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민 Jul 04. 2022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건축가야? 사업가야? 노예야? 예술가야?

[ 06. 지적자본론 ep.25/책 ]

*제 글은 첫 에피소드 부터 이어져 오는 시리즈입니다. 제 브런치로 오셔서 이전 에피소드를 이어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이 글들은 <퇴사까지 1년 반>(가제)의 초안입니다.



<지적자본론>을 읽으면서 디자이너에 대해 생각을 했다. 나는 건축사사무소에 다니는 라이센스가 있는 건축사는 아니고 그냥 건축을 하는 사람이다. 건축가라고 하면 될까? 그럼 건축가는 뭘 하는 사람일까? 가끔은 OO 건축에서 일하다 보면 내가 건축을 하는 건지 모호해질 때가 있다.


건축을 한다고 하면 아름답고 좋은 기능의 공간을 계획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건축은 서비스다. 내 경험이 비록 얕고 얕지만, 건축사사무소에서는 디자인을 최고의 가치로 두지 않는다. 짐작했겠지만 최고의 가치는 돈이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서비스를 고객에 줄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리고 그 끝엔 돈이 있다. 최고의 서비스는 더 많은 돈을 불러온다. 물론 서비스에는 디자인적인 부분도 있었겠다. 건물의 입면 디자인이나 공간의 배치 같은 계획적인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엔 디자인 툴이 일반인도 하기가 쉬워져서 조금만 배우면 누구나 공간을 디자인할 수 있다. 여기서 건축가는 그 디자인을 실현 시켜 준다. 아파트 같은 큰 프로젝트에는 발주처 설계팀에 건축사가 있는 경우도 있다. 발주처에서 계획을 넘겨주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우리는 그 스케치 계획을 가지고 도면을 그려주고 그 계획이 사실상 지어질 수 있게 문제를 해결한다. 이렇게 건물을 짓기 위해 남들이 하기 힘든 일을 대신 해주는 서비스가 건축일이다.


건축은 사업이 될 수도 있다. 발주처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공간이 어떻게 하면 더 잘 팔릴지 고민한다. 물론 건축가도 같이 고민한다.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비싼 값에 분양이 될지 보고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업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무 대놓고 ‘돈을 이렇게 하면 많이 벌 수 있어요’라고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 해야 발주처가 일을 하나 더 떼어준다. 실상 사업이긴 한데 주체적인 사업은 아니다. 몇몇은 그만큼 책임도 많이 안지니안 지니까고도 한다. 책임이 없는 만큼 권한도 없다. 


건축가는 노예이기도 하다. 다시 돈 문제인데, 돈을 위해서 궂은일을 해야 한다. 인허가를 받을 때는 공무원에게 굽히고 들어갈 때도 있고, 심의 의원들에게 잘 보이려고 로비도 한다. 결과는 다 발주처에 잘 보이고 서비스를 잘 해내려는 목적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매출이 적은 글로벌 본부에는 예스맨들이 많았다. 원하는 거를 내가 싫거나 잘못됐다고 생각해도 해주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책임은 지지 않으니 결정권자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일이 빨리 끝나고 진행이 될 수 있다. 나도 어느 정도 물들어서 일이 끝나지 않고 늘어질 때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따지지도 않는다. 의견이 없어진다. 매니징의 대상이 되는 건 무척이나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저 시키는 사람이 원하는 만큼 해주면 된다. 물론 내 고집을 부린다고 해도 일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핀잔을 듣거나 다시 해와야 하는 상황이 많다. 책임이 없는 만큼 권한도 없다.


내 어릴적 꿈의 건축가는 예술가였다. 가우디, 자하 하디드, 르 코르뷔지에 같은 유명 건축 위인들은 아티스트로 불린다. 나도 그렇게 유명해지진 않아도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물론 건축으로 그렇게 되려면 엄청난 능력과 탈랜트가 필요할 것이다. 왠지 나쁜짓도 많이해야 할 것 같이 물불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건축가가아닌 주변사람들 중 자신의 삶을 마음데로 그리면서 사는 사람들은 그래 보이지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람을 갈아 쓰거나 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아티스트적인 마인드를 가지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예술가나 디자이너라고 믿어왔던 건축가는 둘도 아니다. 그럼 나는 무엇일까? 사업가일까, 서비스 제공자일까? 기계일까, 예술가일까? 물론 무엇이 되어도 나쁜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게 뭔지 생각한다. OO 건축에 있으면 내가 되고 싶은 예술가든 사업가든 선택 할 수 있을까? 결정 권한이 없는 것 같다. 내가 편하게 OO 건축에서 신입사원 1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일의 책임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권한이 없었다. 시키는 일을 해야했다. 그게 무척이나 편했고 안정적이었지만, 나는 내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 아니면 그 사이 모호한 무엇인가. 그저 나는 무엇이든 만들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미래의 우리는 모두 디자이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