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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광 Jun 15. 2024

로또에 당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100가지 일들

22. 가와사키



22. 가와사키



“아무래도 가와사키 같은데요.”

“가와사키요?”

“네.”

“하… 역시!”

 

가와사키였다. (*가와사키병 : 체내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질병이다. 병명은 처음 보고한 일본의 의사 ‘가와사키 도미사쿠’로부터 유래되었으며 진단은 특징적인 임상 양상에 의한다. 병의 원인은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특별한 예방법은 없고 전염성도 없다.) 거대한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건져 올린 정보들이 들어맞았다. 평소 먹던 해열제로는 도저히 안 잡히는 4일째 지속되어 온 고열. 손바닥, 발바닥과 손가락 끝, 발가락 끝 사지말단이 붉게 부풀어 오르는 부종과 허물 벗겨짐. 배꼽 주변과 항문 주변,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및 BCG 주사 자국에 생겨난 발진. 새빨갛게 충혈된 눈. 이상하리만치 백태가 사라지고 딸기처럼 오돌토돌해진 혀. 모든 증상이 인터넷에서 찾아낸 가와사키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와사키 맞데.”

[“진짜?”]

“응, 방금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 가와사키 같다고. 그런데 지금은 입원만 하고 치료는 내일부터 할 수 있나 봐. 인터넷에서 봤던 거 기억하지?”

[“진짜? 지금 바로 입원한다고?”]

“응. 먼저 열부터 떨어트리고 그다음에 면역글루불린 맞을 수 있데.”

[“아, 진짜?]

“뭐가 자꾸 진짜가 진짜야? 너는 꼭 이럴 때 되물어보더라. 너 그거 버릇이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내가 안 피곤할 때나 받아주는 거지. 이럴 때는 조심 좀 하자. 나 예민하단 말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걱정이 되니까 그러지... 지연아, 그러지 말고 내가 갈 테니까 네가 집에 올래? 병원에서 자고 해야 되잖아. 너 당장 내일 출근은 어떻게 하려고?]

“아니야. 너는 코 크게 골아서 안돼. 벌써 송팀장님한테 연락해 놨어.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휴가를 아꼈나 보다. 아흑, 아까워… 피 같은 내 휴가.”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그랬어, 너 괜히 휴가 아끼지 말라고 했잖아.”]

“아, 됐어. 지금 봐봐라. 괜히 아끼길 잘했지.”

[“지연아, 시후 재우고 병원에 들를까? 너 필요한 것도 있을 거 아냐?”]

“아니야, 응급실 올 때 이미 입원 준비도 다 해왔어. ‘가와사키’ 면 입원 하자고 할 것 같았거든. 그러니까 여기 걱정은 하지 말고 시후나 잘 챙겨 줘. 시후 씻었지?”

[“응. 지금 탕에서 물놀이 중이야. 오늘 땀 엄청 흘려서 덥다고 자기가 먼저 목욕탕에 물 받더라. 바꿔 줄까?”]

“아니야, 나오면 또 전화해. 간만에 혼자만의 시간 즐기라고 해야지. 우리 시후 잘 논 거지?”

[“당연하지. 처음엔 정후 걱정하다가 나중엔 날아다니더라고. 답답했겠지. 덩치만 컸지 아직 애야. 애기.”]

“그래, 너도 피곤하겠다. 내일 반차 써야 되잖아. 아, 맞다! 정후 유치원에도 전화해 줘야 돼. 상황 설명 잘해드리고, 알았지?”

[“당연하지. 정후는… 그러면 괜찮은 거지? 며칠을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럼, 그럼! 걱정하지 마. 우리 정후 금방 나을 거야.”

 

요 근래 지연은 육아는 팀플레이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부모로 묶인 구성원이 불시에 들이닥친 미션을 어떻게든 클리어해 가는 것이다. 처음 시후가 생겼을 때 엄마인 지연과 아빠인 용선은 모든 것에 허둥지둥 이었다. 무슨 일이든 차근차근 침착하지 못했고 어떤 일이든 반드시 시행착오와 함께했다. 모든 과정이 엉망진창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웃었다.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었을 때 북유럽 감성에 인더스트리얼 스타일을 섞어내어 야심 차게 꾸몄던 신혼집은 섣불리 발 디뎌선 안 되는 지뢰밭으로 변화했고 둘 다 매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며칠을 씻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둘 다 거지꼴을 못 면하는 하루하루 중에 오직 아이만, 작은 아이 한 명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작고 소중한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 그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충분히 넘치고도 남을 고생이 함께했던 날들이 좋았다. 지연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준 건 결혼 전 연애할 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첫 직장에서 처음 만나 사내 조별 장기자랑을 일등으로 이끌어냈던, 척하면 척척 맞았던 용선이와의 팀워크라고 생각한다.


