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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재민 Sep 01. 2024

잃어버린 꿈을 찾아주는 흥신소

달래와 달래

달래는 오전 8시 눈을 떴다. 휴일이라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약속이 있었다. 상철의 딸 달래와 놀아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상철이 휴일에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탓에 온종일 할머니와 집에 있어야 하는 그의 딸이 애처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어른 달래는 아이 달래와 일일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상철은 오전 9시까지 달래의 집에 그의 딸을 데려다주고 식당에 나가기로 했다. 

“달래야, 달래 이모 말 잘 듣고, 손 꼭 잡고 다녀.”

“알았어요, 알았어. 아빠, 그 얘기 오늘만 열 번도 더 했다고.”

달래가 눈을 찌푸리며 말하자 상철은 씩 웃으면서 딸의 볼을 살짝 꼬집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엄마 없이 자라는 딸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미안하고 허전했다. 그렇다고 재혼을 생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밥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다 달래가 계속 걸렸기 때문이다. 상철은 그저 달래가 건강하게 자라기만 바랐다. 

“아빠, 봐봐. 할머니가 머리 예쁘게 땋아주셨어. 공주 머리핀도 하고 가야지.”

달래는 모처럼 놀러 나간다는 마음에 한껏 들떠 있었다. 상철의 어머니는 손녀의 상기된 볼을 어루만지며 신신당부했다. 

“내 새끼, 막 뛰어다니지 말고, 이상한 거 먹지도 말고, 알았지?”

“아이참. 할머니도 아빠랑 똑같네, 똑같아. 걱정하지 마요. 나도 다 컸다고!”

달래는 애교스럽게 입을 삐죽 내밀며 할머니에게 안겼다. 할머니는 그런 달래를 살포시 안았다. 

“오냐, 내 새끼. 잘 놀다 오너라.”

달래는 캐릭터 모양이 새겨진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상철도 운동화를 신고 달래의 손을 잡고 현관을 나섰다. 신난 달래가 “고고씽~ 출발”하고 외쳤다. 상철은 달래를 뒷자리에 앉히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상철의 집에서 달래가 사는 곳까지는 차로 20분 정도 걸렸다. 달래는 상철이 출발한다는 카톡 문자메시지를 받고 화장을 서둘렀다. 달래는 달래를 데리고 어린이 대공원에 가기로 했다.      

달래를 알아본 어린 달래는 환하게 웃으면서 배꼽 인사를 했다. 상철은 딸의 가방을 달래에게 건네며 잘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선배, 걱정일랑 붙들어 매고, 가서 돈이나 많이 벌어요. 달래야, 고모 차로 갈까?”

“고모가 뭐야, 달래야 언니라고 불러, 언니.”

어린 달래는 ‘언니’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른더러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는 아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뭐라는 소리야, 내가 나이가 몇 갠데, 언니라뇨? 애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어.”

“그럼, 시집도 안 간 아가씨한테 아줌마라고 해? 언니가 호칭 상 어울린다구.”

상철의 말에 달래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했다. 사실 고모나 아줌마보다는 ‘언니’라는 소리가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어린 달래는 눈치를 챘다는 듯이 어른 달래의 손을 힘차게 잡으며 이렇게 외쳤다. 

“언니, 우리 얼른 가요.”

“…”

어린 달래의 능청스러운 행동에 상철과 달래는 순간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상철은 이내 “얼른 가잖아. 자, 출발”하고 진달래의 등을 떠밀었다.

“응? 아, 그래. 가자, 달래야.”

“네. 아빠 다녀올게. 이따 만나.”

상철은 딸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차로 돌아갔고, 두 명의 달래는 반대편 주차장으로 향했다. 정달래를 차에 태운 진달래는 시동을 걸고 나서 네이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었다. 어린이 대공원까지는 30분이 걸린다고 떴다. 

“손님, 출발하겠습니다. 안전벨트를 매주세요. 조수석 뒤편에 비닐봉지 열어보면 간식도 있으니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드시고요.”

“네, 예쁜 언니 기사님. 안전 운전 부탁드립니다.”

“언니 기사님? 하하하!”

달래는 재치 넘치는 어린 달래의 말에 크게 웃으며 핸들을 돌렸다. 어린이 대공원까지 가는 길은 수월했다. 차도 막히지 않고, 신호도 잘 받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대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진달래는 뒷좌석 문을 열어 정달래가 내리는 걸 도왔다. 정달래는 한 손에는 오렌지 맛 음료를, 다른 손에는 소보로 빵을 들고 내렸다. 입에는 먹던 빵을 오물거리며. 아침 햇살이 따사롭게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달래와 달래는 손을 꼭 잡은 채 동요를 흥얼거리며 놀이공원까지 걸어갔다.

“달래야? 우리 뭐부터 탈까?”

“음. 난 범퍼카 좋아해요.”

