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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민 Jul 08. 2022

세상에서 제일 야근 안 한 건축 현상 그리고 당선

내 일은 무슨일이야? 무슨 의미로 이 일을 하고 있지?

[ 07. 규칙없음 ep.29/회사]

*제 글은 첫 에피소드 부터 이어져 오는 시리즈입니다. 제 브런치로 오셔서 이전 에피소드를 이어서 읽으시기를 추천드립니다 :-)

*이 글들은 <퇴사까지 1년 반>(가제)의 초안입니다.



‘제천 아파트 신축공사’ 프로젝트를 하다가 갑자기 ‘하남 재활병원 현상’으로 배치되어 버렸다. 일단 글로벌 본부에서 해야 하는 현상으로 회사 윗선에서 정했는데 정작 본부에서는 인원도 부족하고 돌아가는 프로젝트도 여럿 있다 보니 급하게 빼낼 수 있는 인원들은 모두 빼내어 현상에 배치했다. ‘제천 아파트 신축공사’ 프로젝트를 하던 김 부장님과 나는 당연히 들어가야 했던 게 얼마 전에 제천 프로젝트의 사업계획승인이 끝나서 조금 여유가 생겼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각 팀에서 몇 명과 신입사원들이 참여했다. 다들 이전 현상이 ‘베트남 국제 현상’이었기에 걱정이 많았다. 또 그 굴레의 반복인가! 더군다나 글로벌 본부는 경험이 거의 없는 병원 설계를 해야 했으니 난감하기도 했다.


나는 보고서와 CG 이미지를 담당하는 파트에 있었는데, 사실상 2년 차 사원이다 보니 활용성이 신입사원들보다는 더 있어서 이곳저곳에 팔려 다녔다. 스케치업 모델링을 하는 날도 있다가, 어느 날에는 보고서에 들어갈 다이어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현상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있는지, 익숙한 일들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또한 다들 눈치를 보면서 야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지만, 그만큼의 일이 없어서 야근도 많이 안 했다. 현상 공모 주최 측에서 보고서를 20페이지 이내로 만들라고 했기 때문에 페이지 수가 한정이 되어 있었고, 계획이 어느 정도 나올 때까지는 사실상 야근이 불필요해 보였다. CG 이미지 상황도 비슷했다. 계획과 입면 디자인이 나오지 않으니 모델링을 빠르게 할 필요가 없었고, CG 이미지 같은 경우는 예산이 부족해서 몇 장 찍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의 양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었다. 물론 다들 눈치는 보았지만, 미리미리 다이어그램도 그리고 보고서 전략도 짜 놓아서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지 않았다. 2주 정도 지나니 현상의 하이라이트인 마감 바로 직전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주말 출근은 해야 할 것 같고, 보아하니 마지막 하루, 이틀 정도만 늦게까지 일하면 특별히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보통 이렇게 순탄하게 가면 판도를 뒤집는 복병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런 게 없었던 게 ‘하남 재활병원 현상’이었다. 보고서는 미리 준비했던 대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게, 내용이 다른 병원 현상 아이템을 짜깁기해놓은 것이고, 설계 계획만 전략에 맞춰서 잘 나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CG 업체도 걱정과 다르게 협조적이어서 CG 업체도 1번밖에 방문하지 않고 결과물을 얻었다. 순탄하게 가는듯해 보이지만 이곳저곳에서 불만들은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순탄하게 가는 이유는 결정권자의 말을 잘 들어줬기 때문이다. 입면 디자인은 본부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서 실제 디자인하는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입면이 나왔다. 물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본부장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어서 꺾을 수가 없었다. 물론 직급으로 찍어누르는 것도 있었지만. 보고서도 토씨 하나하나 본부장 입맛에 맞춰야 했다. 아주 막바지에는 본부장을 제외하고 경력이 가장 높은 1팀 소장이 직접 본부장이 말하는 문구를 받아적고 글자 하나하나를 수정하기도 했다. 정말 사소한 그것까지 본부장은 컨트롤하고 있었다. 페이지 하나하나에 쓰여 있는 타이틀, 서브-타이틀은 어떤 걸 쓸지, 컬러는 어떻게 할지, 화살표는 어디로 갈지. 물론 자기가 직접 고치진 않지만 말이다. 아, 저 정도의 연차가 되어야 저렇게 할 수 있겠구나. 그게 한 25년은 될 것 같다.


참 씁쓸했다. 내가 20년 후는 돼야 본부장의 명령에 따라 보고서 한 글자를 바꿀 수 있고, 그 후 몇 년은 더 흘러야 내가 마음대로 보고서를 쥐락펴락 할 수 있겠구나. 다들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건축에 대한 보통의 기대가 그러하듯이. 뭔가를 만드는 것에 결정권을 가지려면 건축 실무를 25년은 해야겠구나! 어렴풋이 짐작했다. 물론 글로벌 본부만 그럴 수도 있다. 내가 이런 일을 정말 하고 싶을까? 25년 후의 내 커리어가 저런 모습이라면? 물론 25년 후에 내가 건축을 계속한다고 해도 분명 다른 모습이겠지만 보수적인 건축업계에서 그렇게 큰 변화는 불어올 것 같지 않다. 아무튼 ‘내 미래를 이곳에 가두고 싶지 않았다’나 ‘더 거창한 일을 하고 싶다’라거나는 다 핑계다. 더 정확하게는 이런 말이 맞는다. ‘건축 실무는 내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다.’. OO 건축을 겪으면서 계속 속으로 스스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것이었다. 롤모델을 찾을 수 없었던 것도, 현실을 깨닫게 됐던 것도. 그저 내가 이렇게 되기 싫어서 그랬던 거다. 2년 차 사원으로서 새벽 늦게까지 본부장, 소장들과 일하면서 느낀 게 바로 내가 가리고 싶지만 가릴 수 없었던 ‘건축은 내가 바라던 길이 아니다’였다.


현상 마지막 날도 가볍게 새벽 3시까지만 일하고 다음 날 아침에 보고서를 프린트해 제본까지 마친 후 제출했다. 웃긴 게 다들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본부장조차도 말이다!), 평이 좋지 않은 ‘하남 재활병원 현상’은 경쟁사를 뚫고 당선이 되었다. 다들 의아해했다. 정말 힘 빼서 디자인에 힘도 없는 제안이 발주처에 먹히다니. 물론 현상 이후에 모든 디자인을 거의 새로 했지만, 어쨌든 신기한 경험이었다. 건축업계에는 잘 설계되고 감각적으로 디자인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다(뭐 제일은 돈이다). 그래서 우리는 밤 한번 새지 않고 당선될 수 있었다. 어쩌면 현상마다 밤을 새우고 미친 듯이 달려왔던 게 꼭 정답은 아니라는 걸 말해주듯이. 그렇게 힘들지 않은 현상을 마치고 다시 나는 ‘제천 아파트 신축공사’ 프로젝트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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