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라는 이름의 전차*

by 류재민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껏해야 대출받으라거나 보험을 들라거나, 부동산을 알선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여론조사에 응해달라는 것쯤일 테니까. 받지 않았다. 진동 벨은 몇 번 울리다 끊어졌다.


잠시 후, 같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윙윙대는 진동 소리가 징징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아예 ‘수신 거부’ 버튼을 밀어 껐다. 이제 안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도착한 버스에 올랐다. 교통카드를 찍고 빈자리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이 다시 징징거렸다.

이번에는 ‘010’으로 시작했다. 전화번호에 저장된 연락처는 아니었지만, 왠지 이건 받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빈 의자에 앉으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류재민입니다.” 저쪽에서도 신원을 밝혔다. “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이라고? 내 직업은 선생님이 아니라 기자이거늘. 그래도 수화기 너머 여성은 계속 나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썼다. “선생님, 전화를 드린 곳은 ‘○○ 출판사’인데요. 지난번 투고한 원고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출판사? 원고 투고? 아, 그제야 생각났다. 한 달 전쯤인가 보다.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다 우연히 원고 모집 광고를 본 적 있다. 수필을 공모한다는 어느 출판사의 광고였다. 분량은 원고지 20매 내외. 만만했다. 마침 써놓은 글도 있겠다, 적혀있는 메일로 곧장 보냈다. 그리곤 한동안 잊고 지냈다. 가물거리는 기억을 헤집었다. 그러고 보니 한 달 뒤쯤 당선작을 발표한다는 것 같기도 했다.

전화를 건 여직원은 내가 보낸 원고가 채택됐다고 알렸다. ‘채택’은 당선과는 성격이 달랐다. 쉽게 말해 상금 유무의 차이였다. 당선작에는 소정의 상금이 지급됐고, 채택 작품은 빵원. 대신, 자사가 발간하는 월간지에 실릴 기회를 준다고 했다. 상금은 없다는 말에 맥은 빠졌지만, 월간지에 실린다는 게 어딘가. 내가 쓴 글이 세상 사람들에게 읽힌다니. 그것도 공짜로.

출판사 직원의 안내를 들으며 창문 밖을 내다봤다. 도심의 도로는 평일 한낮에도 차로 붐볐다. 근처에서 접촉사고가 났나 싶었다. 대로 복판에서 택시 기사와 오토바이 배달 기사가 핏대를 세우며 바득바득 싸웠다. 여차하면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이라할 태세였다. 덕분에 왕복 8차선 대로에 선 차들은 옴짝달싹 못했다.

여기저기서 빵빵대는 경적에 도로는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창문을 열고 소리치는 운전자들의 화난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불협화음을 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저기요, 지금 버스 안이라 전화를 길게 할 상황이 안 됩니다. 이따 내려서 제가 전화를 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양해를 구했고, 출판사 직원은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도로 사정은 금방 호전될 것 같진 않았다. 그사이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했다. 경찰관 두 명이 차에서 내려 두 기사를 떼어 놓았다. 잠시 후, 택시와 오토바이는 슬금슬금 갓길로 빠졌고, 꽉 막혔던 도로는 차츰 숨통이 트였다. 한여름 매미 소리만큼이나 끈질기게 울리던 경적도 서서히 잠잠해졌다.


그때 나는 병원에 가던 길이었다. 만성 피로를 달고 다녀서인지, 요 며칠 과음에 시달려선지 두통이 심해졌다. 마포역에서 내려 한두 번 방문한 적 있던 정신건강 의학과를 찾았다. 병원은 2층에 있었고, 내부는 한산했다. 대기자는 둘 뿐이었다. 접수를 마치고 긴 소파 한쪽에 기대앉았다. 잠자코 정면에 켜진 TV를 보며 순서를 기다렸다. 브라운관 안에서는 한때 시청률이 높았던 종편 드라마가 연속 재방송되고 있었다.

잠시 후, 나보다 먼저 온 두 사람이 함께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이로 보나, 조용히 나누던 대화를 들어보나 모녀지간처럼 보였다. 하지만 딸이 아파서 왔는지, 어머니가 아파서 왔는진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진료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먼저 나오는 아주머니 얼굴은 초췌했고, 뒤따라 나온 아가씨도 수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둘 중에 누가 환자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둘 다 환자였을지도. 간호사는 “김민아 씨. 처방전 나왔습니다. 3,700원이요.” 그제야 환자가 누구인 줄 알아차렸다. 아가씨는 이십 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어디가 불편해 이 시간에 어머니와 정신과를 찾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처방전을 받아 드는 얼굴에는 우환 가득한 표정이었다.


