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쓰레기"인가? 성경 II
"국민 쓰레기 남"자가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고 여자 주인공을 살해하죠. 그러나 여자 주인공은 10년 전으로 타임슬립을 합니다. 다시 10년을 살면서 자신의 남편과 불륜을 저지른 여자에게 복수하는 내용이죠. "내 남편과 결혼해 줘"라고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라네요.
성경에서 가장 칭송받는 왕이 다윗(David)입니다. 하느님께 가장 신실했던 왕으로 칭송받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시편을 쓰고 노래한 왕이라고 하고요. 그러나 다윗왕도 "쓰레기 짓"을 합니다. 그가 한 "쓰레기 짓"만 떼어놓고 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어느 날 다윗은 옥상에 올라가 자신의 도시를 둘러봅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한눈에 반합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밧세바를 왕궁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잠자리를 합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밧세바는 다윗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립니다.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전장으로부터 불러들입니다. 전장에서 돌아와 휴가를 가지고 며칠간 푹 쉬라고 휴가를 권고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 충실한 장군이었던 우리야는 다윗의 권고를 거절합니다. 군인이 전쟁 중간에 돌아와 휴가를 지내는 것은 부정한 일이니 전쟁이 끝난 후에 돌아와 휴식을 취하겠다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야의 말이 맞죠. 지휘관이 떠난 전쟁터에서 어떤 군인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다윗은 애가 탑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우리야가 아내 밧세바와 잠자리를 해야 합니다. 다윗은 우리야에게 거듭 권고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궁내 도시에 머무는 동안에도 밧세바와 잠자리를 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화가 머리끝까지 납니다. 그리고 우리야를 전쟁의 최전선에 배치합니다. 그리고 우리야는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우다가 전사하죠.
어떠신가요? 성경에서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 다윗이 한 짓입니다.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고 진리를 기록한 책이라면 굳이 왜 "쓰레기 짓"을 한 얘기를 집어넣었을까요? "내 남편과 결혼해 줘"야 드라마니까 드라마로 보고 즐기면 그만이지만 다윗 왕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합니다.
일단 지금의 윤리적 기준을 벗겨내고 얘기를 탐색해 봅시다. 인간 윤리도 시대에 따라서 발전합니다. 과거에는 함무라비 법전처럼 도둑질 한 자는 손을 절단하는 게 당연시되었던 규정일지는 모르지만 요즘 도둑질을 했다고 손을 절단한다면 큰 일이라고 생각하겠죠? 과거에는 신분에 따라서 사람들이 차등이 매겨졌고 그것이 당연시되었겠지만 지금은 사람을 신분에 따라 가른다는 사실조차 이상하게 들릴 수 있죠.
아마도 당시 중동 지방에서는 '왕'이 자신의 백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일종의 norm (암묵적인 사회적 규범) 있었을 터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다윗 왕이 했던 (우리 입장에서) "쓰레기 짓"은 내 백성인 여자랑 잠자리를 했다고 해서, 그녀가 내 아이를 임신했다고 해서, 그리고 그래서 내가 마음대로 내 장군을 최전선으로 보내서 죽게 했다고 해서 그렇게 "쓰레기 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당시 중동 지방의 문화가 그랬으니까요.
성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합니다. 예언자 나단은 가서 다윗이 한 "쓰레기 짓"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자손 대대로 하느님께서 저주를 내리실 것이라고 겁박을 줍니다.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라고 지적을 하죠. 그리고 그 저주대로 정을 통했던 밧세바와의 첫 아이는 사망합니다. 다윗왕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와 속죄의 40일간 단식을 합니다. 그리고 밧세바가 다시 임신을 하는데, 임신하여 나은 아들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지혜의 왕 솔로몬입니다.
저는 Leonard Cohen의 Hallelujah라는 노래가 이 다윗 왕의 충동적 욕망, 사랑, 범죄 (우리야를 죽인), 그리고 속죄의 기간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슈렉"이라는 영화에서도 OST로 사용되었었는데요. 그 가사를 읽으면 다윗 왕의 심리를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Now I've heard there was a secret chord (난 비밀스러운 코드를 들었네)
That David played and it pleased the Lord (주를 기쁘게 하려 다윗이 연주하던 코드라네)
But you don't really care for music, do ya? (그러나 음악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네)
It goes like this, the fourth, the fifth (4도와 5도 화성은 이렇게 가더군)
The minor fall, the major lift (마이너 코드는 아래로, 메이저 코드는 위로)
The baffled king composing, "Hallelujah" (혼란스러운 왕은 "할렐루야"라고 작곡했네)
Verse 1, Hallelujah by Leonard Cohen
"비밀스러운 코드"는 상징입니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속마음이자 또한 음악의 화성(chord)을 말하는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죠. 다윗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성경의 시편을 작곡했다고 일컬어지는 음악과 작사에 뛰어난 왕이라고 불립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음악적으로 재능이 있었으나 그가 주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노래를 했지만 그가 마주한 상황 (밧세바와 간통, 아이를 임신, 자신의 장군을 죽인)이 얼마나 괴롭고 혼란스러운지를 뒤에 나오는 "혼란스러운 왕"(baffled king)이라는 표현이 정말 이게 기뻐서 하는 노래인지 의심스럽게 합니다.