시후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드디어 육아의 한 고비를 넘겼나 보다. 야호!’ 외치며 안심했을 때 정말 거짓말처럼 짠 하고 나타난 둘째 정후 앞에서도 팀워크, 오로지 팀워크만 생각했다. 또다시 맞닥트린 어린 육아의 걱정과 두려움 앞에서 ‘그래! 팀워크, 팀워크만 훌륭하다면 겁날 게 없어!’라고 되뇌고 또 되뇌었다. 물론 팀워크란 게 의견 일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만 해도 그렇다. 용선은 아이의 고열 앞에선 항상 즉각적인 응급실행을 주장했고 지연은 항상 며칠 상황을 지켜보고 나서 움직이자고 주장했다. 이 문제로 어제도 그제도 다퉜다. 때마침 그들에겐 인터넷이 있었고 두 아이를 돌보며 각자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정보를 찾는 것도 열심이었다. 이미 시후를 키우면서 수족구, 독감 등 여러 증상에 대해선 제법 알고 있었는데 정후는 이와 다른 양상이었다. 결국 두 사람이 만난 곳은 ‘가와사키병’이었다. (*가와사키병은 특징적인 5가지 임상 증상 중 적어도 4가지 증상이 나타나야 진단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지연은 정후를 데리고 신속하게 응급실로 움직였다. 늦은 일요일 오후였기 때문이다. 용선은 공원에서 열심히 12살 시후와 뛰어놀아 주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이 그들의 팀워크였다. 다투는 것도 의견조율 팀워크, 신속 정확 행동으로 옮기는 것도 팀워크. 그러니까… 제발,


‘거기 젊은이들. 어린 부부들아, 팀워크라고! 제발 화내지 말라고!’

 

지연은 응급실 입성 후 간호사 선생님을 쫓아다녀 먼저 정후의 해열제를 받았다. 다시 다른 간호사 선생님을 쫓아다녀 투약병을 받았고 바로 처방받은 용량 7ml를 정후에게 먹였다. 5살 정후는 곧 뜨거운 입김을 훅훅 내쉬며 속옷만 입은 채 잠이 들었다. 시원한 에어컨 공기 속에 이불은 덮어주지 않았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의사 선생님만 기다리는 던 그때 그들이 들어왔다. 갓 3개월 반? 5개월쯤 됐으려나, 너무 작은 아기와 너무 어린 엄마, 아빠였다. 엄마는 거의 울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기는 고열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였다.


“여기 간호사들! 의사 데리고 오라고, 의사! 여기 응급실이잖아! 의사들 다 어디 갔냐고!!”

 

아빠는 너무 화가 나 있었다. 간호사나 의사가 지나갈 때마다 매번 붙잡아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리지도 못 하고 결국 터진 눈물과 함께 작은 아기만 붙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연은 점점 부끄러워졌다. 지연도 딱 저랬기 때문이다. 시후가 저 아기만 했을 때 지연도 작은 시후를 끌어안고 병원 응급실에서 저렇게 행패를 부렸었다. 우리 아기 숨 넘어간다고. 빨리 의사 내놓으라고. 그런 지연을 용선이가 틈틈이 진정시켜 주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연 기억 속에 지연은 거의 난동을 부렸던 것 같다.


“아니! 왜 자꾸 애 옷은 벗겨 놓고 가는 거야!”

