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한강이 뭐길래
“사장님 저 왔어요.”
“…”
자전거포 사장님은 여느 때와 같다. 말없이 맞이해 준다.
“앞바퀴 타이어, 또 터졌어요.”
타이어 터졌다는 말에 사장님은 어떤 말 대신 자세로 답했다. 가게 안, 사각형 모양으로 테이핑 한 영역 안에 타이어가 터져 앞바퀴가 흐물흐물해진 내 자전거를 옮겨 놓으니 빠르게 다가가 앉는다.
“브레이크는 왜 이래요?”
“아 그것도 지금 말하려고 했는데, 뒷바퀴 브레이크도 간당간당 하죠? 잡으면 안 돌아오긴 하던데.”
눈으로는 터진 앞바퀴를 보면서 손으로는 브레이크 점검까지 한 번에 한 사장님은 잠시 나를 노려본다. 저번에도 그 저저번에도 브레이크 고장으로 들렀던 나였다.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반드시 손 보러 오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었는데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는 그의 시선이 귀에 꽂힌다.
“아이고, 자전거를 험하게 쓰셨네.”
들어올 땐 몰랐는데 나보다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검은색 5부 타이즈에 푸른색 불꽃 무늬가 넘실 거리는 바이크 재킷을 걸친 어떤 아저씨였다. 손에는 D사 고글이 들려 있다. 지난 주말 집 근처 아웃렛에 놀러 갔다가 세일가 30만 원을 보고 입맛만 다셨던 그 고글이다. 옆구리엔 흰색 헬멧도 끼고 있다. 보나 마나 저것도 비싼 거겠지.
“이거 타이어 간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아이고, 거 체인 보니까 기름칠 좀 해야겠다. 기어도 좀 휜 거 같은데.”
사장님이 내 자전거 휠을 분리하려고 하니 푸른 불꽃 아저씨가 이런저런 참견을 하며 자신의 자전거를 옮긴다. 한 손으로 가볍게. 역시 걸친 것만큼 비싼 자전거.
염창동에 B카페를 즐겨 간다. 한강 나들목에서 이 카페로 넘어가려면 반드시 지나쳐야 할 계단이 있다. 이게 꽤 긴데 여길 무거운 내 자전거를 들고 한 단 한 단 힘겹게 올라설 때면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걸이로 자신의 자전거를 한 손으로만 들어 올려 올라가는 사람이 꼭 있다. 그런 사람은 허리도 숙이지 않는다. 이두, 삼두도 안 쓰고 전완근만 가볍게 써서 자전거를 든다. 최소 카본 프레임, 고가의 자전거란 이야기다. 지금 저 아저씨 자전거처럼.
“이거 타고 어디를 다니는 거예요? 아닌가? 아들 건가?”
“아니에요. 사모님 거예요. 아들 자전거는 내가 잘 알지.”
내가 묵묵부답이자 사장님이 대신 답했다.
“사모님네는 아들 자전거가 더 반듯해.”
굳이 사족까지 붙여가면서.
“그냥 여기저기. 동네, 동네 타고 다녀요.”
“아아, 자전거로 장보고 다니고 그러시는구나.”
장보고... 갑자기 어릴 때 아빠가 보던 신문 속 만화가 생각나 웃음이 터졌다. "쿠쿠쿠쿠쿠쿡!" 한 컷짜리 그림이었는데 현관문이 열려 있고 그림 속 엄마가 장바구니를 들고 있다. 그 뒤에 한 험상궂은 장군이 따라 들어온 것처럼 서 있다. 엄마의 말풍선은 이렇게 말했다. "장보고 왔다."
“사모님, 뭘 그렇게 혼자 웃어요?”
“쿠쿠쿠쿠쿡, 아무것도 아니에요, 사장님. 이거 수리하는 데 오래 걸려요?”
“... 타이어 가는 데 오래 걸리는 거 봤어요?”
“쿠쿡. 아니요.”
푸른 불꽃 아저씨는 갈 것처럼 뒤로 빠지더니 다시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 텀블러를 손에 쥐었다. 겉면에 우리 강 어쩌고 하는 궁서체가 박힌 걸 보니 저 텀블러는 돈 주고 산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놀러 온 사장님 지인인가 싶기도 하고 클립리스 페달이 새 거인 걸 보니 저걸 교체하러 왔던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면 안양천에는 나가 보셨어요?”
“네? 뭐, 조금요.”
“아이고, 조금? 요 근처만 왔다 갔다 하시는구나. 안양천 쭈욱 따라가면 한강 나오잖아요. 초행길엔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거기 길이 얼마나 좋은데. 자전거를 탔으면 한강까지는 가 봐야죠. 그래야 라이딩하는 맛도 알고 그러지.”
“아아. 네에, 네.”
하아, 한강. 또 한강이다. 도대체 한강이 뭐라고.