Your faith was strong, but you needed proof (당신의 믿음은 강했으나, 증명이 필요했다네)
You saw her bathing on the roof (당신은 그녀가 옥상에서 목욕하는 광경을 보았지)
Her beauty in the moonlight overthrew ya (달빛 아래 그녀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혔다네)
She tied you to a kitchen chair (그녀는 부엌 의자로 당신을 묶었고)
She broke your throne and she cut your hair (그녀는 당신 왕좌를 부수고, 머리카락을 잘랐지)
And from your lips she drew the Hallelujah (그녀가 당신 입에서 할렐루야를 노래하게 했지)
Verse 2, Hallelujah by Leonard Cohen
영어로는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행위를 구분합니다. 사랑이야 다들 아시다시피 love 고요. "사랑에 빠지는 행위"는 infatu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말로는 구분되지 않지만 영어로는 구분합니다. infatuation을 love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죠. 다윗 왕은 사랑에 빠집(being infatuated) 니다. infatuation은 love와 달리 매혹적입니다. 달빛 아래 아름다움에 사로잡힙니다. infatuation은 의자에 묶이고, 왕좌가 부수어지고, 머리카락이 잘려도 끝없이 추구하고 싶습니다. 눈을 멀게 합니다.
노래는 한 편 infatuation에 사로잡힌 왕이 회개와 속죄의 단식을 하는 모습도 동시에 표현하는 합니다. 우리말로는 뭔지 모르겠는데 일종의 double entandre입니다. 회개와 속죄의 단식 기간에는 왕좌에서 내려와 재를 뒤집어쓰고 하는 것이거든요. 왕이든 종이든 똑같은 모습으로 머리도 짧게 깎고요. 그리고 (전통적으로 다윗 왕이 지었다고 하는) 시편을 노래합니다.
다윗 왕의 love story는 이렇습니다. 성경이 단지 윤리적/종교적인 죄와 회개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 의도였다면 다윗 왕의 "쓰레기 짓"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적지는 않았을 겁니다. 짧게 얘기하고 끝냈겠죠. 이를테면, 다윗 왕이 자신의 장군의 아내와 놀아났다. 주님(하느님)께서는 화가 나셨고, 다윗 왕을 벌주시려고 했다. 다윗 왕은 속죄의 회개를 하고 다시 아내와 잠자리에 들었으며 그렇게 솔로몬을 임신하게 되었다. 이렇게 세 문장 정도로 충분하잖아요.
그러면 성경은 왜 그랬을까요? 제가 지난번 말씀드린 것처럼 성경은 일종의 시와 같아서 다양한 삶의 행태를 상징적으로 은유적으로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저는 다윗 왕을 보면 꼭 저를 찾는 내담자 분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분들이 다윗왕처럼 패륜적인 죄를 저질렀다는 의미가 아니고요. 삶이라는 게,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윤리적/종교적으로 쉽게 단정 지어 생각할 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가끔 이런 문장을 인용합니다. 누가 얘기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잘 안 나요.
Life is complex, and love is complicated. 인생은 복잡하고, 사랑은 복잡 미묘하다. complex는 질서 정연한 복잡함을 말합니다. 잠실 종합 운동장을 영어로 하면 Jamsil Sports Complex 그러니까 운동에 관련된 시설들이 다양하게 모여있는 복잡함이죠. 반면 complicated는 질서 정연하지도 구성이 정리가 되어있지도 않습니다. 복잡 미묘하면서도 정리도 잘 안 되는 복잡함입니다.
사랑은 복잡 미묘하면서도 정리도 잘 안되고 하는 것이요. 성경이 다윗왕의 "쓰레기 짓"을 처음부터 상세하게 기록한 이유가 그런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요? 사랑뿐만 아니라 삶도 그렇게 복잡 미묘하고 정리도 잘 안되고 하는 거라서요. 그래서 Leonard Cohen이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나 봐요.
"Love is not a victory march" 사랑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라네
"It's cold and broken Hallelujah" 그러나 차갑고 부수어진 할렐루야라네
(저는 Damien Rice가 부른 Hallelujah를 제일 좋아합니다. 아래 링크를 걸었습니다.)
https://youtu.be/YIhZuVuiHtA? si=egi_N_CX47 sflpC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