 

상당히 무표정한 간호사가 시크한 태도로 그 아기의 옷을 모두 벗겨 놓고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성인 여성이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왔기 때문이다. 가까이 있지 않은데도 솔솔 풍겨오는 술냄새가 엄청나다. 보아하니 학생인 것 같은데... 아직 늦은 밤도 아닌데도 저 정도로 인사불성이 되었다면 분명히 일찌감치 시작했을 것이다. 아마 낮부터 달렸겠지. 학생은 가만히 누워 있어도 모자랄 판에 자꾸 벌떡벌떡 일어나 몸부림을 쳐대서 학생을 부여잡은 간호사뿐 아니라 함께 쫓아온 친구까지 애를 먹이고 있었다. 어디서 부딪힌 건지 히피펌을 한 것 같은 마구 풀어헤친 머리카락엔 진흙에 낙엽까지 엉겨 붙어 있었고 – 대충 쓰레기처럼 보이는 건 일부러 흐릿하게 보았다. - 이마 한가운데 찢어진 상처는 피에 먹색 진흙까지 엉겨 붙어 있어 더럽기 짝이 없었다. 안간힘을 써 학생을 붙잡고 어떻게든 상처 부위를 소독해 보려는 간호사의 얼굴에는 순간순간 ‘욱’ 하는 마음이 언뜻 비치나 싶었지만 역시 그녀는 프로. 감정을 잘 부여잡아 예의 그 무표정으로 감정의 흐트러짐을 티 내지 아니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감정까지 담아줘야 한다면… 지연은 10분도, 5분도 못 버틸 것이다.


“됐고! 의사 오라고! 의사! 이렇게 약만 줄 거면 우리가 뭣 하러 병원에 왔겠냐고! 지금 애 우는 거 안 보이냐고요!”


아기 아빠는 지치지도 않는다. 초지일관 꾸준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간호사나 의사의 리액션, 특히 원하는 리액션이 없으니 더 저러는 것 같다. 어느 간호사가 의사는 급한 환자부터 보고 있으니 기다리면 곧 올 거라는 말만 하고 다시 아기의 옷섶을 전부 열어 거의 기저귀만 찬 상태로 만들어 놓고선 자리를 떠났다. 어린 엄마, 아빠는 열나는 아기는 시원하게 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간호사가 가자 마자 아기를 다시 꽁꽁 싸맸다. 지연은 한숨만 나왔다. 아마 알아도 모르는 걸 거다. 인터넷 보면 다 나온다. 어린 아기들 열 떨어트리는 법. 아기들은 어른과 달라 열이 나면 절대로 이불 뒤집어 씌우지 말고 시원한 천으로 냉찜질을 해주고 어쩌고 저쩌고… 일단 중요 체크, 머리에 입력을 한다. 그런데 막상 현실로 닥치면 걱정이 앞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공기가 이렇게 찬데 아기를, 열까지 나는 아기를 진짜 찬 공기에 노출시켜도 되는지 하얘진 머릿속이 복잡해지기까지 하고. 그러니 간호사가 할 때는 가만히 있다 가도 저렇게 가버리면 덜컥 겁이 나서 평소 옆 사람 – 어른 – 한테 하 듯이 에어컨 찬바람에 혹시라도 아기가 추워하는 건 아닌지 자꾸 싸매게 된다. 지연은 저들의 불안할 심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정후 보호자님?””

 

그래도 내 코가 석자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정후를 보러 왔다. 얼굴에 약간의 개기름이 흐르는 자연스러운 곱슬머리를 자랑하는 선생님이었다. 이 선생님, 머리는 언제 감았을까? 앞머리 쪽에 커다란 비듬 몇 개가 보였다. 충분한 시간과 감정적 여유만 주어 진다면 어렵지 않게 개수파악도 가능할 만큼 작지 않은 크기였다. 그러니 얼른 비듬을 흐릿하게 두고 그와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간호사들 못 지 않은 무미건조 무표정. 그의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가와사키’가 맞았다. 얼른 용선이에게 연락하고 입원 수속을 밟고 왔더니 이제는 어린 엄마, 아빠 두 사람이 서로 싸운다.


“안 되겠다. 큰 병원이라고 기껏 왔더니 별 거 없잖아! 야, 우리 딴 데 가자! 병원이 여기밖에 없나, 뭐! 딴 데 가자! 딴 데!”

“이 시간에 딴 데 어딜 가?”

“딴 데 가자고! 빨리 나오라고!”

“됐다고! 여기서 기다리자고!”


