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육
일본군이 가져온 고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고기를 가져온 이시이는 넉넉한 양을 준비했다고 했지만, 조선인들의 주린 배를 채우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거라도 먹어야 했다. 먹어야지 살 수 있었고, 살아남아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기에.
순팔은 킁킁거리며 접시에 담긴 고기 냄새를 맡았다.
“아따, 이 고래는 뭘 먹고 디져뿐나 냄새가 심하구만.”
“죽은 지가 오래돼서 그런게 아닐까?”
동영이 대꾸했지만, 순팔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담양 댁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순팔에게 한 마디 던졌다.
“묵기 싫으믄 내나 줘라. 애나 더 주게!”
담양 댁 옆에는 순자가 낳은 아이가 맑은 눈동자를 끔벅거리며 접시에 담긴 고기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아니요! 그럴순 읍지요. 뭐라도 먹고 살아야지. 아이고 맛있으라.”
순팔은 표정을 확 바꿔 손으로 수육 두 점을 집어 입어 넣고 쩝쩝거렸다. 바닷물에 절여서 그런가, 찝찔한 맛이 혀를 자극하며 입안에서 맴돌았다. 고기가 질기다며 한참을 씹다가 뱉는 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한참 만에 떠내려온 고래고기로 허기를 달랜 이들은 다시 노역장에 나갔다. 활주로 공사는 막바지에 달했으나, 하루걸러 만큼 폭우가 내리면서 공정률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동영은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며 공허함을 느꼈다.
‘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언제쯤이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 돌아갈 순 있을까.’
순팔은 곡괭이 두 자루를 가져다 동영에게 하나를 던지듯 건네주며 손가락으로 땅을 파라는 시늉을 했다. 동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그들이 땅을 몇 번 파고 찍었을 때,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하늘에서 후드득 빗줄기가 쏟아졌다. 우르르 쾅쾅거리며 천둥이 몰아쳤고, 대낮에도 어두운 섬에 번개가 여러 번 번쩍였다. 이토는 쏟아지는 비를 피해 뛰어다니며 조선인들에게 철수를 명령했다. 이토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조선인 노역자들은 이미 산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화가 치민 이토는 조선인들의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빠가야로! 미개한 죠센징들 같으니라고!”
노역자들은 이토의 역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례로 동굴 안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천지개벽하듯 비는 종일 내렸다. 동굴 안에 모인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었다. 동영은 순자의 아들을 업고 동굴 안쪽과 바깥쪽을 천천히 돌아다녔고, 담양 댁은 동굴 입구에 앉아 세차게 떨어지는 빗줄기를 청승맞게 지켜보고 있었다. 동굴 밖에는 어린아이들과 노인들이 씹다 버린 고기 조각이 빗물에 퉁퉁 불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비는 저녁까지 내렸고, 사람들은 점심에 먹다 남은 고래고기를 마저 먹었다.
사카이는 방에서 홀로 책을 보고 있었다. 동경 육군사관학교 시절 읽은 심리전과 관련 서적이었다. 책을 읽던 사카이 입가에 묘한 미소가 흘렀다. 포로들 사이 신뢰를 깨뜨려 내부 분열을 유도한다는 대목이었다. 특히 생존 욕구를 자극해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법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방법에는 기본적인 자아도, 윤리도 허락하지 않았다. 오직, 지배와 피지배만이 존재할 뿐.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토와 이시이가 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할 말이 있으면 들어오게.”
그제야 두 사람은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인가?”
“조선인 노역자들에게 배급한 음식과 관련해 보고 드리려고 합니다.”
“오, 고래고기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대좌, 그 고기가 실은 고래가 아니라….”
“뭣이? 고래고기가 아니라니? 그럼 무슨 고기란 말인가? 그렇게 크고 맛 좋은 생선이 바다에 있단 말인가?”
사카이가 놀란 눈으로 이토와 이시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세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사카이의 눈매가 의심의 눈초리로 바뀌자 이토가 입을 뗐다.
“그 고기는…그건, 인육입니다, 대좌.”
“뭐라? 인육? 사람 고기라는 말이냐?”
“그, 그렇습니다.”
사카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고기가 인육이었다는 사실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자신에게조차 보고하지 않은 이토와 이시이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토와 이시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럼 오늘 먹은 건 누구의 인육이란 말인가?”
사카이는 진정했던 속을 억지로 가라앉히며 물었다.
“두 명의 것인데, 하나는 박팔봉이라고, 엊그제 활주로 공사 중에 절벽으로 떨어져 자살한 자입니다.”