“범퍼카? 오케이, 좋아.”

달래는 매표소에서 자유 이용권 두 장을 사 자신과 달래의 손목에 찼다. 그리고 범퍼카 탑승장으로 향했다. 놀이동산은 예상외로 한산했다. 줄이 길지 않아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순서가 찾아왔다. 두 사람은 빨간색이 칠해진 범퍼카에 같이 탔다. 

“언니, 여기 올 땐 언니가 운전해 줬으니까, 여기선 제가 태워 줄게요.”

“괜찮겠어?”

“아이, 그럼요.”

어린 달래가 운전석에 앉고, 어른 달래는 조수석에 앉았다. 곧이어 출발을 알리는 신호음이 들렸다. 여기저기서 바닥을 쓰는 소리와 함께 범퍼카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차와 차들이 부딪칠 때마다 고무 타이어가 완충 작용을 했다. 어린 달래는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다른 차들과 충돌을 피하려고 애썼다. 얼굴 한 쪽은 꽤나 진지했고, 다른 한 쪽은 세상 행복해 보였다. 옆에서 그런 달래를 바라보는 진달래는 마음 한쪽이 흐뭇했고, 다른 한쪽은 찡했다.

범퍼카를 세 번이나 탄 두 사람은 공중에서 돌아가는 회전 그네를 한 번 탔고, 마지막으로 발판이 없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스릴을 만끽했다. 놀이기구를 타고 하늘을 달리는 어린 달래는 롤러코스터가 속도를 낼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땅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이들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었다.        

“언니, 이거 너무 재밌어요. 정말 신나요.”

“나도 정말 재밌다. 달래랑 같이 타니까 더 재밌다.”

다섯 번의 이용권을 사용한 두 사람은 푸드 코트로 이동했다. 점심을 먹기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아침도 먹지 않고 놀이기구를 타면서 힘을 써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간 두 사람은 키오스크로 자장면과 돈가스를 주문했다. 음식은 바로 나왔고, 둘은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먹는 동안은 무슨 말도 필요 없었다. 어른 달래가 이따금 어린 달래의 입가에 묻은 자장소스를 휴지로 닦아주곤 했을 뿐. 이른 점심을 먹은 두 사람은 놀이공원 근처에 있는 동물원 구경을 가기로 했다. 


*


놀이공원에서 동물원까지는 짧지 않은 거리였다. 하지만 서로 손을 꼭잡은 달래와 달래는 엄마와 딸처럼 다정하게 걸으며 동물원 구경을 하러 갔다. 동물원에는 놀이동산보다 많은 관람객이 있었다.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많은 어른과 가족 단위 관람객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사진도 찍었다. 달래와 달래도 무리 속에 끼여 구경을 시작했다. 엉덩이 빨간 돼지 꼬리 원숭이, 황갈색 표범과 재규어, 나무 잘 타는 반달가슴곰, 코는 뾰족하고 귀는 긴 자칼, 널찍한 궁둥이와 돌기둥 같은 다리를 가진 아시아코끼리 등. 어린 달래는 처음 본 동물의 모습과 표정을 보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얼굴 한쪽에는 응달이 졌다. 진달래는 썩 표정이 좋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나무 그늘 밑 벤치로 데려갔다.

“달래야, 어디 불편하니? 다리 아파?”

“아뇨. 그건 아니고‥….”

진달래는 말을 잇지 못하는 어린 달래를 보며 근심 어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표정이 그래.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

달래 언니의 걱정에 어린 달래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실은...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이 불쌍하게 보여서요. 엄마랑 아빠도 없이 혼자 있는 곰이며 사자가 무척 슬퍼 보여서요. 나처럼.”

진달래는 순간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어린 달래를 꼭 안았다. 그리고 ‘그랬구나, 달래가 그런 마음이 들었구나’ 하며 등을 토닥거렸다. 

“달래야, 넌 혼자가 아니잖아. 달래를 사랑하는 아빠도 있고, 할머니도 있고, 여기 엄마가 같은 언니도 있잖아.” 

달래 품에 안긴 달래는 마치 엄마 품처럼 따듯한 기운을 느꼈다. 어느새 오후 4시를 넘었다. 벤치에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돌아갈 준비를 했다. 주차장으로 가던 도중, 달래는 어린 달래의 다리가 아파 보였는지 등에 업었다. 어린 달래는 달래 언니 등의 포근함을 느끼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달래 언니가 ‘엄마 같은 언니’가 아니라 ‘진짜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 살짝 잠든 달래는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을 떴다. 단 꿈같은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는 듯 눈을 비비며. 진달래는 시동을 걸고 상철의 식당을 향해 차를 몰았다. 상철은 저녁은 식당에 와서 먹고 가라고 미리 문자를 보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녁놀이 달래가 타고 있는 차의 등허리를 붉게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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