어린 아빠가 벌떡 일어나 어린 엄마 품의 아기를 채 가듯 안았다. 엄마는 아기를 왜 그렇게 안냐며 화를 내고 가운데 아기는 힘없는 울음보가 터지고. 저 모습도 딱 왕년의 지연과 용선이었다. 지연이 저 아기 아빠 용선이 저 아기 엄마. 지연은 부끄러운 마음에 그들을 거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기, 딴 데 가도 똑같아요.”

“네?”

 

화 많은 아빠가 인상 쓴 얼굴 그대로 지연을 돌아본다.


“딴 데 가도 똑같다고요. 어차피 딴 데 가도 지금까지 기다린 만큼 또 기다려야 할 거예요. 지금 저도 한참 기다리다가 의사 선생님 만났거든요. 응급실이 원래 좀 그렇더라고요.”

“뭐요?”

“제 말은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시고, 그리고…”


아기도 시원하게 해 줘야 한다고 말하려는 찰나 “남정후 보호자님?” 간호사가 입원실로 올라가자고 했다. “네, 네.” 지연은 입을 다물고 척척 짐을 챙겼다. 아기 아빠는 지연이 해준 말 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아기 엄마와 싸움을 이어갔다. 지연이 정후를 데리고 응급실을 나올 때 즈음 어린 아빠가 아기를 안고 우악스럽게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그 뒤를 어린 엄마가 허겁지겁 쫓는다.



***********

 

 

정후는 소아병동 4인용 입원실에 배정받았다. 정후가 들어오기 전 두 아이가 먼저 입원해 있었는데 한 아이는 시후보다 한 살 많은 13살로 소아 당뇨로 입원 중이었고 또 다른 정후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독감이라고 했다. 13살 아이는 보호자 없이 혼자 있었고 정후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는 할머니와 같이 있었는데 지연은 이 할머니를 보자마자 직감했다. 저 할머니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오지 말라고 했지만 올 줄 알았던 용선이가 역시나 오밤중에 잠시 들렀다가 그 할머니로부터 초면에 큰 꾸지람을 들었다. 용선이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시끄럽게 요란을 떨었다는 게 그 이유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왔냐고 속삭였던 기억뿐이 없는데. 그래도 섣불리 대응했다간 병실에서 쫓겨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들었고 지연과 용선은 바로 깨갱했다. 물론 그 앞에서만 그런 거고 직후에 ‘톡’으로는 그 할머니 욕을 얼마나 해댔는지…


그 할머니는 호칭만 할머니일 뿐 나이는 지연의 막내이모 나이쯤 되려나.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에 아이라인에 눈썹만 시커멓게 그어져 있어 더 살벌해 보였다. 둘 다 푸른빛이 감도는 타투였는데 친한 동네 동생네에서 야매로 한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물씬 나는 모양새였다. 아이라인은 꼬리를 빼도 너무 뺐고 눈썹은 너무 갈매기 모양이었다. 머리는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컬로 만 것 같은 펌이었는데 그걸 세 갈래로 묶고 있어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좀 귀여운 푸들 같았다. 이건 나름 반전 매력. 키는 150cm가 조금 넘으려나 지연보다 한참 작은 키였으나 몸에서 뿜어내는 기세로 치자면 서장훈 뺨을 치고도 남을 것이다.


정후는 입원 하루 후부터 ‘면역글루불린’ 정맥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그 새 침대시트에 시원하게 쉬를 하고 답답해해서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나갔다가 휠체어에도 쉬를 하고 병원에서 주는 밥엔 입도 안 대고 밖에서 사 온 죽도 겨우 먹고.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야 하니 자연스럽게 정후가 거부한 밥은 지연이 먹으면서 밥값도 굳고 잘됐다고 긍정회로라도 열심히 돌리는 중이었다. 다만… 저 할머니한테는 그게 잘 안 된다.


“소리가 너무 커!”

“네?”

“소리가 너무 크다고! 줄이라고요!”

“아… 그게 지금, 아까 줄이라고 하셔서 정말 거의 줄인 건데요.”

“그게 줄인 거라고? 근데 왜 이렇게 커? 더 줄여야겠네. 너무 시끄러워!”

“아니… 정말 줄인 건데. 그래서 저희 애가 저렇게 거의 눈앞에 패드를 두고 보고 있잖아요. 커튼 닫고 하면 거의 안 들리시지 않으세요?”

“우리 손자가 커튼 답답하다고 닫는 걸 싫어해서 안 돼요!”

