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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eseung Mun Jul 05. 2017

내익책_호모데우스(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유발하라리는 이제 한국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사피엔스는 그만큼 유명한 책이 되어버렸다. 이미 500만부 이상이 팔린 모양이다. 사피엔스를 읽어본 사람이면 아는 사실이겠지만 사피엔스는 총균쇠와 궤를 같이하는 내용이지만 그와 동시에 총균쇠보다 훨씬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장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요소인 1. 흥미로운주제, 2. 눈에띄는 제목과 표지, 3. 읽기편한 문체와 편집을 모두 가지고 있다.


어쨋든 그런 유발하라리에게도 아마 큰 걱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바로 그가 하나의 베스트셀레로 머무르는 1 Hit Wonder가 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이제 없어 보인다. '호모데우스'라는 또 다른 수작이 나왔기 때문이다.






Deus는 프랑스어로 '신'이라는 뜻이다.

그런 Deus가 인간을 뜻하는 Homo와 결합하였으니 이것은 아마도 신이 되어버린 인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의 주된 앞부분의 내용은 '신을 숭배하던 인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의 존재와 영향력'에 대한 부분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런 내용들 속에서 과학의 범위 안에서 신의 존재가 뿌옇게 흐려지는 모습과 신의 존재가 없이도 스스로 설 수 있게 된 인간들을 이야기 한다. 그리고 신의 역할을 대체하기 위하여 생겨나는 시장과 경제 그리고 정치와 사회 등 새로운 규율과 규제들을 신의 대체제로 이야기 한다.


대체로 맞는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평소 깊이 생각해보기는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또한 이 부분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신을 중심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에 대한 신뢰도에 대하여 전세계에서 가장 선진국이며 교육수준이 높은 미국의 표본을 기준으로 생각보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신에 있어서 아직 신이 과학에 비하여 낮은 수준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유발하라리의 매우 솔직하고 객관적인 지적 앞에서 신과 믿음이 분리되고 더 나아가 개인적인 관점으로는 심지어 종교에 대한 마음가짐과 신의 존재 역시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신이 없는 종교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지능과 의식의 분리는 이 책의 중반 이후를 장식하는 최대의 키워드이다.


말 그대로 우리의 지능은 의식과 분리되어 있고 우리가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은 골똘히 생각을 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결정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주제는 다시 지식의 역할은 인류가 아니라 지식을 좀 더 잘 쌓아놓고 필요할 때 찾아내는 존재들에게 넘겨주더라도 괜찮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그 끝에는 인공지능과 데이터가 있다.


한편 이 책의 내용과 같이 지능과 의식을 분리하고 사람들에게 있어서 효율이 나지 않는 지능의 영역은 그것을 더 잘하는 존재에게 넘겨준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창의의 부분조차도 인간의 가이드와 인공지능의 초고속 샘플링의 결합에 의해 재창조 된다고 하더라도 사실 세상이 이상해 질 것은 없다. 아마 세상은 더 빠르게 나오는 창작물과 더 풍족한 지식/지능 사고의 세계 속에서 수치적인 풍족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는 아직까지 모호하다. 과연 예술과 지능향상과 지식 탐구 등의 영역이 과정은 무시한채 결론적인 수치만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분명 인류가 진화해온 과정 속에서 '골똘히 생각함', '무언가가 떠오름', '영감을 받음' 등의 요소들은 인류 발전의 최대 요소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기 때문에 그 역할을 침범하는 인공지능의 대체는 규정을 통해서라도 제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결코 단지 휴대폰이 내 지인의 전화번호를 대신 외워주는 것과 같은 단순 노가다 지식 호출의 범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데이터교에 대한 논의 부분에 대해서는 전에 내가 읽었던 한 아티클에서 보았던 내용을 통해 성찰해야 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그 글은 AB테스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A안과 B안 가운데 더 나은 안을 도출해내는 AB테스트는 전체 실험 대상 군에서 아주 부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결국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겠지만 AB테스트라는 것의 성향 자체가 더 눈에 띄거나 더 도드라지는 대상이 선택될 수 밖에 없는 형태이므로 지나친 AB테스트 적용의 결과가 절대 전체 실험 대상군이 나아지는 결론으로 도달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숫자의 최적화가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특히 부분 데이터의 최적화가 시스템 혹은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이런 사실에 대해서는 익히 글로 써 본적이 있다.


https://brunch.co.kr/@jaeseungmun/137



우리는 숫자 혹은 데이터를 존중해야 하지만 그것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인간은 분명 숫자를 세기 전에 서로 대화를 하였을 것이고 그건 21세기에도 우선시되어야 하는 인간의 규칙이 아닐까 싶다.






유발하라리는 이 두꺼운 책을 (정확히 '옮긴이의 말'이 시작되기 전까지 544페이지에 달한다.) 아래와 같이 깔끔한 한 장 안에 전체 내용을 담아 주었다. 나는 첫 3단락에 나누어진 Summary에 모두 동의한다.


그리고 아래 3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은 아니며 생명은 의식의 단계에 있어서 특히 알고리즘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2. 지능과 의식 가운에 영향력은 지능이 높을지라도 우리가 항상 우선시해야 하는 것은 의식이다.

3. 의식이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존재에 대해서는 항상 그 역할을 명확히 하여 사회적으로 '최적화'의 개념이 필요한 부분에만 도입하여 특이점이 오는 그 순간이 오더라도 시스템의 특이점이 우리를 정복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라는 내 나름의 답을 남긴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한번 내가 썼던 인공지능에 대한 컬럼들과 내가 올초 썼던 인공지능 관련 책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이 모든 내용을 넘어서는 거대한 담론의 수준에서 사람과 신 그리고 인공지능을 하나로 엮어 내었다. 그것도 실로 폭넓고 다양한 사례들과 이야기들을 함께 섞어서 말이다. 그런 그에게 존경을 보낸다.



https://brunch.co.kr/@jaeseungmun/210


https://brunch.co.kr/@jaeseungmun/226


https://brunch.co.kr/@jaeseungmun/238


https://brunch.co.kr/@jaeseungmun/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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