며칠 전, 클라이언트 미팅을 간 적이 있다. 업체 위치가 마침 집 근처이길래 재택근무 신청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갔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듯한 올빽 헤어에 흰 셔츠를 입었던 그 업체 대표님은 땀으로 번들 거리는 내 얼굴을 보고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해 왔냐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별생각 없이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나온 거다. 한강이.
"이야, 우리 팀장님. 자전거 좀 타시나 보다. 저도 예전에는 주말에 자주 탔는데. 어떻게 한강에는 좀 나가세요?"
"네? 한강이요?"
"아, 아직 안 가 보셨나? 그럼 가보셔야지. 이 동네에서 한강까지 길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내가 지금은 바빠서 그렇지 예전에는 여유 있을 때마다 주말마다 멀리 나갔거든. 대청댐에서 금강까지 완주도 하고. 좋기는 팔당댐 쪽이 좋고. 하하하하하."
"아, 네."
바빠 죽겠는데. 한강을 넘어서 지루한 4대 강 이야기까지 들어야만 했다. 그래도 클라이언트가 왕이니 그때는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지금은... 저 아저씨는 왕도 뭐도 아니니까 그냥 꾹 못 들은 척하련다.
"혹시 오르막길이 걱정이세요? 에이, 그런 거 걱정하지 마세요. 한강 가는 길이 물길이라 오르막 내리막 그런 게 없어요. 어떻게 자전거 타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
"..."
눈동자에서 영혼을 내보내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딴 데만 쳐다봤다.
11살 때 자전거를 처음 탔다. 아빠가 사촌 오빠가 타던 걸 세 살 어린 남동생 태우려고 받아 왔는데 그걸 날름 뺏어 탄 거다. 그걸로 온 동네를 누볐다. 자전거 앞에는 두꺼운 와이어로 만들어진 사각 바구니가 달려 있었다. 1년이 지난 12살 때였나, 내리막 길에서 크게 넘어졌다. 그 바구니를 회생불가로 찌그러트렸고 나는 오른 무릎을 크게 다쳤다. 체감상 뼈가 보일 만큼 까진 것 같아 아픈 걸 꾹꾹 참고 소독약을 열심히 발라댔다. 피와 흙을 닦아내 노출된 뼈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닦아내도 뼈는 안 보였다. 닦아내고 닦아내도 피부뿐이었다. 내심 크게 실망했다. 지금처럼 습윤밴드 같은 건 없던 시절이라 피가 마른 시커먼 딱지를 무릎에 달고 마구 돌아다녔는데 자전거 때문이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뛰어내리기도 자주 해 같은 자리를 다치고 또 다치기도 하던 때였다. 자전거는 13살 되던 해에 누가 훔쳐갔는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안 타다가 고3이 되고 얼마 안 있어 친구에게 자전거가 생겨 다시 탔다.
같은 아파트 단지, 바로 옆 동 살던 친구에게 자전거가 생긴 거다. 급전이 필요했던 친구가 이걸 팔았고 내가 샀다. 이걸 타고 입시미술학원에 다녔는데 배낭에 이것저것 미술 용품을 넣고 왔다 갔다 하니 딱 좋았다. 오래 탔다면 참 좋았을 텐데 이 자전거는 아쉽게도 몇 개월밖에 못 탔다. 처음 자전거 주인이었던 친구 포함 다른 몇몇 친구들과 동네 놀이터에서 몰래 술을 마셨는데 시간이 지나니 술이 바닥났고 맥주를 가지러 다른 친구 집을 향해 신나게 페달을 밟은 거다. 그 길에 사고가 났다. 새벽이었고 지금은 절대 하지 않을 음주 운전을 해서 앞으로 크게 고꾸라졌다. 그나마 혼자 넘어졌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대부분 무릎이나 가끔 팔꿈치까지 다치던 어릴 때와는 달리 이때는 왼쪽 얼굴을 크게 다쳤다. 몸이 부웅 떠서 왼쪽 얼굴이 아스팔트에 그냥 떨어졌다. 그 새벽,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로 집에도 못 들어가고 놀이터에서 아침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 술냄새를 풍기면서 아프다고 집에 기어들어갈 순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런 얄팍한 수는 하나도 통하지 않아 술 마신건 마신대로 혼나고 얼굴 다친 건 다친 대로 혼나고 놀이터에서 밤샌 건 밤샌 대로 고스란히 혼났다. 나름 아찔한 고3이었다.