“아니, 그렇다고 계속 그러면…”

“아니,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경우가 없어? 그러면 이어폰을 써. 이어폰을!”

 

‘면역글루불린’을 투여받는 동안엔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어야 해서 정후가 많이 답답해하고 있었다. 다행히 치료 덕분에 컨디션은 회복되는 것 같았지만 그 컨디션이 회복될수록 답답함은 배가 되어 간다. 그래서 패드라도 실컷 보라고 봉인해제 해준 건데 저 할머니가 자꾸 난리다. 게다가 정후는… 이어폰을 싫어한단 말이다. 할머니는 계속 지연을 노려봤다. 지연은 하는 수 없이 정후가 들고 있던 패드를 만졌다. 볼륨 조절을 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하는 척 시늉만 했다. 사실은 볼륨을 줄이지도 건드리지도 않았다. 작은 정후가 엄마 지연의 연기를 보고 웃으려고 해서 지연은 얼른 등을 돌려 시야를 가렸다. 어쨌든 무언가 액션을 보이니 할머니는 조용해졌다. 정말 하는 척만 하고 동영상을 이어 보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할머니의 태클이 멈췄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걸로 잡힌 트집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잠시나마 평화가 온 줄 알았다.


“여기요? 여기에 우리 아기를 눕히라고요? 침대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해요? 침대에 칸막이는 없나요?”

 

앵앵거리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낯설지 않은 것이 얼굴도 낯설지 않다. 비어 있는 한 자리에 작은 아기가 들어왔는데 그 아기였다. 지난밤 응급실에서 본. 화 많던 아빠는 보이지 않았고 눈물 많은 엄마만 있었다. 무슨 이런 인연이 있나 싶었으나 그쪽은 지연을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아기는 아직도 열을 못 잡았는지 계속 울고 있는데 그 소리에 영 힘이 없다. 둘 다 엄청 지쳐 보이는 것이… 그새 무슨 일이 어떻게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짐작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연 과거의 과오를 반추 삼아. 이제야 여기 입원하는 걸 보면 그날 밤 진짜 다른 병원에 갔을 것이고 거기서 똑같이 기다렸을 것이고 결국 그걸 못 참고 집으로 돌아갔겠지. 아마 그새 해열제의 약효가 잠시나마 올라와 아기는 조금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간은 잠깐일 뿐. 원인 해결은 못했을 터, 아기는 다시 열이 오르고 아팠을 것이고… 그날의 분위기로 봐서 두 사람은 또 엄청 싸웠을 것이다. 아주 피 터지게. 짐작이 맞을 것처럼 안 그래도 파리했던 어린 엄마 얼굴이 더 반쪽이 되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입고 있는 옷도 그날 밤 그대로인 것 같다. 아휴, 밥이나 제대로 먹었으려나.


“우리 아기. 울지 마. 엄마가 있잖아. 아가야 아가야 힘내. 우리 아기 힘내자!”

 

아픈 아기가 울음을 멈추지 않으니 그 엄마는 계속 아기를 달래 주었다. 힘없는 아기의 울음소리엔 쇳소리까지 섞여 있다. 어휴, 저 작은 것이 얼마나 많이 울었으면. 저 엄마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 가 있겠지. 닫친 침대커튼 너머로 그 절절함이 온전히 느껴졌다. 그러나 당장은 지연 자신의 굶주림이 더 큰 문제다. 아침에 정후 앞으로 나온 밥을 밥 한 톨 안 남기고 싹 비웠는데도 벌써 배가 고프다.


점심, 밥시간이 되었다. 진짜 허기가 반찬인 건지 지연은 정후 앞으로 나온 식판을 받자마자 허겁지겁 배를 채웠다. 정후도 죽 한 그릇을 다 비울 기세다. 아이의 눈빛에서부터 컨디션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지금 추세로 보건대 잘하면 ‘면역글루불린’ 1차 투약으로 끝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매우 희망적이다. 지연은 주변을 둘러봤다. 저 사나운 꼰대 할머니는 집에서 가져온 것 같은 김치를 척척 찢어 먹으며 밥 먹기 싫다는 손자의 입에도 밥숟가락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저 밥숟가락을 거절했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는 걸 잘 아는지 너무 먹기 싫어하는 얼굴로 오물오물 밥알을 씹고 있다. 13살 어린이도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조용히 식사 중이고… 문제는 저 어린 엄마다. 너무 시끄럽다. 아기가 끊임없이 울고 있는데 그 소리가 시끄러운 게 아니고 저 엄마가 너무 시끄러운 거다. 힘없는 아기 울음소리 따위 덮어버릴 만큼 읊조리는 저 하이톤 목소리. 아기 엄마는 병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달래주는 소리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계속 듣고 있으니 머릿속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다. 밥으로 배를 채워 허기짐이 가시니 더 시끄럽게 울린다.


