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땐 선풍기 바람을 에어컨보다 더 많이 맞았다.
선풍기를 아무리 세게 틀어도 여름의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 시절엔 선풍기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입안 가득 달콤한 시원함과 바람을 함께 삼켰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이 다 녹으면, 다시 덥고 끈적했다.
'선풍기는 더위를 이기지 못하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선풍기는 그저 자기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건 더위를 없애는 기계가 아니라,
그저 바람을 만들어내어 열을 식히는 존재였다.
아무것도 없을 땐 그 불편함조차 모른다.
부채가 생기면 손이 편하고,
선풍기가 생기면 팔이 편하다.
하지만 편리함이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금세 불만을 품는다.
'왜 선풍기는 찬바람이 안 나와?'
그건 애초에 선풍기의 역할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선풍기는 죄가 없다.
그저 묵묵히 자기 몫의 바람을 내보냈을 뿐이다.
한국은 점점 싸늘해지고 겨울로 향하고,
이곳 호주는 반대로 여름을 맞이한다.
습하고 끈적한 한국의 여름과 달리
호주의 여름은 뜨겁지만 건조하다.
그늘로 들어가면 오히려 서늘할 정도로
바람이 시원하다고 한다.
그런 호주의 여름을 기다리며
나는 문득 눈앞의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이 선풍기가 호주의 여름 나기에 도움이 될까?'
선풍기는 찬바람을 만들지 못한다.
기온이 낮으면 찬바람을, 높으면 더운 바람을 내보낼 뿐이다. 그건 환경의 문제이지, 선풍기의 잘못이 아니다.
운동도 그렇다.
운동은 죄가 없다.
"운동을 해도 살이 안 빠져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운동의 역할은 살을 빼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단지 바람처럼,
몸의 순환을 돕고 생명을 흐르게 하는 일이다.
살이 쪄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움직이지 않아서, 근육이 약해져서
몸의 에너지가 줄어든 것이다.
몸이 무거워지면 마음도 같이 내려앉는다.
운동은 살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는 일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운동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나를 믿고 있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일이다.
매일의 움직임은 스스로를 믿는 연습이다.
그 믿음이 근육처럼 자라며
삶의 무게를 견디는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운동을 도구로만 보지 않기로 했다.
운동은 목표를 향한 수단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선풍기가 찬바람을 만들지 못하더라도
공기를 순환시키며 방 안을 살리는 것처럼,
운동은 우리 안의 기운을 다시 흐르게 한다.
찬바람은 없어도, 방향이 있다면 충분하다.
선풍기는 운동과도 같고, 나와도 같다.
운동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지만,
운동으로 활력을 만들 수 있다.
선풍기가 찬바람을 만들지 못하지만
공기를 순환시키듯,
나 역시 누군가의 삶에 작은 바람이라도 일으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선풍기는 오늘도 묵묵히 바람을 낸다.
시원한 척하지도, 힘든 내색도 없이
그저 제자리를 지키며 불어준다.
나도 그렇게 내 일을 다하고 싶다.
내가 찬바람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쓸모없는 게 아니듯,
내가 가진 바람으로 누군가의 삶을 식힐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선풍기가 바람으로 여름을 견디게 하듯,
나는 운동으로 삶을 견디게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