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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봉오리에 걸린 희락

by 훈자까 Mar 04. 2025

 맺히는 과정을 관찰하는 건 유희에 가깝다. 저 펴지는 행위에는 얼마나 많은 고뇌가 담겼는가. 나락도, 괴로움도, 절망도, 꼬리를 무는 회색 것들, 추락까지. 색채와 명암이 모두 극명히 대비되는 저 자태에는, 나의 광적인 무언가가 맺혀있다. 그리고 하나의 표상을 내건다. 눈부시고, 찬란하다.


 끊이지 않는 생각을 원망하고, 익숙해지고. 고집스럽고 질겅거리는 과정에도, 흔들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스러지는 하나의 단편이 고맙다. 끝끝내 토해낸 끄적임은 어떻게든 쌓여왔다. 행복감에 적은 글이 무척 적다는 것도. 마음의 해소를 위한 창구이자, 소중한 내 정체성인 것도. 차오름을 느낀다. 설사 영영 대외적인 스파크가 튀지 않더라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못 이루어낸 현실이라도 나만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니까. 어떤 결과이든 감사하고 빛나는 것들이다.


 그렇게 내외적으로 별가루를 쌓아왔다. 이렇게 보니 많이도 맺혔네, 예쁜 꽃봉오리가. 찰랑거리며 맺힌 이슬은 바라만 봐도 즐겁다. 동경은 똑같이, 아득히 멀지만. 그래도 거기서 뿌려댄 무언가가, 나를 많이도 바뀌게 했다. 처음이 무척 초라해 보일 정도로. 지금은 지상도, 하늘도. 밤하늘의 시야 어디에서도 반짝인다.


 



 일백 번째 글이다. 큰 감회는 아니나, 연재에 맞는 글보다는 작은 감상을 적고 싶었다. 첫 글을 적을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땐 참 두근거렸는데. 많은 시선의 소소한 감상을 기대한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토라지지 않았다. 그저 케케묵은 문서에만 적어둘 잡설을, 반듯한 책장에 꽂을 수 있었으니까.


 시간도, 글도 많이 흘렀다.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먼저 보여줄 만한 것들은 아니지만, 혼자 다시 읽어도 꽤 반듯하고 참 솔직하게 썼다. 스스로 평가하기에 애매한 재능이라고 하나, 동시에 가장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재능이니까. 양면이 일치하지 않아도 꾸준히 행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 예전엔 하나의 가치관으로 자부하고 싶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내 정체성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다.


 나를 사랑함은, 곧 글을 쓰는 것과 일치하게 됐다. 가꾸는 건 수단이고, 글은 그 목적이자 표현이다. 깊게 고민하나 반응에 대한 기대가 말끔히 사라진 것이 그 증거이겠지.


 삶을 부유하면서 남기는 글은, 결국 유언이다. 물질의 상속과 떠남에 대한 마지막 인사로 그치기에는 너무 짧지 않은가. 그렇다고 자서전 또한, 표면적인 사기(記)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전한 내 것이라고 해도, 지나서 읽으면 새롭다.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쓸 수가 없다. 그만큼 그때의 감상은 유일한 것이니까, 그 고유한 시간에만 남기려고 한다.




 아직 맺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밤풍경은 휙휙 바꿀 수 있는 임시적인 배경과 같다. 귀에 걸든, 코에 걸든. 이상의 높이는 무한하니까. 일시적인 완벽을 꾀하는 꽃망울은 한참 멀었다.


 사실 이제야 깨달았다. 존재해야만 하는 세상에 무언가 남기려는 내 스크래치에는, 뒷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단순한 해소가 끝이 아니라, 그 틈에는 촘촘히 기쁨의 씨앗이 쌓여있다는 것을.


 또 기대가 된다. 셈에 있어 내 글의 발끝에 쉼표가 걸렸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진심으로.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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