“우리 아기. 우리 아기 힘들어? 괜찮아, 괜찮아! 힘내자, 아가야, 응? 엄마가 있잖아. 엄마 여기 있어. 응? 많이 아프다고? 괜찮아, 괜찮아!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파주면 좋겠는데… 흐읍! 흐읍!”


말하는 중간중간 눈물을 꾹 삼키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 후엔 더 큰 하이톤의 목소리로 피치를 올려 아기를 달랬다. 정말 시끄럽고 슬슬 거슬리려고 한다.


“흐읍! 아가, 우리 아가야. 울지 마, 울지 마. 얼루얼루얼루얼루얼루, 울지 마. 아가야. 아플 수 있어. 아플 수 있으니까 참아보자!”

 

저 애는 이름도 없나? 정후는 소리가 작게 들리는 패드에 코를 박고 집중하느라 저 소리가 괜찮은가 보다. 13살 아이는 커튼 속에서 있는데 없는 것처럼 조용하고. 지연은 슬쩍 기센 꼰대 할머니를 쳐다봤다. 그 집 애도 노트북만 보고 있었고 할머니는 그 집 애에게 부채질 중이었다. 저 할머니, 저 앵앵 거리는 소리에 언제 반응하려나? 지연은 내심 할머니가 움직여 주길 바랐다.


‘할머니. 이 예민한 양반아! 왜 가만히 있는 거죠? 이럴 때야말로 모두의, 공익의 행복을 위해서 당신이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저 아기 엄마를 제발 조용히 시켜달란 말입니다!’

 

지연은 속으로만 열심히 텔레파시를 보냈다.

 

“아가야, 얼루얼루 아가야. 어떻게 해 주면 우리 아기가 안 아플 수 있을까? 엄마가 그걸 안다면 뭐든지 해 줄텐데. 아가야. 이이잉! 아가야!”

 

한 번 꽂힌 아기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왔다. 이럴 땐 커튼이 아니라 벽이 필요한데. 사람들이 이래서 큰돈 써가며 1인실을 이용하는 것이겠지. 지연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저 할머니 나한테는 그렇게 생난리를 치더니 왜 저 엄마한테는 저렇게 못 본 척하고 있지? 내가 어디 만만해 보인 거야?’


지연은 꾹 참고 현재 상황을 용선이에게 톡으로 알렸다. 돌아오는 대답은 그래도 조금만 참아보라는 말뿐.


‘아니, 그걸 누가 모르냐고! 지금까지 꾹 참은 거라고!’

 

지연은 답답했다. “아기야, 울지 마! 울지 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계속 들으니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저 할머니 대신 움직여 봐야겠다. 천천히 엉덩이를 움찔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이봐요! 애기 엄마!!”


할머니의 짧고도 확실한 호통. 드디어 그녀가 움직인다. 그 집 애가 눈이 가물가물 감기며 잠이 들다가도 저 아기 엄마의 아기 얼르는 소리에 계속 눈이 뜨인 것이다. 닫힌 커튼 안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엄마의 앵앵 소리는 일순간에 조용해졌고 아기의 힘없는 울음소리만 새어 나온다.


‘휴우! 다행이다!’


할머니는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닫힌 커튼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앞에서 멈춰 서 한 호흡 기다렸고 그 호흡이 끝나자마자 커튼을 확 열었다. 순간, 지연은 불호령이 떨어질 거라 예상하고 눈을 힘껏 감았다가 떴다. 그런데… 조용했다. 별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천천히 침을 꿀떡 삼켰는데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어떤 불호령 없이 열렸던 커튼만 다시 닫혀 있었다. 할머니는 그냥 커튼 안으로 들어가기만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뭐라고 뭐라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은데 중간중간 코 훌쩍이는 소리도 들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힘껏 귀 기울여 봐도 잘 들리질 않는다. 지연은 김이 팍 샜다. 이러다 아무것도 해결이 안 날 것 같다.


