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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Mar 08.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1. 결혼식 하객룩



1. 결혼식 하객룩



요 근래 스팸문자 오는 량이 급격하게 늘었다. 주로 주식이나 코인에 관한 것들이었고 또 어떤 건 신사나 논현 쪽에서 무슨 보드게임을 오픈한다고 ‘몇 시 출발 어쩌고’하는 내용의 전문용어가 섞여 있는 스팸도 있었다. 이지경이니 문자 알림을 무음으로 해 놓고 저녁에 천천히 확인하고 지운다. 그리고 그중에 스팸이 아닌 문자를 발견했다. 청첩장이었다. 


‘카톡에는 없는 앤가… 문자로 왔네.’


신부 쪽이 아는 얼굴이었다. 오서율. 대학 때 알게 되었는데 친구라고 할 만큼 가까운 느낌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얼굴만 아는 동창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런 포지션의 사람이다. 배성진이라고, 아직도 가끔 연락하는 몇 안 되는 동기인 성진이의 동향 친구라 꽤 자주 얼굴도 봤고 몇 번 밥자리, 술자리도 어울렸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카톡을 뒤져보니 ‘JessiOh’라는 영어 이름으로 친구 목록에 있었다. 프사를 보니 프사에도 온통 웨딩 관련으로 가득하다. 예쁘다. 부랴부랴 다시 청첩장을 봤다. 결혼식 장소는 L호텔이었다. 


‘와… 오서율네 잘 살았나? 아니면 신랑이 잘 사나? 누구냐? 누가 좀 사냐?’


지금 다니는 게임회사에 출근하고 한 주도 안 된 첫 금요일, 강제로 일찍 퇴근당해서 회사 대표이사의 결혼식에 동원되었었다. 그 장소가 L호텔이었다. 개인적으로 호텔 결혼식은 처음이었고 식사를 하면서 식을 구경한 것도 처음이었다. 호텔 스테이크라 기대가 컸었는데 생각보다 맛이 없어 좀 남겼었다. 첫 월급을 타고 급여에서 축의금 떼인 걸 안 이후로 그때 남긴 스테이크가 아직도 눈에 밟힌다.


‘그나저나 결혼식이 얼마 안 남았는데 뭘 입고 가냐…’


그냥 구부정하게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는 일이 업이라서 그런가, 다 어둡고 칙칙한 옷들뿐이다. 부랴부랴 하객룩을 검색해 보았다. 와, 오글거리는 옷들이 검색창을 가득 메운다. 원피스는 도저히 못 입겠고… 적당히 얌전한 셔츠를 한 벌 사기로 했다. 바지는 대충 검정색 청바지를 입으면 될 것 같다. 문제는 가방이었다. 


‘이런 데서 하면 동기들 많이 오겠지. 다들 엄청 근사하게 하고 올 텐데.’


옷은 거지같이 입어도 가방 하나만 근사한 걸로 들어주면 게임 끝이다. 회사 옆 자리 이대리가 항상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게임을 끝내 줄 가방이 없다. 

며칠 전, 이대리가 샤넬과 디올중 고민 고민하다 디올의 ‘레이디 백’을 샀다며 자랑한 게 기억났다. 나는 관심 없는 척 귀만 열어 듣고 있었다. 그녀는 그 디올 백을 위한 적금을 들어놨었고 이번에 드디어 만기라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타이틀에 들떠 있었다. 나도 몰래 검색해봤다. 


‘크리스챤 디올’은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올이 1947에 설립한 브랜드로 코코 샤넬이 만든 ‘샤넬’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프랑스의 하이엔드 럭셔리 패션 브랜드라고 한다. 이 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패션계의 최고 자리를 두고 경쟁했었다고 한다. 