박팔봉은 이틀 전 작업 도중 신변을 비관하며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절벽 아래는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울 만큼 험했고, 파도가 심해 시신을 수습할 수 없었다. 사카이도 그에 대한 보고를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박팔봉의 시신은 파도에 쓸려 해안가로 밀려왔고, 야간 순찰을 돌던 일본군 둘이 발견했다.
“그럼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
이토는 박팔봉에 대한 보고 때와 달리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가 먹은 고기가 누구의 것이냔 말이다!”
이토는 쥐구멍이라도 찾는 심정에 모기소리로 ‘순자’라고 짧게 말했다.
“순자? 내가 아는 그 순자를 말하는 것이냐?”
사카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토에게 군홧발을 날렸다. 이토는 퍽, 소리와 함께 의자 옆으로 고꾸라졌다. 사카이는 쓰러진 이토의 멱살을 잡아채며 주먹으로 얼굴을 연달아 후려쳤다.
“네 놈이 어떻게! 니가 어찌 나에게 이런 수치와 모욕을 준 것이냐.”
이토의 얼굴에는 검붉은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옆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이시이가 사카이를 말리며 달랬다.
“대좌, 고정하십시오. 저희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일주일도 안 지나 아사자가 생기고, 저희도 굶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대좌님도 모두.”
이시이의 떨리는 절규에 사카이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냉정해야 했다. 감정에 휘둘렸다간 자멸할 수 있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사카이는 전투복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코피를 흘리던 이토가 바지에서 주섬주섬 성냥을 꺼내 불을 붙였다. 사카이는 자리에 앉아 담배 한 모금을 깊게 빨아들였다가 한숨과 함께 길게 내쉬었다. 허연 담배 연기가 그가 읽던 책장 위를 쓸 듯이 지나갔다.
“그래, 지금이 바로 이 기술을 쓸 때야. 그렇지 않으면 굶주림이 극에 달한 저들의 반항을 통제할 방법이 없어.”
사카이는 책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동영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을 뒤척이다 일어나 동굴 밖으로 나와 오줌을 눴다. 그러곤 모래사장에 앉아 멍하니 밤바다를 바라봤다. 고요하고 적막한 섬, 이곳에 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도, 끌려온 노역자도 정확히 얼마나 이곳에 머물렀는지 계산하지 못했다. 대략 수개월이 지났다고 짐작할 따름이었다. 조용한 바다에는 이따금 잔잔한 파도가 밀려왔다.
“안 자고 나와서 뭔 청승이여?”
순팔이 동영의 어깨를 툭 치고 앉았다. 동영은 희미한 미소를 흘린 채 아무말 없이 다시 바다를 응시했다.
“그냥, 잠이 안 와서.”
순팔은 허리춤을 뒤적거렸다. 꼬깃꼬깃해진 무명천 조각이 나왔고, 그 안에는 담배꽁초 여남은 개가 싸여있었다.
“그건 담배 아니오? 어디서 났소?”
“사카이 대좌가 피우고 버린 건 몰래 주웠지. 장초가 꽤 여러 개여. 제법 피울 만혀.”
순팔은 부싯돌을 비벼 담배에 불을 붙였다.
“자네도 하나 줄까?”
동영은 괜찮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잠이 안올 때 이렇게 몰래 나와 피우는 담배맛도 그럭저럭 괜찮어.”
순팔은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내쉬었다. 하얀 담배 연기가 바다 쪽으로 길게 흘러나가다가 사방에 흩어졌다. 동영은 구수한 담배 연기에 순간 흡연 충동이 일었지만 참기로 했다.
“동영이, 근데 말여. 아까 먹은 고래고기있잖어? 어땠는가?”
순팔은 입에 문 담배를 뻐끔거리면 동영에게 물었다.
“뭣이 어때?”
“맛이 괜찮더냐고. 나는 웬지 영 찝찝해서리….”
“아까는 잘 맛 먹더니만. 이제와서 뭐가 찝찝하다는 거요?”
동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순팔을 바라보면 되물었다.
“배가 징하게 고프니 먹긴 먹었는디, 지난번 고기랑 맛이 달랐어.”
동영은 순팔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역시 배고픔이 극에 달해 무슨 맛인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먹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냄새도 고약하고 말이지.”
“거야, 고래란 녀석 자체가 냄새가 나는 동물 아니오.”
“아녀. 그런 냄새가 아녀. 뭐시냐, 묘한 냄새가 풍기더라고. 시체 썩은 냄새같은.”
“뭐? 시체?”
