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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Mar 26. 2021

끔찍이 아낀다며 왜 때리고 죽이나요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국가의 역할

지난 1월 정인이 사건을 다룬 브런치 글을 썼습니다.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 아이의 참혹한 죽음에 어이가 없고 하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지금까지 조회수는 5천 건이 넘었습니다. 석 달여 동안 꾸준히 늘어 100 꼭지를 넘게 쓴 글에서 3번째로 많은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입니다.        


당시 국회는 일명 ‘정인이 법’을 만들어 재발 방지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인이 법 이후에도 아동학대나 치사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을 비롯해 조카를 때려 숨지게 한 인천의 외삼촌 부부  등.       


오늘은 충남 서산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섯 살배기 아들을 샤워기로 마구 때린 부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친부모든, 계부모든, 친척이든, 아동학대의 부류는 다양합니다.     


사회 양극화와 가족에게 모든 걸 떠넘기는 구조, 자녀 양육이 거의 전적으로 핵가족 내 부모의 성별 분업에 달려 있고,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부모가 없는 자녀는 정상적 사회 성원으로 자라기 힘든 사회구조. 이 구조의 가장 밑바닥에 아이들이 깔려 목숨을 잃고 있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중.     


사회 안전망이 보다 촘촘히 작동하려면 국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위기 가정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와 개입이 필요합니다. 법만 만든다고 유사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김용균 법’이 그렇고, ‘민식이법’이 그렇고, ‘윤창호 법’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나라의 정치는 참 한결같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이나, 태어나 자라는 동안이나, 다 자라서 자녀를 낳아 기르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니까요. 허구한 날 ‘개혁’이니 ‘혁신’이니 되지도 않는 얘기로 ‘혹세무민’을 고유 전통처럼 세습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법치를 따지는 나라에서 법의 울타리는 헐겁고, 유통기한은 너무 짧습니다. 그러니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나, 그들을 뽑는 국민이나 서로를 존중하거나 신뢰하지 않나 봅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는 언제쯤 끊을 수 있을까요?    


아동학대는 가난한 가정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중산층과 부유층에서도 비일비재 합니다. 다만 환경적 차이는 있습니다. 저소득 가정은 부모가 먹고살기 힘들어서, 잘 사는 집은 부모의 성취욕과 과보호에 학대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방문을 떼어버리고 공부하는지를 감시하거나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나도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치고, 중1에게 고1 과학을 선행학습 시키면서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고 혼내거나 잠자는 시간을 줄이라고 닦달하는, 부모들이 흔하게 보이는 태도들도 아동학대다. -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중.


아이들에게도 자유롭게 놀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가 있습니다. 친권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의 ‘소유물’로 치부해선 안 될 일입니다. ‘아이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녁을 잔뜩 먹은 초2 아들이 엄마한테 카스텔라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엄마는 "기다려"라고 해놓고 2시간 넘게 감감 무소식입니다. 제가 나가서 사 오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한 길인 것 같습니다. 가만, 카스텔라는 어디 가서 사죠? >.< ;;         


*이미지 출처: 픽사 베이(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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