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t

에세이

by 피터팬신드롬

아내 생일.

용돈 모아 선물한 명품 머플러를 마음에 안 들어해서 살짝 겸연쩍은 날이었다.

기분 전환 겸 아들과 아내와 운동장에 나가 운동을 하려고 했다. 아들이 좋아하는 '축구'.

제대로 놀아주려고 안 신던 축구화까지 신고 풋살장에서 뛰기 시작했다.


'짝!'


'소리? 어디서 난 소리지?'


이윽고 경련이 오는 다리를 붙잡고 아내와 아들의 눈을 번갈아 보았다. 아들은 아직 10초 전 축구의 "재미"로 웃음기가 남아있었지만 아내는 이내 경악하는 표정으로 일그러진다.


"부러졌네."


망연자실 신음하듯 내뱉은 나의 말에 아내는 더더욱 사색이 되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119를 누르고 접수 상담원에게도 아내의 절규는 그대로 시전이 됐다.

곧게 뻗어 있어야 할 오른쪽 전강이 뼈가 힘없이 살 속에서 두 동강이 나 덜그럭거리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살을 뚫고 나올까 단단히 붙잡고 있으려고 긴장을 한 나머지 등줄기로 비 오듯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새우등처럼 허리를 휘어 끙끙대고 있음에도 주위를 살폈다. 발 동동거리는 아들과 아내의 모습 외에는, 분명히 주위에 축구하던 어른들, 아이들이 많았었는데 악몽에서 깨기 바로 직전처럼 신기하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의료대란', '응급실 대란'이란 말을 다리를 30여 분간 붙잡고 신음하면서 실감해야만 했다. 엠블런스는 일단 다친 사람이 있는 곳으로 바로 출발 하는 게 아니라 다리를 치료해 줄 응급병동이 있는지부터 확인이 되어야 출발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 정신을 붙잡고 아파도 기다리란 의미는 야속하고 절망적이었다.


30분이 훨씬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엠블런스가 도착했다. 젊은 구급대원들이 원망스러운 유일한 구원자였고, 손길 하나하나, 당부 한마디 한마디가 직접 나를 진정시키는 마취제 같았다. 감사했다.


머릿속으로는 사실 골절의 '아픔'보다 다른 걱정이 앞섰다.


"회사는 어쩌지?"


지금 다니는 회사 말고, 애초에 이직을 마음먹고 며칠 전 깔끔한 인터뷰를 마친 새 회사 출근날이 가장 걱정스러웠던 것.


"괜찮아, 여보. 내가 있잖아."


아내는 내 혼잣말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반대 다리를 붙잡고 엠블런스에서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고, '뼈 아픈' 말이었다.


응급실에서 진통제를 맞고, 허벅지까지 붕대를 겨우 메고 힘겹게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비골, 경골의 모습이

현실감이 없다. 부러졌다기보다 부서져 있었다. 오게임 깨진 설탕과자처럼 굵직하게 부러진 전강이 뼈 주위로 크고 작은 파면이 보였다.


25개.

핀의 개수를 정작 다리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기억이 안 난다고 내 앞에서 세어보았지만, 훌륭하다 못해 완벽하게 끝냈다며 자화자찬하는 거만한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실밥을 떼고, 아직 반 깁스를 하고 있다. 전치 12주. 이제 2주 차.

묵직하게 내 골반에 달려있는 다리의 존재감이 아직은 이질적이라 불안하다.

30분 책상에 앉았다가 다리에 피가 몰리니 붓기를 식히러(?) 1시간 누워있기를 반복하는 게 고되지만 책을 원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피비린내 나는 월요 회의도, 상사의 이유 없는 지적질도 없는 한가한 오후가 더 달콤했다.


딩동!


집 인터폰 화면으로 큼지막한 택배 상자를 놓고 가는 기사의 뒷모습.

회사에서 보낸 내 집기들이다. 권고사직.

차라리 잘 됐다. 때려칠까 고민했는데, 이건 불가항력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거 아니더냐.


하지만 아내에게 끔찍한 선물 1개를 더 안겨다 준 셈이다.


아내의 생일에 일어난 사건을 Present라고 표현하는 내 생각이 어이없고,

덩그러니 펼쳐진 불안감이 존재하는 지금 ( present) 이...


흥미가 진진하다.


왜냐하면 예상과는 다르지만,

내 인생이 제대로 PHASE 2로 넘어가고 있는 거니까.


--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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