동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순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내 소시적에 동네에서 죽은 노인네가 있었는디, 혼자 살던 양반이라 며칠 만에 발견됐거든. 근디 그 집 근처에서 냄새가 얼마나 진동을 하던지. 오래전 겪은 일인 디도 금방 맡은 것처럼 생생하대. 아까 그 고기를 먹을 때 그 냄시가 나더라고.”
“무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대. 그럼 저치들이 우리한테 사람고기를 멕였다는겨 시방?”
순팔은 흥분한 동영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확실한 건 아니여, 그렇다는 야그지.”
“순팔이 자네가 잘못 안 것일 거이네. 암만 극악무도한 놈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저들도 사람인디 워티기 인육을 먹였겄나?”
“그렇겄지? 내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 거겄지? 맛이 그렇고, 냄새도 요상해서 해본 말이네. 너무 신경 쓰진 말어.”
순팔은 필터 앞까지 타들어가던 담배를 마저 피운 뒤 바다를 향해 던졌다. 그러곤 엉덩이에 뭍은 모래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은 날이 음청 더울라나 보다. 들어가서 다만 얼마라도 눈 좀 붙여야지. 자네도 언능 들어오더라고.”
동굴로 향하는 순팔의 뒷모습을 보며 동영도 따라 일어섰다.
“암만 그려도 그렇지. 설마, 사람 고기를 먹으라고 줬겄어. 말도 안되는 소리여.”
동영은 혼잣말을 하며 순팔의 뒤를 따랐다. 동영의 등 뒤로 별똥별 하나가 밤하늘을 길게 가로질러 수평선 너머로 뚝 떨어졌다.
동영은 선잠이 들었다. 꿈에서는 그리운 고향 동네 모습이 나타났다.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은 주재소 옥상에 붉은색 원이 선명한 일장기가 바람에 펄럭였다. 그 아래 출입구 양쪽에는 두 명의 일경(日警)이 경비를 섰고, 주민들은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거리를 지나쳤다. 전차가 들어왔는지 주재소 앞길을 따라 철로가 놓여 있고, 아이 손을 잡은 부녀자와 노인을 부축하며 걷는 아낙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동영은 문득 기괴함이 들었다. 거리에는 온통 나이든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뿐, 젊은 사내들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기 때문이다. 동영은 동네 장정들이 자신처럼 징용으로 끌려갔다고 생각했다.
“사내들 씨를 말렸군!”
산허리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동영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곤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했다. 마치 투명인간처럼. 동영은 주재소 옆길을 지나 철길을 따라 자신이 살던 집으로 향했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동영의 심장은 요동쳤다. 마침내 집에 다다랐을 때, 동영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아니, 이건!”
동영은 집 앞에 걸린 빨랫줄에 걸린 옷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건 바로 자신이 어릴 적 입은 옷가지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부엌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한 여인이 앞치마 바람으로 나왔다. 동영의 어머니였다.
‘아이구, 엄니!’
동영이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려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울타리 밖에서 안마당에 있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봐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마른 수건과 어린 동영의 옷을 하나둘 걷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고 오줌을 싸고, 흙구덩이에서 딩굴고 오니께 빨래가 쉴 날이 읍써. 이눔 자식, 어디 들어오기만 해봐. 아주 그냥 볼기짝을 때려줘야지.”
어머니 얼굴은 발갛게 상기돼 있었지만, 악의는 없었다. 대신 모성의 애틋함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보던 동영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니, 나 여기 있소. 이래 커서 엄니 보려고 왔는디. 왜 못보는 것이요.”
동영은 제자리에 꿇어앉아 주먹쥔 손을 땅에 내리쳤다. 한숨과 한탄 섞인 울분을 감추지 못하던 그는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켰다.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그는 고향 집과 어머니를 뒤로하고 돌아섰다. 마을 어귀를 나와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옛 우물이 보였다. 동영이 어릴 적 또래들과 놀던 곳인데, 한동안 우물이 말라 판자로 입구를 막아놓았다. 그런데 다시 물이 나오는지 두레박이 우물가에 걸려 있는 게 보였다. 동영은 물이나 한잔 마실 요량으로 우물 근처로 가 두레박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도르래를 이용해 우물 안으로 두레박을 던졌다. 물을 길어 올리던 동영은 묵직한 무언가가 걸린 느낌이 들었다.
‘두레박에 돌덩이라도 들어갔나?’
동영이 힘껏 도르래를 당기자 두레박이 철렁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올려왔다. 밖으로 꺼낸 두레박 안을 본 동영은 까무라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두레박 안에 사람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세히 본 얼굴은 바로 순자였다.
‘아니, 죽은 순자가 어째 여기 있는가?’
동영은 소스라치며 놀라며 잠에서 깼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