기 그지없었고 내 마음은 스스로도 방향키를 잃어버린 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경희의 상태는 나아져서 서서히 건강도 되찾아 갔고, 더 이상 자해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어쩌다 그런 건지 서서히 형식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건 나의 탓이 컸다. 처음 겪었을 땐 너무나 가슴이 뜨거워졌지만, 화내고 부탁하고 강제를 해도 또 사고를 치고, 또 무너져 내리고, 계속 반복되는 패턴에 아마 지치기도 했으리라.  그녀가 나에게 집착을 할수록 난 그녀가 안타깝고 안쓰러워 잘해주곤 싶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뜨겁던 나의 가슴은 차츰차츰 식어감을 느끼고 있었다.

 

경희와의 관계가 식어가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한 채 끌어안고 있었던 난, 내 안에 스며들던 무력함과 혼란이 점점 커져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때로는 기쁨도 누군가와의 친밀한 연결도 모두 물 위에 떠 있는 기포처럼 일시적이고 덧없게 느껴졌다.




이전 08화 살을 섞은 진짜 첫,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