‘안 되겠다.’


지연은 정말 조용히 엉덩이를 의자에서 뗐다. 커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안 들키고 안 쪽 상황을 파악하고 싶어 서다. 정후가 웃는다. 지연이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 어떤 장난을 치려는 걸 거라 생각한 거다. 지연은 웃고 있는 정후에게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입에 가져와 데고 조용히 해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쉿!”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 순간, 아기 울음소리도 안 들린다. 더 조용해져서 더 살금살금 걸었다. 13살 어린이와도 눈이 마주쳤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창피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연은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드디어 앵앵거리던 아기 엄마의 커튼 앞.  


“뭐여?”

“에에! 아니에요!!”

 

지연이 도착했을 때 갑자기 커튼이 확 열렸고 기센 할머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지연은 너무 놀란 나머지 무조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소리쳤다.


“뭐가 아무것도 아닌데?”

“저도 모르겠는데요.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뭐가 아무것도 아니냐고?”


지연은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들지 못하고 힐끔 안 쪽을 보니 앵앵거리던 아기 엄마가 밥을 먹고 있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걸신들린 사람처럼. 아기는… 아기는 엄마한테도 없었고 침대에도 없었다. 아기는 할머니 품에 있었다. 입가를 움찔움찔하며 눈을 감고 있는 게 자고 있는 것 같다. 아기를 한 팔로 능숙하게 안고 있는 것이 할머니의 작은 체구가 유난히 커 보인다.


“아… 그게…”

“콜록, 콜록.”

 

지연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거리는데 아기 엄마가 사래가 들렸는지 기침을 해대게 시작했다. 지연은 이때다 싶어 잽싸게 자리로 돌아가 생수한통을 가져다 건네주었다.


“그렇게 먹으면 체해요. 천천히 드세요.”

 

아기 엄마 덕분인지 할머니가 더 이상 추궁하지 않는다. 지연은 아기 엄마한테 물만 건네고 그냥 돌아설 참이었는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아기 엄마의 등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어느 타이밍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정신을 차려보니 그러고 있었다. 아기 엄마는 기침이 잦아들었는데도 지연의 손길을 물리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병실이 조용해졌다. 지연이 잔뜩 기대했던 불호령 하나 없이 조용해졌다. 정후의 패드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마 잠들었나 보다. 할머니 손주도 잠이 들었을 것 같고. 정말 이렇게까지 평화로울 수 있나 싶을 만큼 병실이 고요해진 것이다. 너무 조용해져서 그런지 가만히 있던 아기 엄마가 입 안에 남은 밥알을 너무 조심조심 씹어 삼킨다. 지연도 별 말없이 계속 등만 쓰다듬어주었다. 쓰다듬어 주기 전엔 몰랐는데… 아휴, 아기를 얼마나 안고 있었는지. 굽은 등이 너무 아파 보인다. 그렇게 수분이 흘렀다.


“어떻게…”


아기 엄마가 가만히 앉아서 눈물을 뚝뚝 흘려 대기 시작했다. 굳은 어깨가 파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울어도 편하게 울지도 못하고… 그랬죠?” 아휴, 어떻게… 괜찮아. 괜찮아요.”

 

그렇게 듣기 싫었던, 아기 엄마가 아기에게 해주던 괜찮다는 말을 지연이 아기 엄마에게 해 주고 있었다. 그냥 그 말이 저절로 나왔고 해 줄 수 있는 말도 그 말뿐이었다. 아기 엄마는 그렇게 소리를 삼키고 울었다.

기 센 할머니는 작은 아기를 편안하게 안아주면서 잠이 든 손주의 잠자리를 손보았다. 그리고 정후의 침대에 들러 잠든 정후의 잠자리도 봐주었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어떤 콧노래도 흥얼거렸는데 처음 들어 보는 자장가다. 조용한 병실에 작게 들리는 자장가 소리. 그런데 템포가… 좀 빠르다. 곡이 좀 신난다. 자장가가 아닌가?


“무슨 노래지?”