이대리가 자신에게 선물한 레이디 백은 ‘레이디 디올’이라고 불린다. 그 유명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1995년 프랑스 방문 때 들었다는데 이후, 이름을 ‘레이디 디올’로 바꾸고 발매되었고 미친 듯이 팔렸다고 한다. 가방에 사용된 퀼팅은 ‘까나쥬 패턴’으로 나폴레옹 3세의 의자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패턴인데... 음… 나폴레옹 3세 의자가 갑자기 궁금해지지만 꾹 참고 가방 이야기를 더 하자면 미니, 스몰, 미듐, 라지 사이즈가 있는데 여기서 입틀막. 가격이 사이즈별로 490만 원에서 880만 원까지 호가한다. 미니는 이걸 가방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싶은 사이즈고, 이대리는 미듐 사이즈를 샀다고 했는데… 아니 이대리, 중고차 한 대를 샀구만! 


계속 검색해 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중고차 한 대씩 들고 다니는 걸 알 수 있었다. 예뻐 보인다. 부럽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에게 할 선물 밑천 적금도 없고, 사실 적금이 있다 한들 이 적금을 덥석 나 포함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할 용도로 쓸 만큼의 여유도 없다. 그러니 내가 이 백을 겟 할 방법은 로또에 당첨 되는 건데… 


로또만 되면 좋은 가방 하나쯤 살 여유는 생길 것이다. 그때 나는 디올이 아닌 샤넬을 살지도 모른다. 물론, 좋은 차도 살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의 결혼식이 아니어도 호텔에서 고기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와, 일급비밀을 거래 조건으로 주변 사람 몇 명에겐 근사한 선물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되기만 하면! 문제는… 여기서 한 숨 나온다. 당최 로또가 돼야 말이지. 


이번 주에도 거금 5천 원을 투자했는데 다 꽝이었다. 그래서 로또 번호를 잘 맞춘다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까지 해봤는데 그 이후로 스팸 문자 폭탄만 맞고 있다. 보이스피싱 안 당하게 긴장까지 타야 한다. 


‘어디 보자… 뭐 디올이 아니어도 아쉬운 데로 그냥 예쁜 백이라도 사 볼까?’


아, 좀 예쁘다 싶은 가죽 가방은 최소 30만 원대, 최소 백화점스러운 브랜드는 50 이상… 막상 이렇게 쓰려니 왜 800만 원이 넘는 디올 백보다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이건 어디서 온 속물 알고리즘인가. 이럴 게 아니라 오랜만에 성진이한테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성진. 나 오서율 청첩장 받음. 시간 되면 만나서 갈까?]


톡을 보내 놓고 느긋하게 가방 검색을 더 했다. 검색을 하다 보니 그냥 제대로 된 정장에 좋은 구두까지 사버릴까 마음이 기울여는 찰나, 성진이로부터 답 톡이 왔다.


[너 오서율 결혼식 가려고?]

[ㅇㅇ 문자 왔길래 가려고 하는데 왜?]

[야, 거길 왜 가? 청첩장이랍시고 문자 하나 띡 보낸 애한테 무슨 축하야. 가지 마]

[엥? 너 진짜 안 갈 거야?]

[미쳤냐고. 안 가 너도 가지 말라고. 오서율 걔 웃겨]


그러고 보니 성진이랑 서율이랑 아주 찐친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검색창에 바글거리고 있는 가방들과 옷들과 구두들이 우스워 보였다. 


며칠이 지나 결혼식 일주일 전에 오서율에게 톡이 왔다. 성진이 같은 애들의 기운을 느꼈는지 직접 만나 청첩장 돌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약간의 구구절절함이 느껴지는 장문의 톡이었다.


오서율 결혼식 당일, 느긋하게 혼자 영화를 보고 버거킹에서 야무지게 쿠폰을 사용해 좋아하는 햄버거 세트를 반값에 먹으며 시간을 확인했다. 


‘한창 식을 거행하고 있겠고만.’


사실 며칠 전부터 고민을 했는데 지금 결정했다. 카톡으로 오서율에게 축의금 조로 몇만 원을 보냈다. 진짜 오서율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써버렸을 금액에 비하면 이 정도 쓸 여유는 되니까, 비록 로또는 안 됐어도 이 정도 쓸 능력은 되니까. 하… 보내 놓고 나니 봉투 사용을 잊어 그냥 돈만 보냈다. 좀 쑥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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