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미스트 Aug 04. 2023

도심형 약수터, 스벅으로 조깅하기

보험 대신 달리기

   아침 6시 22분이다.

   눈을 떠보니 세상 조용하다. 그런데 8분이 지나면 윗집 알람 소리에 이어 윗집 부부 각각의 소변보는 소리와 변기뚜껑 쾅 내리는 소리 그리고 샤워하는 소리를 연이어 들어야 한다. (이런 사생활까지 잘 알고 있는 이웃사촌인데 서로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에라이, 나가자."

   조용히 물 한잔 마시고, 냉장고에서 사과하나를 꺼내고 텀블러를 겨드랑이에 끼운 채 밖으로 살금살금 나간다.


   기온은 24도로 조금은 선선하게 느껴진다.

   아침 햇빛을 맞으며 세상 못생긴 표정으로 사과를 물어뜯는다. 그리고 오른손에 텀블러를 쥐고 나만의 동네 약수터, 스타벅스로 천천히 달린다.



   스벅은 아침 7시부터 개장하는 도심형 약수터다.

   이른 평일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약수(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몇몇 도보 출근자들이 들락거리고, 드라이브 스루에서 약수를 떠가려는 차량들이 줄 서 있고, 몇몇 테이블에는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예닐곱명의 중년 남녀들이 활기찬 모습으로 들어온다.

   복장으로 추정하건대 어느 러닝 동호회에서 이른 아침부터 한바탕 달리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아주 짧은 쇼츠에 나시 차림이었는데 다들 하나같이 몸에 군살 없이 탄탄해 보였다. 햇빛에 멋지게 그을린 피부에, 스트레스라곤 들숨과 날숨으로 모두 씻어낸 표정과 목소리였다.


   아침 7시에 벌써 운동을 마무리하다니.

   멋진 사람들이다. 다른 운동도 아니고 노잼 달리기라니.


   노잼이지만, 달리기는 매력이 있다.

   운동화 한 켤레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다. 그리고 모든 운동의 기본이다. 어떤 운동이든 기초체력이 필요하고, 이 체력을 키우는데 달리기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하고 있는 느린 조깅(존투 트레이닝)은 더더욱 그렇다.


   달리기를 마치며 몰아쉬는 가쁜 숨과 심장박동 그리고 날숨에 모두 뱉어버린 걱정과 스트레스,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운동이다.



   요즘 아들과 오전에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아들은 코스 중간에 있는 오르막 직선주로를 달릴 때, 전에는 중간에 한번 쉬었다 가야 했는데, 엊그제 처음으로 쉬지 않고 꼭대기까지 달렸다.


   이 녀석 체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두 번째 오르막 달리기 코스를 마치고 마무리 걷기를 시작하려는데 아들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힘든데, 재미있다."


   땀범벅에 가쁜 숨을 몰아쉬지만, 성취감을 한가득 느끼는 것 같았다. 집돌이 아들이 저런 말을 하다니 정말 신기했다.



   학창 시절에 했던 오래 달리기가 생각났다.

   몇 분 몇 초 이내에 들어오면 A, 그다음 어느 시점은 B, C..로 등급을 나눴다. 그리고 점수로 환산되어 체육성적에 반영되었다.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였다.


   기록에 따라 '너는 B고 너는 C야'가 아니라 함께 달리면서 그리고 기록에 관계없이 끝까지 완주하며 얻는 성취감과 달리는 즐거움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아마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달리기의 즐거움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암보험이나 정기보험 대신에 러닝화를 사서 매일 달린다고 한다. 그게 더 실리적이라는 이유란다. 하긴 아프고 나서 치료비 받는 것보다, 예방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보험이 있다고 해서 병을 막아주는 것은 아니니까.


   느리게 달리기는 쉽고, 간단하고, 어렵지 않다.

   최대한 천천히 달리기만 하면 된다. 달리는 행위 하나만으로도 온몸이 운동을 한다. 게다가 들숨과 날숨으로 내 속에 있던 어두운 마음도 모두 씻어낼 수도 있다.


   어, 벌써 7시 42분이다.

   와이프가 마실 약수 한통 받아서, 얼른 아침준비 하러 달려가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