자장가는 아니지만 아주 모르는 노래도 아닌 것이, 지연이 자신도 모르게 노래가 궁금해 중얼거렸고 꾹꾹 울고 있던 아기 엄마가 눈물을 삼키며 대답해 주었다.


“나훈아요. 18세 순이.”

“아,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 돌아올 줄 모르고?”

“네… 으흐흐흑, 서쪽하늘 문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에

떨어진 꽃냄새가 나를 울리네. 으흐흐흑”


지연이 조용히 선창 하자 아기 엄마도 울음을 삼켜가며 조용히 이어 불렀다. 이 노래 지연의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다. 이 노래를 한참 어려 보이는 아기 엄마는 어떻게 아는 건지…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가야 해

순이 찾아가야 해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가야 해

순이 찾아가야 해

누가 이런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나이는 18세 이름은 순이.”


후렴구는 할머니까지 함께 불렀다. 왜, 갑자기, 어쩌다가 나훈아의 18세 순이까지 함께 부르게 된 것인가…


‘아, 팀워크…’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은 어떤 비유가 아니었다. 이건 그냥 팩트다. 그리고… 평화가 깨지는 건 순간이다.


“은아야!”

 

병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 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날 밤, 보았던 화 많던 아기 아빠가 온 것이다.


“이이이이이잉! 오빠아아아아아아아아!”

“우애애애앵!”

 

아이고, 아기 아빠의 등장과 함께 아기 엄마의 울음보가 본격적으로 터졌다. 할머니 품에 있던 작은 아기도 잠에서 깨 또 운다. 순간 병실이 아비규환이라도 되나 싶었다. 저 어린 엄마 아빠 저러다 또 싸움 나면 어떡하지 그랬는데 웬걸, 그 화 많던 아기 아빠는 세상 순한 순두부 순둥이가 되어 모두에게 열심히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알긴 아는 거다. 자신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아기가 울고 아기 엄마도 운다는 것을. 그날 밤 봤던 그 화 많던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기 엄마로부터 대충 상황 설명을 듣고선 먼저 다가와 할머니와 지연이에게 고맙단 말부터 하는 게 아닌가. 급하게 오느라 빈 손으로 온 것을 후회하기까지 했다. 아기 아빠는 꽤 퉁퉁한 살집을 가지고 있어서 그 성질머리에 그 몸집에, 지난밤엔 혹시 무슨 건달이나 깡패는 아닌지 의심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확한 직업을 아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확실히 아니었다.


“와!”


순간, 지연은 흠칫 놀랐다. 그 퉁퉁한 아기 아빠가 할머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데 정수리가 바닥에 닿을 것처럼 상체를 숙이는 게 아닌가. 정말 대단한 유연성이다! 어쨌든 갑작스러운 아기 아빠의 등장으로 잠들었던 다른 아이들까지 깨어나 잠시나마 조용했던 병실은 이전보다 훨씬 요란스러워졌다.


'그래, 시끄럽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만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정후도 할머니의 손주도 컨디션이 좋아졌다. 게다가 퉁퉁한 순둥이 아기 아빠가 아이들과 너무 잘 놀아줬다. 어느 정도였냐면… 용선이가 질투할 정도. 아기 아빠는 보호자 없이 항상 가만히만 있던 13살 어린이까지 깔깔거리며 웃게 만들었다.


[“지연아. 있다가 시후랑 갈 건데, 뭐 필요한 건 없어?]

“응, 많아. 햄버거! 나 햄버거 사다 줘!”

[“뭐? 햄버거? 진짜?”]

“또, 또 진짜라고 한다. 이번엔 나 진짜 예민하다. 정후가 밥을 안 남겨줘. 민성이랑 아주 누가 먼저 먹나 내기까지 한다니까. 둘 다 완전히 회복돼서 병원밥을 아주 거덜내고 있어. 내가 먹을 게 없어, 하나도 없어. 나 너무 배고파! 꼭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할머니 손자의 이름은 민성이고, 어린 엄마 아빠는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아기는 5개월 이름은 나나라고 했다. 그들의 직업은 브레이킹 댄서. 이건 하루 종일 같이 있던 지연이 직접 알아낸 게 아니고 저녁에 잠깐씩 들른 용선이가 물어보고 지연이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냥 한 사람에겐 온 마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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