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살 세계에는 팀 간 친선 매치라는 것이 있다. 말 그대로 서로 다른 팀끼리 일회성으로 만나서 경기하면서 승패를 겨루는 것인데, 정기 운동 때는 소속 팀에서 자체적으로 또 팀을 나눠 경기하다가 가끔 단비처럼 찾아오는 친선 매치는 진짜 적(?)이 생김으로써 승부욕을 불태우고 실력을 끌어올리는데 좋은 자극이 된다.
첫 친선 매치의 기회는 풋살 8개월 차이던 시절 혼성 풋살팀에서 활동할 당시에 찾아왔다. 키퍼를 할 때 몇 번의 슈퍼세이브를 하더니 골키퍼 포지션에 진지한 마음을 갖고 바로 골키퍼 장갑까지 살 정도로 풋살에 열정적인 H가 기회를 물고 왔다.
상대는 팀 민트(가명). M 언론사 소속 사내 동호회로, 창단된 지 얼마 안 된 신생 팀이었다. 전해 듣기로는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첫 여성 기자 풋살 대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이걸 계기로 언론사 내에서 수많은 여성 풋살 팀이 생겼다고 한다. 축구, 풋살을 좀 해봤다는 선배 기자, 팀장님이 감독, 코치를 자처하고 나섰고 낮에는 열심히 기사를 취재하고, 밤에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풋살장에 모일 정도로 열정이 매우 뜨겁다고.
“그 팀에는 풋살 한 지 7년 된 경력자가 있데”
무시무시한 소문이 들려왔다. '나는 이제 겨우 8개월 차인데?' 7년을 공을 찬 사람의 실력은 과연 어떨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미 시작 전부터 기세에 눌린 것 같았지만 그래도 풋살은 팀 스포츠여서 아무리 한 명이 날고 긴다고 해도 승패를 좌우할 수 없는 법. 결과는 해봐야 알 수 있는 법이니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성 회원들의 첫 친선 매치 소식에 조용하던 단톡방이 후끈거렸다. 하지만 선수 명단을 구성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평소에 열심히 정기 운동에 참여하는 회원 중에 일정이 되는 사람은 단 3명. 선수 부족으로 친선 매치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첫 모임 이후 거의 참석하지 않아 유령 회원에 가까웠던 여성 회원 2명이 용기를 내서 겨우 5명을 맞췄다. 그리고 풋살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H의 지인까지 섭외해서 주전 5명에 후보 1명이라는 명단이 꾸려졌다.
친선 매치까지 남은 시간은 단 2주였다. 기본기를 다지고, 합을 맞춰 보는 게 절실했다. 그러나 다들 본업이 따로 있는 바쁜 현생을 살다 보니 아무리 조율해도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은 단 하루 밖에 없었다. 다행히 팀 내 남성 회원들 중 몇 명이 코치 역할을 자처해 준 덕분에 처음이자 마지막 친선 매치 대비 연습이 나름 훈련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작전판까지 등장해서 열정적으로 쿼터별 포메이션에 대한 논의도 진행했다.
드디어 매치 당일이 밝았다. 매치는 저녁에 열리는데 그날 아침부터 왠지 모르게 엄청 떨렸다. 낮에 일할 때는 잠시 잊고 있다가, ‘아 맞다 오늘 저녁에 매치 있었지’ 자각한 순간부터 심장이 주체 못 하고 떨려왔다.
퇴근 후 상암동 풋살장에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는데 팀 민트가 도착했다. 다들 키가 크고 피지컬이 좋았다. 전력을 찬찬히 스캔하면서 눈은 본능적으로 7년 차 실력자부터 찾았다.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손흥민 유니폼을 입고 있는 No.7, 딱 봐도 에이스처럼 보였다.
경기 시작 전 나란히 마주 보고 서서 인사를 하고 악수를 했다.
“다치지 말고 경기합시다”
마치 승부에 연연하지 않는 척, 쿨한 척 말을 건넸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어도 활활 타는 승부욕으로 눈은 번뜩였다.
첫 번째 쿼터가 시작되었다. 나는 최후방 수비수인 픽소(PIXO)의 포지션을 맡았다. 공격 성향이 강해서 평소라면 계속 하프라인을 넘어갔을 텐데 이날만큼은 잔뜩 긴장한 채로 내 포지션을 지켰다.
우리 진영에서 코너킥을 하는데, 팀 민트의 에이스가 강하게 패스한 공이 상대 팀 선수의 발에 빗맞아 뒤로 흘렀고, 바로 역습 찬스가 되었다. 팀 민트가 라인을 올렸던 탓에 상대 진영에는 골키퍼 밖에 없었던 상황. 우리 팀 선수가 빠르게 뛰면서 공을 따라갔고, 1:1 상황에서 골키퍼를 제치고 빈 골대 사이로 정확하게 슈팅을 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터진 골이었다. 그 후 남은 7분 동안 오늘 인생 처음으로 풋살을 해보는 골키퍼 I가 우리 골대를 위협하는 슛을 연속 선방하면서 첫 쿼터는 1:0 스코어를 지켰다. 갑자기 없던 자신감이 차오르면서 ‘어? 우리가 이길 수도 있겠는데?’ 희망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이었던 걸까. 그 후 이어진 3개의 쿼터에서는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첫 쿼터에서 터진 골이 첫 골이자 마지막 골이 될 줄은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빈 공간을 찾아다니며 패스 길을 찾는 상대 팀과는 달리 우리는 키퍼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선수들이 우르르 공만 따라다녀서 포메이션이 계속 무너졌다. 피보 포지션을 맡은 사람은 열심히 수비에 가담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래도 최전방에 머물렀어야 했는데. 롱패스를 해서 최전방으로 뿌려줘도 그걸 받아서 마무리할 사람이 없었다.
제대로 된 유효 슈팅도 별로 없는 상태로 상대 팀에 질질 끌려다니다 결국 경기는 5:1 스코어로 마무리되었다. 수치스럽게도 팀 민트가 넣은 5골 중 2골은 내가 넣은 골이었다. 골대 앞 혼전 상황에서 열심히 수비한다고 발을 뻗었다가, 그게 걷어내기는커녕 굴절되어 그대로 골로 연결되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하다니. 미안하고 민망해서 쥐구멍으로 숨고 싶었다.
반년 넘게 풋살을 배우면서 슬슬 자신감이 차오르던 시기였는데 5:1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아직은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하구나.’ 다시 고개를 숙이고 겸손해지는 계기로 삼았다. 우리를 희생양 삼아 승리를 자축하고, 의기양양한 채로 기자 풋살대회에 참가할 팀 민트를 상상하니 뭔가 분했다. 실력을 끌어올려서 다음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꼭 이겨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