‘딩동’ 전광판에 내 이름이 뜨면서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음성 메시지가 나왔다. 모녀는 병원 밖으로 나갔고, 나는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원래 정신과 의사는 예민하다고 하던데. 이 사람은 좀 다른가. 하긴 무뚝뚝한 의사도 있겠지. 사람 성격은 천양지차이니까, 하고 생각하며 의자에 앉았다.

“지난번에도 두통 때문에 오셨는데, 오늘도 같은 증상인가요?” 하얀 가운 오른쪽 가슴에는 전문의와 원장 이름이 순서대로 새겨져 있었다. 이름이 새겨진 가운을 멍하니 보다가 하마터면 의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못 들을 뻔했다.


“아 네. 머리 아픈 건 전보다는 덜해졌는데요. 대신 피로감과 무력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일도 잘 안되고 그저 만사가 귀찮습니다.”


여느 의사들처럼 그 역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런 말은 나도 할 줄 안다고. 이런 돌팔이 의사 놈들 같으니라고. 원장은 나더러 요즘 과로했거나 무슨 걱정거리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양옆으로 가로저었다. 그러면서 눈으로 쏘아보듯 물었다.


‘의사 양반. 난 과로를 하지도 않았고, 심적으로 스트레스받는 일도 없었다고. 자, 그럼 지금 내 상태가 왜 이런 줄 알아맞혀 보라고. 만약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당신은 의사가 아니라 돌팔이야!’

그는 나더러 ‘선생님’이라고 했다. 30분 전 전화를 건 출판사 여직원도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이 나이를 먹으면 ‘선생님’이 자연스러운 호칭이 되는 걸까. 그런 건가? 난 내 나이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진 않았다고 여기고 싶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찰떡같이 여겼다.


그는 진료기록 PC에 자판으로 무언가를 입력하더니 조곤조곤 설명했다. 그는 내 불안정한 심신 상태가 갱년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남성도 여성에 비해 덜하긴 해도, 갱년기를 겪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뉴스인지 어디선지 인지 그런 기사를 본 것 같기도 했다.


의사처럼 보이기 시작한 원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그에 따르면 갱년기 남성의 80%가 만성 피로감에 시달린다. 피로감을 이기기 위해 진한 커피를 자주 마시고, 대개 술에 의지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점점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맞다. 언제부터인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와 비례해 밤중이나 새벽에 깨 화장실을 가는 횟수도 늘었다. 술이야 두말하면 잔소리고. 아예 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마치 알코올 중독 전 단계처럼.

의사 말로는, 그럴수록 갱년기 상태는 악화한다고 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신감도 줄어든다고.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첩첩산중이었다. 걱정과 근심이 고비 사막의 알타이산맥을 따라 쌓여가는 듯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없던 병도 생길 것만 같았다.

대략적인 설명이 끝났을 때,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아까완 달리 약간은 애처로움이 묻어있는 말투로. 그는 아직 약물치료를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약이라면 질색이니까. 대신 주기적으로 호르몬 수치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원장은 유산소 운동과 독서를 권했다. 규칙적인 운동은 신경세포에서 생산되는 단백질 성분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나. 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나. 독서 역시 정서적 안정을 줄 수 있는 취미생활이라고 소개했다. 하나 더, 시간이 날 때마다 햇빛 아래서 산책까지.


병원 문을 나올 때, 아까 들어올 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었다. 뭐랄까, 답답함이 탁 풀린 것 같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 원장은 돌팔이가 아니라 ‘의사 선생님’인 걸로.

*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인용.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꿈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을 처절하게 그려냈다. 인간이 욕망과 갈등을 파헤친 이 작품은 초연 직후인 194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교양과 저농의 굴레를 쓴 채 자신의 뜨거운 피를 억누르고 있던 블랑쉬. 뉴올리언스에 사는 동생 스텔러를 찾아갔다가 제부(弟夫) 스탠리에게 모욕당하고, 겁탈당한 뒤 욕정을 폭발한다. 하지만 허물어지는 자신을 끝내 감당하지 못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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