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가 아닌 목적에 집중한 진실탐구!
또 다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이다. '총균쇠'가 날린 홈런에 이어 '나와 세계'가 병살타를 쳤으니 이번 책은 나에게 앞으로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을 얼마나 왕성하게 읽을 수 있을지에 대해 '섹스의 진화'는 하나의 가늠좌가 될 수 있었다.
사실 처음 친구에게서 책을 빌리는 과정에서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의아함을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진화'라는 단어는 누구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에게 어울리는 단어였지만 '섹스'라는 단어는 그에게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그래서 책을 펼치기 전에는 과연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책장을 펼쳐보니 그 모든 것은 명확해졌다.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섹스'는 그 행위의 자체를 의미하지 않고 종족 그리고 나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다양한 동물 종에서 이루어지는 암수종의 동물이 가지는 포괄적인 행동과 그 결과 그리고 인과관계에 대한 부분이기 떄문이다. 그래서 한글로 구지 '섹스의 진화'라고 책의 제목을 지은 출판사 측에는 심심한 아쉬움의 마음이 있었다. 이건 왠지 모르게 자극적인 책 제목으로 인해서 판매 부수를 늘려보려는 행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편 영문제목은 아래와 같다.
Why Is Sex Fun?: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
영문 제목에서도 역시 Hooking을 위한 제목인 'Why Is Sex Fun?'이 있지만 이와 동시에 책의 본질적인 내용을 잘 설명하는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라는 부제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이건 아주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 책에서도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논리전개 방식은 일반적인듯 하면서도 강력하다.
1. 기존의 경직된 사고에 대한 질문
2. 기존 논리 해석
3. 오류 도출
4. 관찰 및 리서치를 통한 통찰 제시
5. 주관적이지만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 제공
이 책에서도 역시 그는 총균쇠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사이트를 전해준다. 특히 그가 힘주어 글을 전개하는 부분은 단연 4번이다. 그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전개되는 많은 동물들의 행동 및 진화의 흔적에 대해서 수 많은 책과 논문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관찰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아간다. 그런 부분들에서 이 책은 아주 초고속으로 읽혀진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가 꽤 오랜 시간을 직접 보내고 관찰했던 뉴기니에 대한 이야기나 호주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많이 나온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에서 많은 종의 동물들이 왜 자식을 만들기 위한 행동들이 지금 현재에 이르는 형태를 갖추게되었고 어떤 인과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해 주지만 사실 우리가 대부분 궁금해 하는 것은 왜 사람이 지금과 같은 형태의 자식과 부모,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임신과 양육의 단계를 가지게 되었는지 일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있어서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그 주인공 역할로 여성을 지목한다. 여성은 신체적 차이에 대한 부분과 진화로 인해 머리가 크고 배속에서 많이 자라난 상태의 태아를 낳는 과정에서의 리스크, 그리고 그렇기에 많은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며 자연히 그 아이들을 돌보아야하며 그 아이를 돌보고 굶기지 않는 과정을 아이의 잠재적 아버지들로 역할을 이관시키는 인간 진화의 핵심적인 역할 모델을 설계한 것으로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이야기하고 있다. 참으로 굉장히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논리 전개이다.
결국 어쨋든 이 말대로라면 역사의 곳곳에는 남자가 있었지만 그 핵심에는 여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언급한 아빠를 집에 (daddy at home)의 모델 상에 부합하는 인류는 일부일처제를 잘 수해하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며 동시에 과거의 고대 유인원으로부터 더욱 멀리 진화를 한 대상들이지만 사실 그것이 핏줄에 대한 헌신이라기 보다는 진화론적 관점의 결론이라고도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 부분은 세상의 많은 착한 남편들을 허무하게 할런지도 모른다.
이 책은 멋진 가설과 결론, 그리고 그에 비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과 표지를 가지고 있다. 또한 글을 전개하는 과정은 잘 뚫린 고속도로를 달라다가도 갑자기 또 길이 정체되듯이 템포가 일정하지 않다. 내가 그렇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중간중간 너무 지나치게 했던 말을 다시 하는 중언부언 타입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여러가지 느낌들을 종합해 보면 이 책은 나에게 볼넷 혹은 1루타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연구 스타일 및 글쓰는 방식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기에는 충분히 좋은 책이기도 했다. 덕분에 또 다른 그의 책을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히 느끼기도 하였다. 역시나 이 책을 먼저 보고 나서 총균쇠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에 더 깊이 빠져들지도 모르겠다. 글은 이만쓰고 매우 많이 진화된 충실한 가장의 역할로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