27살, 그때 만나던 남자친구가 자전거를 사줬다. 갑자기. 자기가 타기로 했으니 나도 타야 한다며 광화문에 살던 나를 잠실까지 데려갔다. 혹시 자전거를 못 타면 자기가 가르쳐 줄 테니 오빠만 믿으라고, 아무 걱정 말라면서 안심까지 시켜주면서. 그날 나는, 잠실에서 남자 친구가 사는 양재동까지 그를 데려다주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광화문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전남친과 인라인 스케이트로 가양대교에서 올림픽 대교까지 꽤 다녀봤던 터라 자전거로 다니는 한강은 익숙했고 서울시내는 쉬웠다. 야심 차게 자전거를 사줬던 남자친구는 언젠가부터 서울땅이 왜 이렇게 기울었냐고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차로 다니거나 걸어 다닐 때는 몰랐던, 막연히 평지라고 생각했던 길 위에서 자전거에 올라타 바퀴를 굴려보고 나서야 거의 모든 길들이 사실은 오르막길이거나 내리막길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다. 완만하거나 급한 경사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길들은 실내가 아니라면 기울어져 있다. 아, 실내만큼은 아니지만 물길도 꽤 편평한 편이긴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크쇼츠부터 온갖 자전거 액세서리를 사들였던 그의 자전거에 먼지가 쌓이고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힘없이 주저앉을 때즈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그가 사줬던 자전거를 그의 집까지 돌려주러 갔었다. 그의 집 앞에 자전거를 주차한 후 문득 '이건 아니지.'라는 후회가 들어 그 자전거를 타고 다시 반포대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중고로 팔았다. 그 돈으로 고기 사 먹었다.
"민사장, 그럼 나는 가 볼게."
푸른 불꽃의 아저씨가 사장님에게 굿바이 인사를 한다. 나가는 모습을 보니 저 아저씨 몸에 주렁주렁 뭘 참 많이 달았다. 힙색에, 왜인지 핸드폰 거치대가 팔뚝에도 있고.
"거기 사모님도 안전 운전하시고요."
"네... 네."
그렇게 호응을 안 해줬는데도 끝까지 안전 운전을 희망해 주는 불꽃 아저씨의 모습에 좀 더 친절하게 굴어줄 걸 그랬나 싶어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러면 안 된다.
"왜 말 안 했어요?"
"뭘요?"
"사모님, 오늘도 한강 다녀온 거 아니에요?"
"우와! 사장님! 어떻게 알았어요? 저 한강 다녀온 거?"
"저기 커피, 저번에 한강 다녀오고 들렀을 때 가져다준 빵집 거기 아니에요?"
"와, 진짜 사장님 대박! 눈썰미킹!"
사장님이 자전거 핸들에 걸려 있는 비닐봉지 안에서 다 마신 테이크아웃 염창동 B카페 컵을 본 거다. 내 자전거는 가장 대중적이고 저렴한 하이브리드 자전거이고 또 사장님 피셜 험하게 탔고 제법 오래 타기도 했다. 그래서 장거리를 뛰고 나서 간혹 여기저기 삐그덕 거리는 게 느껴지면 자전거포에 종종 들렀다. 그러다 가끔 B카페 스콘을 사 드릴 때도 있었다.
"사모님도 한강 다닌다고 말 좀 하지. 왜 못 들은 척 가만히만 있었어요?"
"한강이요? 한강... 아 진짜 그게 뭐라고."
"한강이 왜?"
"그냥, 한강 그거 뭐 하러 말해요."
나는 무슨 안 좋은 냄새라도 맡은냥 코를 실룩이며 대답을 계속했다.
"말하면 왜요?"
"아효, 참. 생각해 보세요. 제가 그거 말하잖아요? 그러면 옳다구나 싶어서 자기는 자전거로 전국 어디 어디 갔나, 자랑을 엄청나게 늘어놓을 걸요. 아니 물론 제가 잘 모르는 아저씨니까 함부로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슬쩍 사장님 눈치를 보며 사장님도 불꽃 아저씨가 말할 때 눈에 영혼이 없었음을 기억했다.
"그래도. 아우, 상상만 해도 그런 자랑 너무 재미없어요."
"아니, 왜? 그쪽이 그러면 사모님도 자전거 타고 제주도 간 것도 말하고 그러면 되지. 저번에 서해안 간 것도 있잖아요."
"아이고, 무슨, 나 자전거로 어디 어디 가 봤나 서로 배틀할 일 있어요? 사장님, 이 세상에 그런 배틀만큼 피곤한 게 또 없어요."
"허허."
사장님이 웃었다. 아주 기분 좋게 크게 웃은 건 아니고 그냥 너털웃음.
"그리고 뭐 초등학생 아들보다 자전거도 단정하게 못 관리하는 아줌마가 뭐, 그런 배틀 할 자격이나 있겠습니까?"
"아, 하하하."
브레이크 수리까지 마친 사장님이 또 웃었다. 이번엔 기분 좋게 웃는 것처럼 보인다. 괜히 약이 오른다.
야트막한 안양천만 내내 보다가 한강에 도달하면 한강이 바다처럼 보이는 마법을 경험한다. 그래도 마법은 마법일 뿐, 한강은 한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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